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카네기 홀 빈필, 줄리아드 예비학교, 소더비, 센트럴파크
월요일 브런치를 먹고 나니 정오가 되어간다. 어제 뉴욕에 눈폭풍이 찾아와 밤새 하얀 눈이 예쁘게 소복소복 내려 그림 같은 풍경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아파트 슈퍼가 눈을 치우고 있고 난 어제 만난 일본에서 온 여행객 할머니와 한인 택시 기사 글을 작성하고 나서 식사 준비를 했다.
어젯밤 하얀 눈이 펑펑 내려 너무너무 예쁜데 밖에 나가서 사진을 담을 힘이 없을 정도로 몸이 녹초가 되어가 일찍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연인을 만나 데이트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예쁜 눈이 밤새 내렸는데 젊은 청춘들은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을까. 청춘뿐이겠는가. 여든이 되어도 사랑하고 싶은 노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사랑이 생의 전부라면 하늘나라에 가기 전 사랑도 하고 싶은 만큼 해야지. 누구에겐 사랑은 사치이고 누구에겐 사랑은 공기처럼 없어서 안 되는 것이고.
어제 만난 한인 택시 기사 이야기는 참 슬프다. 뉴욕에 와서 실패의 맛만 봤다고 하니 더욱 쓸쓸해졌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뉴욕의 삶은 팍팍하고, 부인이 자녀 교육위해 이민 가자고 해서 왔지만 자녀 교육조차 실패하고, 가장으로서 권위는 없고, 부인은 먹고 놀기만 하고 여러 가지로 너무너무 힘드니 차라리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교통사고가 나서 처리하고 돌아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서민들의 삶은 지구촌 어디든 힘들지만 내가 그동안 뉴욕에서 만난 기사분들 가운데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기사에게 "학교 교육이 전부가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얼마나 귀담아 들었는지 모른다. 공부에 재능 많은 사람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다. 모두 재능 많으면 '재능'이란 표현도 없겠지.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 특별한 과정을 밟은 사람은 공부가 중요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지. 스티브 잡스도 대학을 중퇴했고 잡스 학교 성적도 우수하지 않다고 하더라.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다 간 스티브 잡스. 우리에게 '해리포터'의 저자로 알려진 J. K. 롤링 학교 성적도 보통이었다는 글을 몇 달 전 뉴욕 타임스에서 읽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면 언젠가 기회가 올지도 몰라. 난 그런다고 믿는다. 하늘 같은 노력을 하면 하늘의 길이 열리겠지.
한인 기사와 대조적으로 일본 삿포로에서 온 여행객 할머니 이야기도 재미있다. 40년 전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할머니는 1년에 2-3회 뉴욕에 와서 공연과 전시회를 본다고 하니 놀랐어. 친구랑 같이 오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뉴욕에 여행 온다고.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를 무척 사랑하는 분. 언제 하늘나라로 떠날지 모르지만 돈과 시간이 많아 자주 뉴욕에 오고 싶다고. 자본주의 물결이 춤추는 뉴욕에서 이민자 삶은 정말 힘들지만 여행객은 좋기만 하지. 매일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과 전시회를 마음껏 볼 수 있으니. 경제력이 허락한다면 얼마나 좋겠어. 그 할머니도 나도 빈 필하모닉 공연을 봤어. 오늘은 메트에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표를 사서 보러 갈지 모르겠다. 열흘 정도 뉴욕에 머문다고 하니 수요일 오후 기부 입장을 하는 프릭 컬렉션에 꼭 방문하라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민에 관심이 많아서 할머니에게 일본 사정은 어떤가 물으니 일본도 이민자 삶은 너무너무 힘들다고 강조했다. 멀리서 보는 외국 생활은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민은 '백문이 불여일견' 속담처럼 스스로 경험해야 이민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된다. 보통 사람 이민생활은 힘들다고 천 번 들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뭔지 잘 모른 게 '이민'이다. 그래도 이민하고 싶으면 한 번 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항상 기회가 열려있으니.
어제 오후 2시 카네기 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카바코스 협연 공연을 봤다. 음악 사랑하는 수잔 할머니도 만나고 중국 시니어 벤자민 부부도 만나고 일본 출신 젊은 청년도 만나고 지휘자 등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난 토요일보다 빈 필 공연도 훨씬 더 좋았다. 빈필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나의 기대치도 높고 카바코스가 협연했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연주는 특히 좋았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폴란드 오케스트라와 한국 지방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곡이라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어서 어제 공연은 꼭 보고 싶었다. 모차르트 교향곡 주피터는 기대에 약간 미치지 못했지만 하이든 곡도 좋았어.
지난 토요일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일본 모자 디자이너를 2년 만에 우연히 만나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놀랍게 그녀 집에 날 초대해서 갑자기 그녀 아파트에 가서 그녀가 준비한 식사도 먹고 일본 티와 디저트까지 먹고 그녀가 키우는 20살 된 고양이도 봤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도 벽에 걸려 있었다. 일본 교토 출신 그녀는 24세 뉴욕에 유학 와서 SVA & FIT 졸업하고 결혼하고 디자이너 길을 걷고 나랑 비슷한 나이인 거 같으나 몇 살인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녀는 전문 커리어 길을 위해 아이를 출산하지 않고 난 그녀와 달리 두 명의 자녀를 출산했지. 그녀랑 함께 식사하고 소더비 경매장에 가서 전시회 구경했는데 외투와 가방을 맡기려 하니 여자 직원이 그녀가 입은 옷을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어서 그녀 스스로 만든 거라 하니 놀랐다. 모자 디자이너로 일하는 그녀는 어릴 적 엄마가 집에서 옷을 재단하는 것을 보고 자랐고 할머니가 기모노를 만들어 주셨다고. 할머니는 무용 선생님이라 그녀도 댄스를 춘다고 하고. 암튼 그녀는 어릴 적 엄마와 할머니를 보고 배운 게 많고 훗날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뉴욕에 유학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와인을 파는 숍에서 일해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당시 일본 경제가 아주 좋아서 와인 마시는 게 붐이었다고 또 그 무렵 일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버니 맨해튼 라커 펠러 센터도 구입했는데 그 후로 주인이 바꿔졌다고 했다. 그녀는 모자를 만들어 파나 옷과 시계 등 직접 만든 것을 입고 다닌다. 멋쟁이 소더비 직원이 그녀가 만든 옷에 감탄을 하고 옆에 있는 흑인 여직원을 내가 안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 자주 소더비에 가니 서로 알게 되었어.
소더비에서 전시회 보고 시내버스를 타고 카네기 홀 근처에 내려 센트럴파크에서 산책을 했다. 3월에 하얀 눈 내린 공원이라 그림처럼 예뻤어. 그녀 사진도 찍어주고 그녀는 맨해튼에서 일하는 세계적인 사진가과 예술가 등을 아는데 내게 사진 잘 찍는다고 말하니 기분이 조금 좋았어. 뉴욕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가 칭찬하니 기분 나쁠 리 없지. 그날 오후 4시 집에 모자 주문할 손님이 온다고 하니 그녀랑 헤어졌다. 메트(오페라)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메트에서 활동한 성악가 친구 초대받아서 멋진 아파트에 방문했다고. 햄튼 별장에도 초대받아 보랏빛 라벤다 꽃 가득한 들판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을 알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녀도 내게 아트 축제와 무료 공연 티켓 주고 난 그녀에게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즈 파티도 소개하고,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공연 보라고 말했다. 참 고마운 친구다.
그녀는 집에 손님 만나러 돌아가고 난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토요일이라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이 많이 열렸고 저녁 6시 예비학교 교수님들 공연도 봤다. 아름다운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곡을 들으며 행복했다.
그날 토요일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그녀도 나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봤다. 오페라도 사랑하는 그녀는 일 하느라 너무 바쁘니 오페라 보러 가면 명상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매년 카네기 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지만 올해는 4번이나 공연이 열리고 지난 토요일 첫날이었는데 음악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아왔다. 지휘자, 작곡가, 디자이너, 교사, 은퇴한 중국인 벤저민, 사진가 등 많은 사람들을 봤다.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니 정말 피곤했다. 하얀 설경이 너무나 예쁜데 호수에 사진 찍으러 갈 에너지가 없네. 아직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꿀처럼 달콤한 휴식을 하고 싶어.
3. 4 월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