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내리는 날 맨해튼에 가서 놀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지상에 하얀 눈이 덮여 있는 화요일 아침 눈부신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 눈뜨자마자 설거지하고 커피 끓이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펑펑 내리던 하얀 눈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하얀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운 건 아직도 젊다는 말일까. 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고 날 보는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
어제 펑펑 내리는 하얀 눈 보려고 코니 아일랜드와 센트럴파크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마음만 보냈어. 천재들이 일하는 구글은 왜 내 속을 상하게 하는지.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구글이 곧 버스가 도착한다고 했지만 20분 이상 기다렸어. 20분 동안 하얀 눈 내리는 동네 풍경이라도 아이폰에 담았으면 좋으련만 이웃집 남자가 큰 삽으로 눈 치우는 것 보고 하얀 목련꽃이 언제 피나 생각하는데 버스가 도착했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역에 도착 다시 7호선에 몸을 싣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 내리는 뉴욕 퀸즈의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았지. 누군가는 낡고 오래된 빌딩 안에서 일을 할 테지. 어디서 내릴까 하다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환승 맨해튼 미드타운 지하철역에서 내려걸었다. 눈 내리는 날 맨해튼에서 몇 차례 슬라이딩도 했지. 아슬아슬한 순간 균형을 잡고 멈췄다. 낯선 사람이 날 보며 "괜찮아요?"라 말했지. 곧 엉덩 방아 찧을 뻔했는데 다행이었어.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넘어졌으면 옷이 엉망이 되었을 텐데 속이 얼마나 상하겠어.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나의 첫 번째 도착지는 5번가 북카페. 우산을 접어 투명한 비닐에 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갔는데 누가 막 떠나 빈자리에 가방 두고 커피 주문하러 갔다. 바리스타는 날 기억하고 웃으며 인사를 했어. 밸런타인데이라고 북 카페에서 레드벨벳 치즈 케이크 세일하니 한 조각 사 먹었어. 평소 약 5불 하는데 세일 가격은 2불. 항상 2불이면 좋겠네.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독일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슬픈 독일어.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공부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나 아쉽기만 하네. 맨해튼 지도를 펴놓고 뭐라 뭐라 플랜을 짜는 눈치. 젊은 아가씨와 나이 든 남자였는데 부녀 사이인지 연인 사이인지 약간 궁금도 했지.
몇 년 전 메트에서 오페라 보러 갔는데 패밀리 서클 내 옆자리에 앉은 런던에서 온 신사는 젊은 아가씨랑 와서 처음으로 뉴욕에서 오페라 보는데 너무너무 좋다고 하며 내게 자주 오페라 보러 오냐고 물어서 가끔 오페라 본다고 했는데 쉬는 시간 패밀리 서클 화장실에 가는데 내 뒤를 졸졸 따라오지 뭐야. 패밀리 서클은 여자 화장실만 있는데 웃고 말았어. 북카페에 온 커플 보고 메트에서 만난 런던에서 온 신사도 기억났어.
북 카페에서 나와 지하철역 가는 길 금과 다이아몬드 파라고 푯말 들고 서 있는 남자 보며 과거 시절도 생각났어. 한국에 IMF가 찾아와 금 모으기 행사할 때 차곡차곡 모아둔 금반지 모두 팔아서 불어 수업료 지불했던 기억. 작은아이 출산하니 사직서 제출하고 집에서 지내라고 해서 나중 두 자녀 크면 공부해도 되겠냐고 물었지.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니 아이 아빠는 언제 그런 말 했냐고 하니 답답하지. 암튼 나의 마음은 변함없는데 항상 자정 넘어 귀가하는 아이 아빠에게 이제 과정 마쳤으니 아내 위해 가끔 집에서 아이 돌보라고 하니 더 늦은 시각에 돌아오더라. 난 이미 학원에 저녁 시간 불어 강좌에 등록했는데 누가 아이를 보살펴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없어. 아이 아빠는 안 척도 안 하고. 그래서 고민하다 금을 팔아서 개인 수업을 받았어. 그때 금반지 팔지 않았다면 난 부자 되었을 텐데 불어는 다 잊어버렸는데 슬프네.
난 5개 언어 구사하고 두 자녀들은 7개 언어 구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이상이 하늘처럼 높은 나. 남들은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왜 난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위기 위기에 몰리니 외국어가 뭐야. 정신병자도 아닌데 세상에 소문 해니 세상 사람 모두 날 피하더라. 너무너무 슬프고 너무너무 힘들었지. 절망의 바닥에 떨어져 울었던 세월. 위기 탈출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유학 수속해 뉴욕에 왔지. 그런 환경에서 어린 두 자녀들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두 자녀 모두 사춘기 시절. 집안이 위기가 아니더라도 광풍의 시절을 보낸 사춘기인데. 어린 두 자녀는 무슨 죄가 있다고 늘 죄인 같은 마음이다. 다른 나라에 와서 힘든 교육 과정 아무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하고. 아...
오랜만에 라커펠러 센터 채널 가든과 하얀 아이스링크도 구경했지. 눈 펑펑 내리는 날 스케이트 타니 더 낭만적으로 보이더라. 채널 가든에는 예쁜 등을 세워두어 마치 아트 같았어. 계절별로 변신하는 채널 가든 볼만해. 봄이 되면 하얀 백합과 황금빛 수선화 꽃과 보랏빛 히야신스 꽃으로 장식하겠지. 상상만 해도 봄은 행복을 줘.
어제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니 날 위해 근사한 플랜을 세웠어. 뭐냐고. 궁금할 거야. 메트에서 오페라 봤지. 러시 티켓 도전했는데 운이 좋았나 한 장 구입해 박스 오피스에 찾으러 갔다. 박스 오피스에 도착 직원에게 리골레토 오페라 티켓 달라고 하고 지하철 타고 콜럼비아 대학 밀러 시어터에 가서 이해하기 힘든 컨템퍼러리 곡을 감상했다. 여기는 클래식 음악 들으며 맥주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특별한 공연장. 어제는 블루문 맥주 마시며 음악 감상했지. 그런데 입구에서 학생이 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도 않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술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만 21세이니 신분증 보여 달라고 하는데 내 얼굴에 주름살이 너무 많은가. 슬퍼. 슬퍼.
클래식 기타리스트 연주하니 대학 시절 내게 레슨 해주던 선배도 떠오르고. 매주 레슨 받으러 가면 늘 예쁜 여자 선배도 왔는데 눈치가 제로인 나는 두 선배가 연인 사이란 것도 몰랐는데 나중 결혼을 했어. 레슨 때마다 여자 선배도 나타났는데 왜 난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몰라. 난 지금도 사람들 마음을 몰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내가 세상 사람들 마음을 어찌 알겠어. 그러고 보니 내일은 밸런타인데이네. 누군가는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하겠지.
버틀러 도서관
사랑하는 콜럼비아 대학 버틀러 도서관도 바라보고 추억에 잠겼어. 도서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도 보고 가끔 이벤트도 보러 갔는데 요즘 나의 에너지는 잠들어 있어. 도서관 내부가 영화처럼 아름다워. 귀족처럼 멋진 도서관. 대학 교정 입구는 아직도 황금빛으로 장식해두니 예쁘다. 오래오래 컬럼비아 대학에 머물 시간은 없었어.
저녁 7시 반 메트에서 오페라 봐야 하니 얼른 지하철 타고 링컨 센터 역에 내려걸었다. 새해 나의 계획 가운데 하나가 1주일에 1회 오페라 보는 것. 오페라 보러 가는 게 마치 학교에 수업받으러 가는 것처럼 긴장이 필요해. 수업 끝나고 시험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늦은 밤 오페라 막 내리면 얼른 지하철 타고 플러싱에 돌아와 다시 시내버스 타고 집에 돌아와야 하니 너무너무 힘들지.
지난번 안드레아 보첼리 공연 볼 때 만난 할머니가 어제 리골레토 오페라 보러 간다고 하니 나도 스케줄을 봤어. 어제 러시 티켓은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25불 주고 산 티켓 좌석이 너무나 좋은데 난 중앙보다는 오페라 막 내리면 얼른 집에 돌아갈 수 있는 코너가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중앙에 앉아 오페라 봤어. 오페라는 대개 연세든 분들이 오고 가끔 연인들도 오고 어제는 멋진 드레스 입은 중국 아가씨들이 많이 와서 놀랐어.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리골레토 오페라 봤는데 어제는 나 혼자 보러 갔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라고. 불쌍한 리골레토. 왜 하필 리골레토 딸이 바람둥이 공작을 사랑한 거야.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음악이 정말 멋져. 3막으로 구성되었는데 2막에서 리골레토 딸이 아버지에게 어쩌다 사랑에 빠졌는지 고백하는 장면 아리아가 죽여주더라.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데 낯선 남자가 지켜보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꼈다고. 가난한 학생이라고 속인 바람둥이 공작은 리골레토 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바람둥이와 사랑에 빠진 딸에게 화가 나서 공작을 살해하려고 청부업자에게 돈을 줬는데 리골레토 딸이 공작 대신 죽어버려. 어릴 적부터 자주 들은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흐른다. 여자의 마음 아리아를 부른 사람은 바람둥이 공작이야. 바람둥이가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고 하니 우습지. 세상의 여자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어 버린 바람둥이는 왜 존재할까. 사랑하고 사랑에 속고 사는 게 삶일까.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나는데 왜 사는 동안 고통받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을까.
2. 13 화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