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나
청춘이 푸릇푸릇 한 대학시절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몇 개의 외국어를 배우고, 몇 개의 악기를 배우고, 데생과 그림을 배우고, 몇 개의 운동을 하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고 싶은 꿈.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모든 게 평범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난 장녀라 지방대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문화 환경에 많이 답답해했고 내가 자주 보고 싶은 전시회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껏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릴 적 배우고자 했던 바이올린 대신 클래식 기타반에 들어가 활동을 하며 음악이 더 가까워져 갔다. 아르바이트해서 첫 번째 받은 돈으로 성음사에서 나온 음악 테이프를 전부 구입할 정도로 나의 음악 사랑은 대단했다. 구입한 음악 테이프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국립 사범대를 졸업 후 발령이 나서 교직에 종사했다. 어느 날 두 자녀를 출산하고 사직서를 강요하는 남편 뜻에 따라 집에서 두 자녀를 양육하며 지냈다. 교직생활은 안 하게 되니 한편으로 육체적인 노동이 덜 하나 집에서 어린 두 자녀를 돌보는 것도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이고 종일 돌봐야 하니 힘들었지만 세월이 흘러 두 자녀가 유치원에 가게 되니 조금씩 호흡할 시간이 주어지고 대학 시절 꿈꾸는 것을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영어 학원에 가서 영어 회화 수업을 받고 운동을 하고 두 자녀가 집에 돌아올 무렵 나도 집에 돌아와 함께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습을 했다. 세월이 흐르자 가정 형편은 차차 나아져 해외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런던, 파리, 베를린, 로마, 프라하 등 대학 시절 꿈에 그리던 도시를 여행하게 될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지만 현실로 이뤄졌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창이 극과 극으로 다른 남편과 결국 작별하고 말았다. 대학 시절 만나 수 십 년 동안 남편 뒷바라지를 했지만 우리의 인연은 막을 내렸다.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낯선 도시 뉴욕에 왔다. 뉴욕은 우리에겐 미지의 땅. 우린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하고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줄리아드 학교가 있다는 거 정도 알고 뉴욕에 왔다. 어린 두 자녀가 재능이 많다고 해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받게 되었고 빈 대학교 바이올린 교수님은 우리에게 빈으로 유학을 오라 하셨지만 독일어권이라 망설이다 줄리아드 학교가 생각나서 뉴욕에 와서 살게 되었다.
삶은 항상 달콤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낸 남자와 작별을 하고 낯선 도시에 와서 새로운 둥지를 여는 게 분홍빛 꿈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는 역경이 주어졌다. 초기 이민 정착 시절은 정말 느리게 느리게 세월이 흘렀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게 지옥처럼 힘들었다. 악센트가 강한 영어 발음은 잘 들리지도 않고 말하기, 읽기, 쓰기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영어는 여전히 외국어다. 한국에서 배운 적 없는 학과를 선택하니 더 어려움이 많았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 길 위를 걷고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인 회사에 취직해 일하다 어느 날 그만두게 되고 다시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졸업하고 그 후 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니 장밋빛 같은 꿈이 열렸으나 수년 동안 재직하던 연구소를 그만두게 되고 다시 우울한 나라에서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래된 가방 하나 메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낯선 거리를 걷기 시작하며 낯선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맨해튼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아들이 재학하던 맨해튼 예비 음악학교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 학부형이 아닌 일반인에게 무료로 오픈한 것을 알게 되고 그 후 차츰 맨해튼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뉴욕에 와서 귀족 같은 느낌이 드는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자주 가서 책과 잡지를 읽으며 하나씩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뮤지엄과 미술관과 갤러리에 자주 가서 전시회를 보고 도서관에서 열리는 오페라, 뮤지컬, 앙상블 공연을 보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대학시절 꿈꾸던 삶은 먼 훗날 수 십 년 세월이 흘러 조금씩 가능해져 갔고 어느 날 난 어릴 적 꿈꾸던 대로 매일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전시회를 보고 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의 꿈은 조금씩 부화하기 시작하고 장미꽃이 피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겨울 정원 같은 나의 삶에 장미 향기가 감돌 줄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던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을 카네기 홀에서 보고 대학 시절 자주 듣던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을 카네기 홀에서 보고 세계적인 음악가 길 샤함, 크리스토프 에센 바흐, 요요마 등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뉴욕.
생의 중반 삶의 위기를 맞아 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 후로 내 생은 남과 다르게 변했고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이민자 1세로서 몸으로 느낀 생의 무게는 몇 겹이나 되었지만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꿈을 찾아 낯선 거리거리를 배회하다 어느 날 맨해튼이 보물섬이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은 세계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아티스트, 디자이너, 학자와 음악가 등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곳.
2017.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