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하루를 보냈어
수요일 아침 하얀 창가로 겨울 햇살이 비친다. 아침 기온 영하 6도. 수요일 영하 14도까지 내려가고 하얀 눈이 온다고 하는데 찬란한 겨울 햇살이 비추네. 설거지통에 접시와 프라이팬이 쌓여 있는 아침. 노란 유자차 끓여 마시며 어제 기억을 더듬는다.
흐린 겨울 아침 아들과 함께 집 근처 호수에 산책을 하러 갔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나날들.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추워도 호수에 갈 수 있어. 한동안 난 무엇하며 호수에 가지 않았을까. 우리가 자주 산책하러 다닌 호수인데 한동안 가지 않았다. 호수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평화 가득 선물한다.
하얀 갈매기떼 호수 위 하늘을 나니 오래전 롱아일랜드 몬탁에 방문했던 추억도 떠올랐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땡스기빙 데이 휴가를 맞아 두 자녀와 함께 기차를 타고 몬탁에 갔는데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하얀 갈매기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대서양을 바라보며 고독을 씹었어.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올 거라 단 한 번도 상상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뉴욕에 온 거야 하면서 추억에 잠겨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거닐었지. 기차역에 내리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카페 찾기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부동산 사무소 간판만 여기저기 보여 놀랐던 곳. 뉴욕의 명소 롱아일랜드 몬탁은 낚시와 해돋이로 명성 높지만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다. 낯선 도로 운전 하기 무척 싫어하는 난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적에도 기차를 이용했고 제리코에서 가까운 힉스빌 기차역에서 몬탁까지 운행하는 기차는 자주 없어서 힉스빌에서 맨해튼 방향 자메이카 역에 도착. 자메이카 역에서 몬탁으로 달려가니 장시간 기차를 타고 달린다. 몬탁에서 제리코로 돌아올 적 역시 자주 기차가 운행하지 않아 불편하다.
동네 호수에서 빨간색 장갑을 끼고 겨울 외투를 입고 운동하는 주민도 보고, 에드 시런의 노래 들으며 산책하는 뉴요커도 보고, 아들과 나도 꽁꽁 언 호수 바라보며 몇 바퀴 호수를 돌았다. 가만 생각하니 센트럴파크 호수보다 동네 호수가 더 사랑스러워. 아마도 아들과 나의 추억이 담긴 호수라서 그런 듯 싶다.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호수. 가끔은 백조와 학도 만나고 기러기떼와 거북이 떼를 만나는 호수. 영화처럼 아름다워.
호수에서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맨해튼에 갈 준비를 했다.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 시 방문하려고 미리 예약해 둔 Cafe Boulud. 오전 11시 반 식사 시간이라 서둘러 집을 떠났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에서 로컬 7호선에 탑승했는데 얼마나 느리게 가던지 답답했지.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아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니 좋았어. Cafe Boulud 레스토랑 위크 메뉴도 보고 어떤 메뉴 고를지 잠시 생각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베니스에서 곤돌라를 타고 아코디언 소리 들으며 유람했던 기억도 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곤돌라 탄 요금이 비싸다는 말을 아들에게 했어. 아들은 어린 시절이라 몇 분 동안 탑승했는지 기억도 없고 요금이 얼마인지 물론 모르고 이태리에서 먹은 파스타가 맛이 좋았다고 하고.
20여 년 전 30분 동안 곤돌라 탑승했는데 30불을 줬다. 아들은 엄마에게 어느 정도 가격이 적당한 거 같아요?라고 물어서 5-10불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했어. 그러면서 우린 20년 전 뉴욕 최저 임금도 확인했다. 1980년 뉴욕주 최저 임금이 시간당 3.1불. 뉴욕시는 뉴욕 주보다 약간 더 높으니 3. 1불 보다 더 높겠다. 아들은 관광객이니 당연 더 비싼 요금을 지불했다고 하고. 그렇지 어디든 여행객이 많은 곳은 더 비싼 요금을 내게 된다. 그러다 문득 베니스 여행에서 만난 한인 가이드도 떠올랐어. 이태리에서 성악 전공한다고 했는데 그때 난 오페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지 못했다. 문득 그때 만난 가이드는 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할까 궁금했다.
천천히 달리는 7호선은 그랜드 센트럴 역에 도착 우리는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가는 로컬 6호선에 탑승해서 77th st. 역에 내려 메디슨 애비뉴 쪽을 향해 걸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레스토랑 근처에 가고시안 갤러리와 메트 브로이어 미술관과 애플 숍과 칼라일 호텔이 있고 칼라일 호텔에서는 우드 알렌 영화감독이 재즈 연주를 하는데 티켓값이 저렴하지 않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어. 우리가 레스토랑에 가는 동안 하얀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니 기분이 좋았어. 로컬 7호선이 너무 느리게 운행하니 어쩌면 늦을까 봐 걱정했는데 적당한 시각에 도착.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늘 그곳에 가면 위를 위아래로 바라보는 여직원은 안 보이고 새로운 흑인 여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잠시 후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
멋진 정장을 입은 직원이 주문을 받고 아들이 주문한 애피타이저가 맘에 든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어. 너무나 복잡한 현실이지만 몇 년 전부터 아들과 함께 명성 높은 레스토랑에 가곤 하고 아들은 어제 방문했던 레스토랑 요리가 좋다고. 아들은 식사하면서 죽음은 마치 전원 스위치 켜고 끈 거처럼 언제 어찌 될지 모른 거 같다고. 우리네 생이 정말 짧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축구하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늘 죽음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지난번 소호 머서 키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고 세인트 폴 교회에 가서 오르간 연주 감상했던 추억도 떠올리며 그때 비탈리 샤콘느 오르간 연주가 너무 좋았다고 했지. 그날도 오르간 연주 감상하고 교회묘지 보며 아들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묘지라고. 그렇다. 인간의 마지막 종착지는 묘지.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숙제는 행복 찾기. 아들과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니 좋았어. 아들이 사랑하는 초콜릿 타르트 디저트도 주문해 함께 나눠 먹었다. 어제 방문한 다니엘 셰프가 운영하는 곳은 아들이 자주자주 가고 싶다고 하고 기회가 되면 더 자주 방문하고 싶다. 늘 손님이 많아 미리 예약 필수.
식사하고 아들에게 가고시안 갤러리에 가자고 하니 사기꾼 같다고 하며 가기 싫은 눈치라 메트 브로이어 뮤지엄에 갔다.
루치오 폰타나 특별전이 열려서 구경했는데 아들은 서울에 사는 사촌동생들도 할 수 있는 작품 같다고. 현대 미술 감상이 어렵기만 하고 나 역시 개인적으로 루치오 폰타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파란색 조각품 보고 만화책 <Watchmen>에 나오는 인물 같다고 언제 읽어 보고 싶은데 아직도 읽지 않은 만화. 뮤지엄 마일에 있는 메트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아들은 지하철 타고 먼저 집에 돌아가고 난 5번가 북 카페에 가서 핫 커피 마시며 놀다 저녁 무렵 링컨 센터에 갔다. 어제저녁에도 줄리아드 포커스 축제가 열리는데 갑자기 오페라가 보고 싶어 졌다. 메트 박스 오피스에 가서 혹시 패밀리 서클 스탠딩 티켓이 남아 있는지 묻자 내게 1장 주웠어. 박스 오피스 앞에 사람들이 꽤 많아 혹시 티켓 사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어. 점심은 맨해튼 부촌 어퍼 이스트사이드 다니엘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는데 저녁은 굶어야 했어. 겨울비 내려 거리에서 파는 트럭 아저씨도 안 보이고 링컨 센터 근처 레스토랑 저녁 식사비는 너무 비싸 눈을 감고 천천히 레드 카펫을 밟고 계단을 올라가 가장 높은 곳 패밀리 서클에서 오페라를 봤어. 누가 내게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오페라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 난 오페라를 고르겠다. 식사는 내가 준비해서 먹을 수 있지만 오페라는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어제 오페라는 프랑스 작곡가 비제의 <카르멘>. 집시 여자 카르멘과 돈 호세 군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카르멘을 사랑하는 돈 호세는 집시 여인에게 사랑을 구걸하지만 사랑이 구걸한다고 되는가. 집시 여인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시들어 버린다. 카르멘이 돈 호세에게 싫증을 내고 에스카밀로를 사랑한다고 하자 칼로 그녀의 등을 찔러 버리고 막이 내리는 비극적인 오페라. 어릴 적부터 귀에 익숙한 '하바네라'와 '투우사의 노래' 아리아가 들려온다. 어제 오케스트라 연주와 무대 장식과 합창과 댄스도 너무 좋았어. 플루트와 하프 소리도 아름다워 황홀한 밤이었다. 저녁 7시 반 시작 밤 11시에 막이 내린 오페라. 말할 것도 없이 새벽에 집에 돌아왔어. 링컨 센터에서 밤늦은 시각 지하철 타고 타임 스퀘어에서 환승하고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아주 많은 승객들이 탑승하니 뉴욕은 잠들지 않은 도시란 별명이 어울리는 도시. 옆자리에 앉은 뉴요커는 핸드폰으로 카드놀이를 하더니 중국 드라마를 보고 마치 한국 사극 같았어. 자막이 한자라 중국 드라마라고 짐작했어. 승객이 너무 많아 달리는 지하철이 흔들리면 남의 발을 밟게 되니 서서 탄 승객들은 말싸움을 하고. 뉴욕의 밤도 소란스러웠다.
어제는 사랑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식사하고, 미술관에 가고, 오페라도 봤으니 꿈만 같았어.
수요일 아침 아들과 함께 호수에 다녀왔다. 접촉 사고로 경찰과 이야기 나누는 슬픈 사람들도 보고, 꽁꽁 얼어붙은 하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보고, 붉은색 열매 가득한 겨울나무도 보고, 갈매기떼 가득한 호수 몇 바퀴 돌다 골든 푸들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아침.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골든 리트리버 같은데 하얀색이라 이상해 주인에게 묻자 골든 푸들이라고 해.
1. 30 수요일 아침
글쓰기 하다 호수에 산책하러 다녀오고 중단한 글쓰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