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드 학교/겨울비 오는 날 방랑자처럼 맨해튼 거닐다

by 김지수



IMG_8797.jpg?type=w966 링컨 스퀘어 단테 파크 크리스마스 트리



IMG_8798.jpg?type=w966 링컨 센터



IMG_8796.jpg?type=w966 콜럼버스 서클



어제 겨울비가 내렸다. 지하철을 타고 안개 가득한 풍경을 보면서 오래전 미국 서부 여행 추억도 떠오르고,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뉴욕 풍경을 보면서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 도착했다. 미국 서부와 동부는 얼마나 다른지 놀라워. 미국 서부 여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지 잊히지 않아. 여행사 버스 타고 움직이는 서부 여행은 고생길이다. 낯선 곳을 운전하기 싫어한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르지만 오래오래 전 세계 여행도 했지만 미국 서부 여행처럼 고생을 많이 했던 것도 드물어. 태양이 이글거리는 7월 말인가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여행사 버스가 펑크가 나서 몇 시간 동안 오래오래 기다렸지. 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누가 알았을까.


장시간 여행객들을 기다리게 하니 한인 가이드는 미안한 마음에 슬픈 추억도 이야기했다. 미국에 와서 서비스 직에 종사하며 눈물 같은 돈을 벌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달려가 도박을 하다 1년에 번 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는. 돈 벌기 너무너무 힘들지만 돈 쓰는 것은 한순간이더라, 하면서 다시는 도박하지 않는다고 했지. 인생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은 가봐. 도박해서 돈 벌어 새 인생 살겠다는 사람들 많은데 카지노에 가서 부자 되었다는 이야기 드물지. 반대로 카지노 사장은 돈 많이 번다고 하더군.


또, 서부 여행은 이동 거리가 멀어 새벽 2시, 새벽 4시에도 기상해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사진으로만 본 그랜드 캐년도 보고, 카지노로 명성 높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어쩌면 인생이 바뀔까 하면서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사람들도 보고, 나도 카지노에 갔으니 한 번 시도했는데 바로 나랑 도박은 궁합이 맞지 않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그만두었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성공한 구두닦이 이야기도 들었어. 매일 구두닦이 하며 입에 풀칠을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는데 어느 날 성공을 했다고. 하지만 성공한 구두닦이는 옛날 구두닦이 했던 시절처럼 손님에게 구두 닦는 다고 하니 놀랐지. 아마 매일은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라스베이거스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은 뉴욕보다 훨씬 더 화려해 놀랐어.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입을만한 예술처럼 예쁜 속옷 매장도 구경했지. 아름다운 불빛이 비추는 라스베이거스 밤과 낮은 또 얼마나 다른지. 한인 가이드는 밤과 낮을 여자들 화장하는 것에 비유했어. 화장한 얼굴과 민낯의 얼굴이 극과 극으로 변한다고.


세계적인 페블비치에도 가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 선물하려고 골프숍에 들려 골프공 등 선물을 구입했던 추억도 나. 아름다운 페블비치 골프장 근처를 여행사 버스가 달리는데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안개 가득한 풍경이라 아름다웠어. 그때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들려주었지. 탐 크루즈가 나온 영화 < A Few Good Men>도 보여주고. 안개 가득한 창밖 풍경 보면서 심수봉 노래 들으니 더 좋더라.




어느 날 맨해튼에서 만난 필리핀에서 온 가사 도움 이가 맨해튼 탐 크루즈 집에서 일했다고 하니 놀랐어. 그래서 그가 어떤지 물으니 좋은 분이라고.


세상 참 좋지. 여행사 버스가 달리면 끝없는 사막도 펼쳐지고 서부가 그리 광활한 줄 몰랐어. 미국은 지역마다 너무 달라.


카네기 홀과 메트에서 자주 만난 콜럼비아 대학원 출신(타이완 유학생/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은 서부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해 1월 중순 뉴욕을 떠난다고 했는데 서부와 동부는 많이 달라서 뉴욕처럼 오페라와 많은 공연 볼 수 없어서 약간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취직했으니 서부로 간다고 했지.


서부 하니 카네기 홀에서 조슈아 벨 공연 볼 때 만난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온 은퇴한 할아버지도 생각나. 뉴욕 아들네 집에 와서 손자 돌봐주며 머문다고. 겨울이라 할 게 없어 심심하다고 해서 맨해튼 음대 챔버 마스터 클래스도 알려주고 몇몇 정보를 줬지만 마스터 클래스에서 보지 않았다. 오렌지 카운티에는 오렌지가 많을까.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들었는데 그곳은 간 적이 없어서 잘 몰라.


겨울비 내려 대학 시절 들은 조동진 <겨울비> 노래도 떠오르지만 문제는 도로가 정체된다. 어제도 그랬다.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로버트 만 챔버 마스터 클래스 보러 가야 하는데 시내버스가 거북이보다 더 느리게 움직여 결국 난 스케줄을 변경했어. 집에서 플러싱 지하철 역까지 걷는 시간의 두 배 가까운 시간이 걸려 도저히 맨해튼 음대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아, 슬퍼. 연초 열리는 특별한 음악 축제라 꼭 보고 싶은데 삶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가. 할 수 없지. 포기해야지.




그래서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에서 환승해 카네기 홀에 내렸어. 근처 스타벅스와 마트에 가서 잠시 휴식했는데 그만 우산을 잃어버렸어. 정말 슬프지. 나 어떡해. 여기저기 움직인 것도 아닌데 두 매장에만 갔고 핫 커피 한 잔 사 마시며 뉴욕 타임지 읽었는데 우산이 어디로 간 거야.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노래도 생각났어.




어제 아침 아들은 일찍 일어나 아파트 정원에 떨어진 뉴욕 타임지 가져와 신문 가져오는 강아지 키워야 한다고 말했어. 그래서 웃었지. 강아지 키우려면 돈과 시간과 열정이 필요해. 내 상황과 맞지 않아 맨해튼에 가면 예쁜 강아지 눈으로만 봐. 뉴욕 홈리스들처럼 많은 뉴욕 강아지들. 누가 더 행복할까.


정말 정말 정말 이게 뭐야. 마스터 클래스도 보지 못하고, 우산도 잃어버리고 겨울비 오는 날 방랑자처럼 맨해튼을 방황했지.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도 생각나고 방랑자처럼 여기저기 걷다 그래도 맨해튼에 갔는데 최소 한 가지 이벤트를 봐야 하잖아. 그래서 겨울비 맞고 줄리아드 학교에 걸어갔어. 우산 누가 가져간 거야, 하면서. 학교 가는 길 마트에 들려 우산 값이 얼마인지 확인하니 20불 정도 하더군. 링컨 스퀘어 단테 파크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링컨 센터도 멀리서 보고 메트 오페라 보고 싶은 충동도 일지만 감정을 꼭꼭 누르고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저녁 6시 예비학교 학생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을 봤어.


학교 로비에 꽃다발을 든 사람도 보이고 어제가 새해 처음으로 줄리아드 학교에 간 날이야. 토요일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좋아. 어제 한인 학생 공연을 봤다. 아주 오래전 자주자주 들었던 곡을 연주하니 지난 시절도 떠올랐어.



아, 힘든 음악 레슨 뒷바라지. 두 자녀는 자녀대로 매일 연습해야 하니 너무 힘들고 친구들도 만날 수 없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니 두 자녀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는 악마로 변했어. 항상 칭찬도 하면서 연습하는 거 도와줘야 하는데 비평의 왕처럼 쓴소리만 쉬지 않고 하니 어린 자녀들은 상처도 많이 받았겠지.


세상은 변하고 자녀 교육 얼마나 어려운지. 사범대 졸업하고 교사 활동하다 집에서 어린 두 자녀 양육하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다 첫아이 초등학교 보내고 많이 놀랐어. 나 어린 시절 공립학교에만 가고 종일 놀았지. 내 어린 시절 초등학교 1학년 처음으로 바이올린 보고 배우고 싶은 욕망이 꿈틀 했지만 내가 바이올린 레슨 받은 것은 대학 졸업 후 교사 발령받아 첫 급여받아 악기점에 달려가 연습용 악기 사서 배웠어.


그래서 딸은 초등학교 1학년 방과 후 수업에서 바이올린 레슨 받았는데 선생님이 한두 번 레슨 하더니 재능 많아서 옮겨야 한다고. 그때 너무너무 복잡하고 힘든 상황이라 개인 레슨 받기 어렵다고 해도 기어코 레슨을 옮기고 말았어. 어린 아들은 누나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거 보고 배우고 싶다고 하니 난 정말 어쩔 줄 몰랐지. 어린 자녀 레슨 받으면 엄마 역할이 너무 힘들어서. 누나 바이올린 꺼내서 모차르트 곡 흉내 내는 아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레슨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아들은 기어코 배우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서 딸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유치원 시절 레슨을 시작했어. 매일매일 추억 여행을 하는구나. 서부 여행과 두 자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바이올린 레슨 받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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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겨울비 내려 도로가 정체되어 맨해튼 음대 마스터 클래스 못 보고, 우산 잃어 버리고, 주리아드 학교에서 공연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시내 버스가 막 떠나 터벅터벅 걸었어. 이웃집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고.




새해 첫 번째 일요일 아침 1. 6

오늘은 비가 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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