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이제 그만
들라크루아 초상화, 마흔
새해 메트에 처음으로 방문했어. 프랑스 낭만파 화가 들라크루아 특별전이 모레 막을 내리니 아쉬울 거 같아서 찾아갔는데 금요일 얼마나 방문객이 많던지 놀랐지. 특히 들라크루아 특별전 갤러리에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영화처럼 아름다운 장면도 보았어. 할머니가 앉은 휠체어를 끌면서 전시회를 보는 할아버지. 한국에서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영화 같은 장면이야. 가끔 뉴욕 뮤지엄과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그런 장면을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건너온 특별전이니 항상 볼 수 있는 거는 아니라 다시 보러 가서 뭐가 가장 인상에 남은지 확인을 했다. 부잣집에서 탄생한 들라크루아가 고아가 되어버려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잠시 상상해 보고, 들라크루아 화가 친구가 너무 멋쟁이. 말 그대로 '댄디 아티스트' 작품도 인상적이고, 들라크루아 초상화 다시 보니 마흔에 그려진 작품이라 하니 나의 과거도 돌아봤어. 난 마흔에 무엇을 했지 하면서.
세월이 얼마나 빨리 달려가. 천천히 과거 여행을 하니 악몽이 생각나지 뭐니. 결코 잊지 못할 '마흔'이었어. 신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내게만 찾아온 거야. 그해 여름날 거실에서 사랑하는 첼로가 바삭바삭 부서졌어. 사랑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연습하며 행복했는데 행복은 아주 잠깐. 그해 가을날마다 악마들의 파티장으로 변했지. 집에 있는 물건은 모두 날개를 달고 날다 바닥에 떨어졌어. 술병도, 의자도, 뭐든 눈에 보이는 거는 다 집어던져. 누가. 비밀이야. 잠시 악마가 찾아왔나 봐. 테이블 위에 놓인 불어 책은 다 찢어버리고... 불어 시험 보러 가야 하는데 세계 4차 전쟁이 일어났어. 아, 끔찍한 악몽이야. 세상에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날마다 비명을 질러야 했는지. 너무너무 무서웠던 공포의 시절이었어. 무에서 시작해 드디어 경제적인 자유를 맛본 순간 찾아온 비극. 너무 슬퍼 맥주 마시며 김광석의 노래도 듣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어. 그해 뉴욕에 올 거라고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슬픈 세월만 보내고 말았지.
그다음 해 어느 날 난 중대한 결정을 내렸지. 아, 더 이상 안 되겠구나, 하면서. 뉴욕으로 가자고 결정을 했어. 그때 뉴욕이 뭔지도 몰랐어. 그냥 줄리아드 학교가 있으니 뉴욕이 떠올랐어. 어린 두 자녀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집안의 위기에 대해 말했어. 그 후 가출했어. 아. 다음 해도 악몽이었지. 얼마나 많은 위기를 넘기고 넘겼는지. 주위 친구들은 마흔이 되면 경제적인 안정권에 드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한 세월을 보내는데 우리 집은 거꾸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안과 겉은 왜 그리 달랐을까. 두 자녀에게 죄인 같은 마음이지. 운명을 피할 수 없잖아. 아, 슬픈 운명!
시력이 안 좋아 뮤지엄에 가면 설명 자세히 보지 않은데 왜 오늘따라 초상화 설명을 읽었을까. 슬픈 악몽을 생각나게 하는 마흔.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위기가 찾아올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어.
생은 그런 거 같아. 가끔은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한없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 영원히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거 같은 공포. 진흙탕 속을 걷기도 하고, 폭풍우 속을 걷기고 하고, 앞은 안개 가득해 보이지 않고 생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은데 알 수도 없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몰라. 위기가 찾아오면 슬기롭게 극복해야지. 성공한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서 천천히 자기 속도로 가는 게 중요해. 준비된 사람에게는 특별한 기회가 올 거야. 매일매일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 올 거야. 꼭 그럴 거라 믿고 싶어.
들라크루아 전시회 보러 가서 슬픈 나의 과거 추억을 돌이켜 볼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어. 새해 처음으로 메트에 가서 슬픈 과거 여행을 하다니. 이제 다 잊고 싶은 추억인데. 위기 위기 위기를 지나노라면 소소한 슬픔은 그냥 넘어가게 된다.
이번 들라크루아 특별전은 아쉬움도 남았다. 사랑하는 쇼팽과 친구로 지냈던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 초상화도 보고 싶었는데 볼 수 없었고, 이번 전시 공간이 너무 어두워 눈이 아팠어. 큐레이터가 일부러 어둡게 조명을 했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캄캄하더라. 곧 막을 내리니 방문객들이 너무너무 많고 대개 노년층과 중년층이 많았어.
금요일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에서 특별한 축제 42ND ANNUAL THREE KINGS DAY PARADE도 열렸어. 뉴욕에 살면서 처음으로 보러 간 축제. 매일매일 새로운 문화 이벤트 순례 하지만 뉴욕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와 축제 보는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착각이야. 뉴욕은 문화 예술의 도시라 하늘의 별처럼 많은 행사와 축제가 열리지. 이 행사는 뭔지도 자세히 모르고 추운 겨울날 아직 감기도 낫지 않아서 잠깐 구경하러 갔는데 어린아이들이 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어서 문득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생각났어. 그가 뉴욕에서 집필한 '어린 왕자' 재미있게 읽었지. 어린 왕자 모른 사람 없을 거야. 어린 왕자가 아니라 거지 왕자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뉴욕에 와서 활동한 마크 트웨인도 떠오르고. 어린 시절 '왕자와 거지'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어. 머리 위에는 종이 왕관을 쓰고 손에는 풍선 방망이 들고 흔들고. 드럼 치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었어.
아침부터 너무 소란스러워 잠깐 축제보다 뮤지엄 마일로 가서 메트에 가는 시내버스 기다리다 문득 지난여름에 만난 대학 교수도 생각났어. 한국 전쟁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도 모으고 한국에 가끔 방문한다고. 우연히 할렘 축제 보러 가서 만난 교수. 함께 시내버스 탔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분이 교수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어. 그날 내가 뉴욕 시립 미술관에 간다고 하니 함께 시내버스에서 내려 센트럴파크 옆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잠시 머릿속에 그분이 스쳐 지나고 시내버스를 타고 메트에 갔다.
오후 2-4시 사이 맨해튼 음대에서 로버트 만 현악 4중주 마스터 클래스 보러 시내버스 타고 콜롬비아 대학 근처에 내려 서점을 지나쳤다. 자본주의에 대한 책이 있어서 읽고 싶은 가득했지만 요즘 너무 바빠 구입하지 않았다. 뉴욕에 와서 자본주의 파워를 느끼는 나.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뭔지도 몰랐어. 자본주의를 피부로 느낀 것은 뉴욕이야.
마스터 클래스에 늦을 거 같고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핫 커피 마시러 마트에 들려 커피를 주문했다. 배가 고파 베이글 하나와 비스킷도 구입해 가방에 담고 맨해튼 음대에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코너 소파가 놓인 곳에서 낯선 사람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는 남자는 날 보더니 피하는 눈치였다. 난 괜찮은데.
컵라면 하니 아들이 서울 예술 종합학교에 레슨 받으러 가던 때도 떠올랐어. 그때 먹은 컵라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고 아들이 말하지. 서울에 레슨 받으러 가면 왕복 10시간 버스 타고 힘든 레슨 받으니 컵라면이 맛이 없을 수 없지. 내가 싱글맘이 되리라고 누가 알았겠어. 두 자녀도 마찬가지. 싱글맘 가정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인지 모른 사람도 많을까. 무엇보다 경제적인 면이 바로 부딪혀. 서울에 가서 레슨을 받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가장 저렴한 버스 타고 서울에 가고 식사비 절약하려니 가끔 컵라면 가방에 담고 예종 식당에서 먹고, 고속 터미널에서 짜장면 사 먹고. 정말 궁색한 세월을 보냈구나. 내가 모르는 운명이 찾아와 어린 두 자녀에게도 슬픈 일이 셀 수 없이 많았지. 전부 침묵의 바닷속으로 들어갔어.
소파에 앉아 커피 마시며 잠시 휴식하다 밀러 시어터에 가서 로버트 만 현악 4중주 마스터 클래스 보았다. 놀랍게 컵라면 먹은 남자도 마스터 클래스 보러 왔어. 요즘 겨울 방학이라 학교에 학생들도 없으니 마스터 클래스 보러 온 분이구나 짐작을 했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가 봐. 점심 식사를 컵라면으로 먹는 거 보면. 마스터 클래스 보고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왔어. 우연히 메트와 맨해튼 음대에 가서 슬픈 추억이 생각났어.
1.4.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