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려 혼이 나고 있어
사진 중앙 조슈아 벨 바이올리니스트
황금 햇살이 비치는 토요일 아침 난 왜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나. 기침이 쉬지 않고 나오면 어떡해. 머리도 쪼개질 듯 아프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게 삶이지만 내 몸뚱어리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노란 유자차 두 잔을 마시며 밀린 메모를 하려고 랩톱을 켰어.
토요일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열린 러시아 볼쇼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표 몇 달 전 큰 맘먹고 미리 구입했는데 공연이 왜 취소가 된 거야. 카네기 홀 박스 오피스 직원에게 공연 취소에 대해 물으니 잘 모른다고 하면서 공연 티켓값은 환불해줬다. 몇 달 전인가 카네기 홀 공연이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그날 공연 취소 이유는 미국 입국 비자 거절. 그런 사연을 적은 종이가 카네기 홀 유리문에 붙여져 놀랐다. 가끔씩 뉴욕에서 특별 공연이 열리고 그때마다 모두 보고 싶지만 공연 티켓이 비싸면 눈을 감는데 이번 공연은 가장 저렴한 표가 20불대라서 러시아에 여행 간 적도 없어서 내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샀어. 생각해봐. 러시아 여행하려면 비행기 왕복 티켓값이 얼마야. 모스크바에 도착해 볼쇼이 오케스트라 공연 티켓도 사야 하고. 그럼 뉴욕 카네기 홀에서 20불대 주고 산 티켓이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음악 사랑하는 산수 법. 음악 사랑하지 않으면 이 산수가 이해가 안 될 거야. 암튼 볼쇼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은 나랑 인연이 없어 슬퍼. 인연이 없으면 포기해야지.
어제는 종일 겨울비가 내렸다. 겨울비 내리는 소리도 무척 아름다웠어. 대지 위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오븐에 고구마 구워 먹으며 종일 집에서 뒤죽박죽 된 <브런치> 글 정리하려고 하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국 어제 끝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흐르고 말았어. <브런치>에 올리는 글 순서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하니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니 시간이 아주 많이 든다. 다른 모든 거 내려놓고 <브런치> 글 정리 중인데 세상에 쉬운 거 하나도 없어.
어제 아들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친구들 만나러 가고 외출해야 하는데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엄마에게 무슨 옷 입고 가냐고 물으니 마음 아팠다. 계절이 변하면 쇼핑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옷 입고 친구들 만나러 가면 좋을 텐데 언제 쇼핑하러 갔나 기억도 없고 하얀 서랍장에 낡고 오래된 옷들이 잠들고 있어. 아들은 누나가 오래전 사준 셔츠 입고 친구를 만나러 가서 점심 먹고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다시 맨해튼에 친구들 만나러 갔다. 연말이니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나 봐.
하필 아들 친구들 약속이 있는 날 카네기 홀에서 조슈아 벨 공연이 열리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이라 아들은 카네기 홀 공연을 볼지 말지 상당히 고민하다 친구들 만나서 저녁만 먹고 카네기 홀에 늦게 왔다. 한인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Barn Joo 35>.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그곳에 가지 않았지만 평판이 좋다고 소문을 들었고 아들 중국인 친구가 그곳에 가자고 해서 저녁 식사를 그곳에서 먹었는데 나름 좋았다고. 하지만 가격은 아주 저렴하지 않아서 어제 지출이 약간 많았다고 말했다. 난 평소 가격 부분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레스토랑 위크처럼 특별한 경우에 명성 높은 셰프 요리를 먹지 아닌 경우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
어제 만난 아들 친구 두 명 모두 중국인. 한 명은 코넬대 졸업 후 맨해튼 미드타운 회사에서 일하고 지난가을 런던에서 몇 달 근무하다 뉴욕에 돌아왔고 런던에 머무는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여행 갔다고. 코넬대 졸업한 친구는 회사에서 일이 많이 힘들지 않아 너무 심심하다고 하니 재능에 비해 직장 일이 어렵지 않은 듯 짐작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뉴욕대 졸업 후 5번가 JP Morgan에 근무하는데 1주일에 100시간 일하고 지낸다고.
뉴욕에 오니 1주일에 100시간 일하는 게 흔한 일처럼 자주 듣게 되니 놀라워. 최소 먹고 자는 시간도 있어야 하는데 1주일 100시간 일하면 언제 먹고, 언제 자고, 언제 친구들 만나. 그러니 당연 친구들도 안 만나게 되지. 돈 벌어 돈 쓸 시간도 없겠어. 맨해튼은 화려하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많이 다르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듯 짐작이 된다.
어제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뉴욕 스트링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고 그 협주곡 하면 과거 아들이 바이올린 레슨 받을 적 기억도 난다. 바이올린 레슨 선생님이 다음에 무슨 곡을 레슨 할 건지 정하라고 했는데 바이올린 전공도 하지 않은 난 아무것도 모르니 무턱대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하면 어때요? 하니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 그러다 아들은 브람스 곡 대신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레슨 받았다.
사랑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가 어려운지 조슈아 벨도 약간 끙끙하는 느낌. 수 십 년 매일 바이올린 연습하는 벨도 연주가 어려운데 고등학생 아들은 연습하기도 무척 싫어하는데 얼마나 어렵겠어. 1악장 바이올린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지 않고 천천히 연주하는 2악장은 더 들을만했고 1악장 끝나고 이마에 흐른 땀 닦으며 연주하는 조슈아 벨. 외모는 언제나 20대처럼 젊어서 놀라워. 어제도 블랙 캐주얼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했다.
어제 아들에게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람스 바이올린 곡 모두 D Major인데 곡 느낌이 이리 달라하니 아들은 엄마에게 음악 이론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니 웃었어. 음악 이론도 잘 알면 음악 감상할 때 도움이 많이 될까.
뉴욕 스트링 오케스트라 공연은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두 자녀랑 함께 공연 봤는데 50주년을 맞는다고 어제 아이작 스턴 아드님이 무대에 올라 말씀하셨다. 카네기 홀이 링컨 센터 개관이 되니 어려움에 처했는데 아이작 스턴이 앞장서서 기금도 모으고 해서 지금 역사 깊은 카네기 홀에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공연을 하러 찾아온다. 만약 카네기 홀이 사라졌다면 난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볼 기회도 없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몽이야. 뉴욕에 세계적인 음악 홀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도 감상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작곡했던 그가 몹시 사랑했던 비창 교향곡 초연 8일이 지나 콜레라에 걸려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고. 그 무렵은 콜레라에 걸려 사망도 했나 봐. 한국인이 무척 사랑하는 비창 교향곡이지. 그런데 어제도 내 몸 컨디션이 엉망이라 비창 교향곡 듣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기침이 계속 콜록콜록 나오니 옆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은 중년 뉴요커가 내게 목캔디 몇 개를 주었다. 카네기 홀에서 그리 몸이 안 좋은 상태로 공연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다.
공연 보고 지하철 타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중 아들과 내가 탄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는 아들 친구 엄마를 만났다. 아들은 나보다 더 오랜만에 친구 엄마를 만나 놀랍고 반갑다고 하고 난 지난번 플러싱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예인처럼 예쁘고 고우신 아들 친구 엄마는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병원에서 일하고 늦게 집에 돌아가는 중 우리를 만났다.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듣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그분은 누룽지 사러 간다고 하고 우린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한밤중 시내버스가 자주 운행하지 않아 만약 놓치면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입장. 대중교통 이용하는 불편이 꽤 크지만 그래도 감사함으로 이용해야지.
어제 카네기 홀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온 4년 전 은퇴한 중국인 할아버지도 만났다. 44년 전 타이완에서 왔다고 University of Michigan 졸업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해 맨해튼에 사는 아들네 집에 잠시 머문다고. 아들 두 명이고 한 명은 캘리포니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다른 한 명은 맨해튼에서 일한다고. 맨해튼에서 일하는 아들은 하버드 대학 MBA 졸업했다고 하니 놀랍다. 존 할아버지 집은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고 거기 집값이 약 40만 불-50만 불 사이라고. 전망 좋은 해변가 지역은 물론 더 비싸다고. 캘리포니아는 뉴욕보다 집값이 더 저렴해 좋다고 하셨다. 카네기 홀 맞은편에 있는 하얏트 호텔 하룻밤 룸 가격이 700-1000불이라고. 하지만 호텔 시설이 꽤 좋더라고 하면서 그 호텔에서 이틀 머물렀다고 하며 뉴욕 호텔도 비싸고 뭐든 비싸다고 하면서 겨울이라 뭐 할 것도 없다고 불평하셔 맨해튼 음대 신년 초 열리는 체임버 뮤직 축제 알려주고 링컨 센터와 줄리아드 학교와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무료 공연과 TKTS도 알려주고 타임 스퀘어보다 덜 붐벼서 좋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서울대 의대 졸업하고 미국에서 의사 활동하는 한국인도 캘리포니아 할아버지 집 이웃에 산다고 말씀하셨다.
볼쇼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도 못 보고 오늘 메트에서 라 트라비아라 공연 열리는데 오늘이 시즌 마지막 날이라 말할 것도 없이 러시 티켓 사기는 불가능할 거 같고 마음은 메트에 보내고 난 집에서 브런치 작업을 해야 하나. 몸이 너무 안 좋으나 글쓰기 하다 식사 준비하고 아들과 함께 미역국과 햄버거 스테이크 먹고 설거지하고 다시 이어서 글을 쓰고 있다. 황금 햇살 아름답게 비추는 겨울날 오후. 내일모레가 새해 이브야. 정말 빠르다.
12. 29 토요일 오후 1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