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마중하러 펜 스테이션 역에 가고, 맨해튼 음대 공연

한인 택시 기사 이야기 & 한국 특별 공연 놓치다.

by 김지수


링컨 스퀘어


마틴 루터 킹 데이 연방 정부 공휴일을 맞아 보스턴에 사는 딸이 뉴욕에 왔다. 펜스테이션에 만나자고 약속을 해서 미리 도착해 기다렸고 언제나처럼 복잡한 펜스테이션 역. 뉴욕 레인저스 아이스하키 스포츠 웨어를 입는 사람들도 꽤 많아 보였고, 화장실에도 악취 가득하고, 거리 음악가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도 있고, 인부들은 공사를 하고, 승객들은 기차를 기다리고. 난 장미꽃 향기 맡으며 거리 음악가 노래 들으며 딸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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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버스가 연체될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예정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다가오는 일요일 영하 14도, 월요일 영하 12도까지 떨어진다고 하니 벌써 보스턴에 돌아갈 걱정이 된다. 혹시 도로가 꽁꽁 언다면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버스로 5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서. 서울에서 부산 거리보다 더 먼 뉴욕과 보스턴. 딸은 직장에 출근해 일하고 버스를 타고 뉴욕에 와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잔다.


목요일 오전 메모를 마치고 집 근처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갔다. 주말 하얀 눈이 올 거라 하니 쌀이 없어 걱정이 되었다. 마트에 간 김에 이것저것 구입했다. 김치 한 봉지, 생선, 두부 2모, 사과 약간, 귤 약간, 고구마, 양파, 소파 등을 수레에 담아 계산을 하고 한인 택시를 불렀다. 집에서 한인 마트까지 아주 멀지 않지만 40파운드 되는 쌀도 구입해 택시를 불러야만 했다. 한인 기사에게 뉴욕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그냥 살아요, 영화처럼 살지 않지요. 롱아일랜드 몬탁과 쉘터 아일랜드에는 요트와 자가용 비행기를 보유한 가정도 있지만 영화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은 영화처럼 살지 않아요."


"택시 기사만 하셨어요?"


"아니요, 이것 저것 다 해봤지요. 그런데 택시가 가장 좋아요. 재미있어요."


"그래요. 뭐가 재미있어요?"


"손님 모시고 알래스카에도 다녀왔지요. 공항에도 가고 다양한 손님들 만나 좋아요. 가끔 토하는 손님들도 있어요."


"어머 그런 일이 있어요?"


"괜찮아요. 승객들에게 150불 정도 받아요. 승객 가운데 반기문 총장 이야기도 들었어요. 반기문 총장이 뉴욕에서 중학교 졸업했다고 들었어요."


"어머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늦은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졸업하지 않았어요?"


"하루아침에 영어가 되나요. 아닌가 봐요. 유엔 빌딩 옆에 있는 중학교 졸업했다고 하던데요. 한국 사람들 영어 정말 약해요. 한국 학생들 고등학교 시절 뉴욕에 오면 공부 따라가기 힘들어요. 공문서 읽으려 해도 최소 3년 정도 공부해야 가능하지요. 한국 사람들이 특히 영어에 약해요."


우연히 한인 택시 기사로부터 반기문 총장이 뉴욕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지만 진실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기사의 주장에 의하면 늦게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입학해 영어로 소통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전 반기문 총장을 안다는 손님을 태워 우연히 들은 소식이라고.


집 앞에 도착하자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었고 아들을 불러 함께 짐을 운반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무거운 짐 운반하기 너무 힘들어 서둘러 장을 보았다. 짐 정리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주말 두 자녀랑 함께 무얼 할까 생각하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카네기 홀 박스 오피스에 가서 표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 얼굴을 아는 직원이 "2장이요?"라고 물어서 "아니요, 3장 주세요."라고 하니 직원이 웃으며 3장의 표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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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860.jpg?type=w966 아트 스튜던츠 리그 갤러리 / 에드워드 호퍼, 마크 로스코 등 공부한 학교



가방에 표를 담고 카네기 홀 근처 아트 스튜던츠 리그 2층 갤러리에 가서 전시회를 구경하고 메종 카이저 지나 콜럼버스 서클 지하철역에서 1호선을 타고 콜럼비아 대학 지하철역에 내렸다. 날씨가 너무 추워 맨해튼 음대 공연에 갈지 말지 마음이 흔들렸지만 100주년 특별 기념이라 학교에 갔는데 공연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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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음대 그린필드 홀 100주년 특별 공연



맨해튼 음대 총장님도 내 가까이 앉아 계시고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나는 쉐릴 할머니 옆에 앉아 공연을 봤다. 피아노 공연이라 착각하고 갔는데 뮤지컬 공연이었다. 소프라노 목소리가 환상적. 날씨가 추워 망설였는데 멋진 선택이었다. 할머니는 맨해튼 음대 뮤지컬 공연이 줄리아드 학교보다 더 좋다고. 프로그램에 올려진 곡들은 내게는 너무 낯선 곡인데 할머니는 알고 있다고 하니 뉴욕에서 60년 이상 세월을 보낸 것과 나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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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저녁 7시 반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서 무료 공연이 열리고 오늘은 한국 특별 공연이라서 맨해튼 음대에서 공연을 보다 휴식 시간에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링컨 센터에 갔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홀 제한 인원 숫자가 넘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 날씨는 너무너무 추운데 30분 이상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한인들도 몇몇 보였지만 백인과 흑인도 보였다. 공연은 이미 시작하고 시간은 흐르고 홀에서 누가 밖으로 나와야만 그 사람 대신 안으로 입장할 수 있고. 몇 명 밖으로 나와 몇 명 안으로 입장했지만 8시가 지난 시각 내 번호는 8번. 공연은 저녁 8시 45분에 막이 내리고. 과연 내가 기다리면 공연이 막이 내리기 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맨해튼에 살아?

-아니

-어제 몇 시간 잤어?

-한두 시간

-종일 여유롭게 보냈어?

-아니,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 아침 일찍 일어나 세탁하고 식사 준비하고 맨해튼에 오고. 쉬는 시간이 없었어.

-그럼 더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올 거 같아?

-아니, 불확실해.

-날씨는 좋아?

-아니, 너무 추워.


바보처럼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괜히 기다렸어. 한국 공연을 보는 사람들 가운데 밖으로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차라리 맨해튼 음대 공연을 다 볼 걸 그랬지. 한국 특별 공연이라 보고 싶은 마음에 맨해튼 음대에서 미리 떠나 링컨 센터에 왔는데 공연커녕 추위에 덜덜 떨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 공연과 나와 인연이 없었어. 괜히 기다렸어. 어제 오페라도 서서 4시간 가까이 보고, 한두 시간 자고 맨해튼에 왔는데 너무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IMG_8872.jpg?type=w966 링컨 스퀘어 스타벅스


한국 공연 보는 거 포기하고 링컨 센터 스타벅스 카페에 갔다. 딸이 도착할 때까지 2시간 정도 남아서 기다렸다. 스타벅스 카페에도 악취 나는 사람이 옆에 앉아 이사를 했고, 잠시 후 소란스럽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옆에 앉아 다시 자리를 옮겼다. 딸이 뉴욕에 가까워질 무렵 연락을 해 1호선을 타고 펜 스테이션에 딸을 마중하러 갔다. 긴긴 하루를 보냈어.


금토일 하얀 눈이 온다고 하네.


1. 18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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