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전방에서 살던 추억이 떠올랐어.
목요일 아침 기온 영하 14도. 너무너무 추워 일어나기도 싫었어. 감기 기운이 있어 유자차 끓여 마시고 브런치는 오랜만에 닭죽을 끓여 먹었다. 아들은 닭죽을 좋아하지 않은데 주방장 엄마 맘대로 메뉴를 골라 미안한 마음에 유부초밥을 간식으로 준비해두고 저녁은 햄버거 먹으라 하고 아파트 문을 잠그고 시내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시내버스는 스케줄보다 더 빨리 휙 하고 지나가버려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오랜만에 뚝 떨어진 기온 문득 수 십 년 전 전방에 살던 때가 생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전방에서 지내던 시절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따라갔는데 나와 친하던 음악 교사가 휴직서 제출하고 떠나는 날 보고 한마디 던졌다. "대개 휴직서 내고 떠나면 다시 학교에 오지 않더라. 그러지 마." 하셨는데 그분의 말씀처럼 다시 복직하지 않았다. 전방에서 둘째 아이 임신하자 아이 아빠의 강제적인 권유로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방에서 지낼 무렵 영하 17도 정도.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서서히 적응이 되어갔다. 전방에 살 집을 구하러 가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낯선 고속도로를 달리다 서울로 진입하는 대형 버스와 접촉사고도 생겼지만 버스는 휙 하고 그냥 지나가고 난 공포에 휩싸였다. 슬쩍 스친 것 같은데 내 차는 형편없이 쭈글쭈글 해졌다. 전방에 살만한 집은 너무 귀하고 아파트 전세도 너무 비싸고 어렵게 월세방 구했던 힘든 시절도 있었다. 1주일 동안 나 혼자 집 구하러 다녔다.
30평 아파트에 짐은 그대로 두고 아주 작은 트럭에 꼭 필요한 물건만 싣고 전방에 갔다. 친정아버지가 해외여행 시 사다준 윌슨 테니스 라켓, 바이올린과 악보, 피아노 악보, 이불과 옷가지 등.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에서 1년 정도 살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바이올린 레슨비는 너무 비싸 레슨 받기 어려워 대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기초 과정이 끝나자 집에서 연습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보충 수업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피아노를 구입해 매일 연습을 했다. 새벽에는 테니스 레슨 받으러 가고. 군인 급여는 너무 작은데 아이 아빠는 용돈으로 총급여의 3/4을 가져가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라고 하니 힘든 시기였다. 학교에 휴직서 제출하니 평소 받던 급여도 없는 형편에 갑자기 쪼그라든 형편에 적응도 쉽지 않고. 피아노 연습하니 주위 사람들이 찾아와 레슨해 달라고 부탁하니 몇 명 레슨 해주고 그 돈으로 내 피아노와 테니스 레슨비 지불하고 PX에 가서 꼭 필요한 물건 구입하고 5일장에 가서 장을 보았다. 한마디로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지냈다. 눈뜨면 피아노 연습하고 책 읽고 테니스 레슨 받고 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어린 딸 키우던 시절. 둘째 아이 임신하게 되자 테니스 레슨도 중지하고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삶은 뜻대로 되지도 않고 힘든 시절이 참 많아. 아무 말하지 않으면 난 언제나 천국에 사는 사람인 줄 알다 내가 이리 살았어,라고 한 마디 하면 대개 놀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신의 은총을 받은 건가. 보통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날 지옥 훈련시켰어. 그런 힘든 시절이 없었다면 더 힘든 뉴욕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 가는 길 너무 추워 전방 시절 추억에 잠기다 몇 정거장 가서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 도착 다시 로컬 7호선에 탑승 타임 스퀘어 역에 내려 로컬 1호선에 탑승해 링컨센터에 내렸다.
목요일 오후 4시 비올라 대회가 열리고 4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난 두 명 학생 연주만 감상했다. 몸이 피곤하니 차라리 휴식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폴 홀을 나와 줄리아드 학교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가서 쉬었다.
그래도 누가 우승했는지 궁금해서 커피 마시고 로비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청바지 입은 할아버지는 프로그램에 1등, 2등, 3등, 4등이라고 표시했어. 할머니도 내게 누가 우승할 거 같냐고 물어서 난 두 명 학생 연주만 들어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잠시 후 발표를 했는데 할아버지 예상과 달랐다.
저녁 7시 반 포커스 축제에 갔는데 조금 전 만난 할아버지도 오셔 왼쪽 코너에 앉아계셨다. 줄리아드 학교에 자주 공연 보러 오시는 할아버지. 컨템퍼러리 음악 축제도 들을만했지만 저녁 8시에 열리는 다른 공연 보고 싶어서 휴식 시간 얼른 홀을 떠나 모세 홀에 갔다. 모차르트, 베르디, 슈트라우스 아리아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불러 너무 좋았어. 미리 프로그램 알았다면 포커스 축제 안 보고 아리아 공연 봤을 텐데 미리 알 수가 없었다.
너무너무 추운 날이라 홀이 텅텅 비었다. 박사 과정 학생은 너무 추운 날 공연 보러 와서 감사하다고 인사말을 했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비올라 연주와 포커스 축제와 박사 과정 공연 봤어.
1월의 마지막 날 카네기 홀에서 내가 사랑하는 카운터테너가 공연하는데 티켓값이 너무 비싸 눈을 감았어. 수년 전 링컨 센터에서 줄리아드 학생 공연 볼 때 처음으로 본 카운터테너 목소리 듣고 행복했지. 어제는 집에서 지내다 맨해튼 음대 성악 마스터 클래스 열리는데 깜박 잊고 말아 아쉽기만 하다. 맨해튼 음대 성악 너무너무 좋은데 놓치고 말았어.
아들 친구는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일하는데 오래된 빌딩에 사무실이 있는데 아들 친구가 근무하는 방은 태양이 폭발할 듯 더운데 대신 다른 곳은 강추위로 고생을 한다고 하니 웃고 말았어. 낡은 빌딩이라 히터 시스템이 엉망이라서 맨해튼에서 이런 일도 벌어지나 싶어. 뉴욕도 강추위 시카고는 더 춥다고. 우리 집도 1월 중순경 태양이 폭발할 듯 더웠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20도 기온이 내려가 많이 춥다. 그때는 아들 친구처럼 아파트 히터 시스템이 고장 나서 그런 거 아닐까 짐작을 한다. 1-2도 기온차도 적응하기 힘든데 20도 정도 기온이 내려가니 더 추워.
링컨 센터에서 지하철 타고 타임 스퀘어에서 환승 플러싱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 기다려 타고 조금 전 집에 돌아왔다. 메모를 마치니 자정이 가까워져 간다.
1. 31 목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