겨울 햇살 가득한 수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노란색 유자차를 끓여 마시며 대학 시절 사랑하던 조동진 '겨울비'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잠겨. 왜 하늘은 조동진을 데려간 거야. 그는 하늘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꿈 가득한 대학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간 거야. 도서관에 가서 숙제하고 대학 식당에서 커피와 에이스 비스킷을 먹으며 배고픔을 채우고 가끔은 라면 먹으러 대학 교정 밖으로 갔다. 당시 노란 냄비에 담은 라면 1인분이 300원. 달걀 넣으면 350원 받았다. 대학 시절 숙제하느라 힘들었지만 시간 되는 대로 동아리방에 가서 클래식 기타 연습하고 친구와 선배들 만나 이야기하면 행복했지. 세월은 날개가 달린 모양이야. 수 십 년 세월이 금방 사라졌어. 노란 유자차 마시며 잠시 타임머신 타고 대학 시절 추억에 잠긴다. 그때는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몰랐지. 책과 음악을 사랑했던 대학 시절. 그때는 먼 훗날 내가 뉴욕에 살 거라 미처 생각도 못 했다. 또 1년 후, 10년 후 내가 어디에 살지 아무도 몰라. 생은 늘 알 수가 없어. 어느 날 내가 알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날 데려가는 운명! 그때도 너무나 바빴어. 학과 공부도 무척 힘들었고 매일 기타 연습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친구들 만나니 늘 집에 없었다. 당시 휴대폰도 없어 친구들이 집에 전화하면 늘 집에 없으니 불평했다고. 매년 봄과 가을 정기 연주회 준비하면 자정 넘어서 집에 돌아가곤 했어.
어제도 무척 바빴어. 오전 전기밥통에서 밥이 지어질 동안 글쓰기 하고 브런치 먹고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 사려고 시도했는데 불가능했어. 메트 러시 티켓은 1주일에 1회. 지난번 라보엠 오페라 볼 때 러시 티켓 구해서 어제는 아들에게 부탁을 했어. 로그인하고 "나는 로봇이 아니에요" 체크하니 이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매진. 글쎄 0.5초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 다시 시도 다시 시도. 내 특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1시간 동안 혹시 러시 티켓 구할 수 있을지 몰라 시도했지만 어제는 불가능했어. 지난주 라보엠 오페라는 운이 좋았던 거야. 무대 앞에서 3번째 줄에 앉아서 너무 무대랑 가까워 불평이 나왔는데 그 좌석이 300불이 넘어. 난 25불 주고 300불이 넘는 좌석에 앉아 오페라 감상했으니 행운이 찾아온 날이었어. 항상 행운이 찾아오지 않아.
오페라 러시 티켓 소동 후 책을 읽으려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을 폈는데 마음이 히말라야 산에 갔는지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샤워를 하고 집을 나왔어. 겨울 하늘도 바라보고 새들의 소리도 들으며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7호선 종점역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어.
오랜만에 첼시에 가서 갤러리 순례를 했어. 돈 많이 버는 가고시안 딜러가 운영하는 가고시안 갤러리도 가고 어제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어. 전시회 작가 포스터를 선물로 줬어. 올해 장사가 잘 된 모양이야. 지난번 본 전시회를 다시 보면서 나 혼자 맘대로 비평도 하고, 이건 덜 익은 요리, 이건 너무 많이 익은 요리, 이건 적당하게 된 요리. 화가가 캔버스에 칠한 그림 보고 혼자 비평도 해보았어. 어떤 갤러리에 가니 백남준이 생각났어. "예술은 사기야"라고 말한 백남준 아티스트. 한 번 봐도 이해가 안 와서 땅콩 먹으며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반복해 보았지만 이해가 오지 않았어. 아무도 없는 갤러리에서 혼자 전시회 보는 즐거움도 좋아. 모든 첼시 갤러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 갤러리는 손님이 없어서 조용해 좋아. 손님 없는 첼시 갤러리에 테이블 하나 두고 음악 들으며 글 쓰면 좋을 텐데 내 갤러리가 아니잖아. 혼자 상상만 하지. 첼시 갤러리 천정은 또 얼마나 멋진지. 조명도 아름답고.
겨울이라 해가 무척 짧아 금방 해가 지고 첼시 갤러리 근처는 화장실도 드물고 스타벅스에 갈 시간도 없이 전시회 보고 줄리아드 학교에 공연 보러 가려고 첼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렸는데 거기도 플러싱과 비슷해서 날 골탕 먹였어. 오래오래 기다렸어. 30분인가. 아, 화장실도 가지 않고 기다린데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떡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흑인 여자가 어린 백인 소녀와 소년 데리고 있는 것 보면 엄마는 아닌 것 같고 두 어린아이 돌보는 사람으로 보였다. 잠시 후 버스 타고 달리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수위에게 가방 검사받고 모세 홀로 가서 바로크 음악 공연 보는데 악보 보고 연주하는데 마치 자장가같이 들렸어. 매일 공연 보니 난 최고 최고 최고의 연주를 기대하고 학생들은 항상 최고 음악 연주하기는 어렵고 요즘 파이널 시험 기간이라 더 바쁠 테고.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화장실에도 가고 커피 마시며 휴식할 텐데 몰랐어.
저녁 7시 스웨덴 첼리스트 마스터 클래스가 열려 모세 홀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갔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보고 마스터 클래스 연주하는 넓은 강당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기대가 너무 높으면 실망도 큰 거 같아. 어제는 나의 기대를 벗어갔어. 스웨덴 첼리스트가 첼로 연주하기를 기다렸지만 학생에게 말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설명하니 오래전 어린 아들에게 바이올린 연습할 때 생각이 났어. 음악 전공도 하지 않은 내가 아들 바이올린 연습시키는데 말로 바이올린 음색이 형편없으니 그리 연주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 아들은 엄마 보고 연주하라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어야지. 귀로 들으면 아는데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은 쉽게 하는 게 아니니. 그럼 아들은 엄마도 못하면서 아름다운 소리 만드라 한다고 불평을 하곤 했지.
5층 마스터 클래스 다 보고 싶지 않아서 홀을 나와 1층으로 내려오니 폴 리사이틀 홀에서 공연 중. 피아니스트 연주가 끝나자 얼른 들어가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어. 조금 전 첼로 마스터 클래스 시 반주했던 중국인 학생 리스트 연주가 너무나 좋았어. 어제 난 실수를 한 거야. 가장 좋은 것은 저녁 7시 반에 시작한 피아노 공연. 피아노 공연보다 모세 홀에서 하는 바이올린 공연도 보고 싶어 다시 내려가 잠깐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어. 바흐와 파가니니 곡 등.
어제 줄리아드 학교에서 본 최고 공연은 저녁 7시 반 폴 리사이틀 홀에서 열린 피아노 공연. 어제 아들 보고 줄리아드 학교에서 3개 공연 볼 예정이라 '3교시 수업'한다고 하고 집을 떠났는데 4교시 수업을 받았어. 그뿐인가. 첼시에 가서 수많은 갤러리 순례했으니 더 많은 수업을 받았어.
뉴욕은 세상 한복판. 세상 구경하는 곳이지. 어제는 전부 무료. 단 나의 열정을 요구해. 열정 없이 추운 겨울날 첼시 갤러리 순례 어렵지. 공연도 마찬가지. 음악 사랑하지 않으면 오래오래 음악 듣기 힘들 거야. 음악 사랑하니 얼마나 좋아. 뉴욕은 귀와 눈이 호강하는 곳이야. 무료로 좋은 음악 감상하고 무료로 갤러리에 가서 세계 최고 예술가 전시회 보니 좋아. 가끔 엉터리 미술도 있어.
줄리아드 학교에서 나와 링컨 센터에서 1호선 탑승 빈자리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뻔했어. 빈자리에 악취 가득해 죽을 거 같았어. 홈리스가 앉았던 자리였나 봐. 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잠시 후 젊은 승객이 그 자리에 앉아 놀랐어. 악취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겨울철 뉴욕 지하철 너무 고통이야. 홈리스 악취 나면 너무 힘들어. 지하철 타면 홈리스가 구걸을 하고 언제 모두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될까. 플러싱 도착해 시내버스 기다리고 한밤중 버스 타고 가로등 불빛 보며 터벅터벅 집으로 걸아 왔어. 요즘 시내버스에 공청회 안내 포스터가 있는 거 보면 다시 시내버스 요금 인상하려나. 지금 2.75불. 너무너무 비싸. 매년 올라가는 렌트비도 숨이 막히고 이제 새해가 오면 렌트비와 물가 공포에 시달린다. 아, 뉴욕. 어찌 살라고.
아침부터 왜 소동이 일어난 거야. 사진 업로더가 되지 않아.
시간만 낭비했어. 금세 30분이 날아가네.
다시 시도했는데 불가능.
40분 만에 사진 업로더 성공.
12. 12 수요일 겨울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