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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음대 비올라 소나타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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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785.jpg?type=w966 메트 시저 조각상



피곤이 밀려오는 밤 스르르 저절로 눈이 감기려 하네. 밀린 일기 기억이 사라지기 전 써야 하는데. 이틀 감기 몸살로 집에서 지내다 답답해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갔어. 오랜만에 밤하늘에 비친 노란 초승달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지. 언제 봐도 초승달은 예뻐.


종일 미국 이민에 대해 글 쓰고 잠시 휴식이 필요해 집을 떠났어. 다른 어떤 글 보다 복잡했어. 자료도 많이 찾고, 많은 뮤지엄에서 전시회 보고, 이민자로서 보고 느낀 것도 많은 뉴욕. 언젠가 정리하고자 했는데 복잡해 미루고 미루다 작업을 했지.


미국은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정말 많은 나라인 거 같아. 뉴욕에 오기 전 전혀 몰랐던 부분을 하나씩 깨달아 가고 있어.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J.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으니 내가 이민이 뮌지 알았겠어. 다른 나라에 건너와 가난한 이민자들 보니 이민의 의미에 깨달아 가고 있지. 한국에서 '하버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 영화도 봤지만 하버드 대학 입학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몰랐지. 그런데 말이야. 하버드 대학 입학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뉴욕에 오니 명문 대학 입학이 정말 어려워. 서울대 입학만 어려운 게 아냐. 아, 미국도 엄청난 경쟁률. 미국 의대 입학도 정말 어렵더라. 코넬대 졸업한 B는 수 차례 의대 과정 지원했지만 낙방하고 말았어. 낙동강 오리알 먹었나. 미역국 먹었나. 슬프지만 다시 도전한다고 하더라.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도 그러한데 하물며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느끼는 고독감. 미국에서 태어난 얘들과 경쟁하며 위로 올라가는 세상 너무 치열해졌지.


감기 기운이 있어 머리는 아팠어. 7호선은 달리고 저녁 무렵 맨해튼으로 달리는 지하철 안은 조용해 좋았어. 오후 4시가 지나면 캄캄해지는 뉴욕. 불빛 비추는 아름다운 뉴욕의 야경도 보았지. 뉴욕 야경 그림처럼 예뻐.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스르르 잠이 쏟아지지만 타임 스퀘어 역에서 환승해야 하니 정신 차려야지. 타임 스퀘어 역에서 익스프레스 환승 다시 로컬에 환승 콜럼비아 대학 역에서 내려 무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겨울나무는 추운 겨울 어찌 지낼까. 수요일 저녁 맨해튼 음대에서 피아노 공연 볼 줄 알았는데 비올라 소나타를 감상했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주하는 비올리스트. 카네기 홀에서 봤던 비올리스트도 떠올랐지. 비올라 연주는 흔하지 않고 연주가 흡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오늘 연주는 꽤 좋았어. 비올리스트와 피아니스트 모두 멋진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연주하니 마치 파리 살롱도 생각나고 과거 귀족들 공연 보면서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까. 피아니스트 목걸이와 귀걸이는 반짝반짝 빛나 스와로브스키 보석일까 혼자 짐작도 하고 디자인이 단순하지만 참 예쁘게 보였다.


내 주위는 온통 음악가들. 잠시 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어. 책이나 영화 속에서 본 장면이잖아. 어느 날 내 주위가 온통 음악가들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얼마나 멋진 일이야. 상상만 해도 행복한데 현실이야. 장미꽃 다발 가져온 학생도 내 곁에 앉아 장미향 가득한 밀러 시어터에서 비올라 소나타 감상하니 행복이 밀려왔어. 피아노 반주가 내가 사랑하는 은빛으로 빛나는 파도가 떠올랐어. 아, 사랑하는 바다 보러 가야 하는데 언제 하얀 눈이 펑펑 오나. 하얀 눈 내리는 겨울 바다 보고 싶어. 언제 코니 아일랜드로 달려가야지.


그런데 말이야. 공연이 막을 내리고 빌딩 밖으로 나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음악을 들으면 마법의 궁전에서 산책을 하지. 인간 세상 고통 느낄 수 없는 나라. 신선이 따로 없지. 아름다운 선율 들으며 온갖 상상도 하고 복잡한 현실도 잊어버려서 좋아. 맨해튼 음대 바로 옆에 리버사이드 교회가 있고 멀리서 불빛 비추고 고적한 밤거리를 거닐며 콜럼비아 대학 지하철역에 도착. 바람이 강하게 불어 너무너무 춥고 맨해튼에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아. 마법의 성 맨해튼에 나도 집을 짓자.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마음속으로 뭘 못해. 상상만 하는 거야. 피곤했는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어. 메트로 카드 긋고 안으로 들어가 지하철 타고 수 차례 환승해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역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 탑승해야 하니 마라톤 선수처럼 뛰었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밤에 시내버스는 드문드문 운행하니 만약 놓치면 오래오래 기다려야 해서 놓치지 않으려고 달렸어. 아, 막 버스가 떠나려는 순간 간신히 버스에 탑승. 감사한 마음이 들지. 시내버스는 밤거리를 달리고 아직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반짝거리고 내 마음도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무지갯빛으로 빛나. 왜냐고. 아름다운 거 많이 보면 마음도 무지갯빛이 돼.


새해도 경찰이 찾아와 쾅쾅 쾅 아파트 문을 노크해. 아, 새해 안부 인사하러 왔구나. 오늘 오후 3시에 도착했어. 경찰이 자주자주 집에 찾아오고 먼 훗날 오바마 대통령도 날 찾아올까. 농담이야. 오늘은 아시아인 경찰 2명이 찾아와 소동을 부렸어. 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안부 인사하는 거라고 생각해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주자주 경찰이 오니 그런가 보다 적응해야지. 근데 누가 자주 전화를 해서 경찰이 온 거야. 내게 경찰 부르겠다고 말한 아래층 할아버지가 정말 부른 걸까.


내 심장은 점점 강해지고 있어. 온실 속에서 자라면 작은 빗방울에도 가슴 찢어진 고통을 받을 텐데 자주자주 보통 사람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는 불청객이 찾아와 날 단련시키고 있어. 나도 어릴 적 아주 작은 일에도 가슴 아파했는데 지금 내 슬픈 감정은 냉동고에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어. 꽁꽁 얼어붙은 감정이 봄날이 되면 아름다운 꽃이 필까.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이 피길 기도하자. 너무너무 아픈 일들이 많지만 참고 견디고 살아야지.


뉴욕 시립 발레단에서 공연 보라고 안내 브로셔 보냈네. 발레도 오페라도 보고 싶어.

어제 수잔 할머니 오페라 재미있게 봤을까.

이제 꿈나라로 가서 휴식을 하자꾸나.

안녕


1. 9 수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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