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슬픈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 소식
꽃피는 춘삼월인데 우울한 날들이 지속된다.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 비행기 추락 사고로 157명이 사망했다는 참사. 에티오피아항공 보잉 737 맥스 여객기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케냐 수도 나이로비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이륙한 지 6분 만에 소식이 없고 추락했다는 소식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추락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항공기에 탑승했던 유가족들과 친구들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 2분 늦게 도착한 그리스 남자는 지각한 덕분에 하늘이 도와 목숨을 구했다고. 그는 추락한 비행기에 탑승한 마지막 손님을 보면서 타지 못해 화를 냈는데 거꾸로 혼자 살아남았으니 운명이 뭘까.
며칠 우울했고 나의 에너지는 지하로 잠수했다. 지난 월요일 뉴욕대에서 피아노 공연을 보려고 미리 예약했는데 포기하고 집에서 지냈다. 그날 페루에서 낯선 전화가 걸려왔고 세상에 태어나 페루에서 전화받기는 처음이었다. 여행사에서는 여행하라고 연락이 오고. 항공기 추락 사고로 여행사는 타격을 입겠어. 비행기 타고 여행하기 너무 무섭잖아. 아름다운 봄이라 세계 여행하려고 여권 만들고 룰루랄라 하면서 하늘을 날 거 같은 사람도 많을 텐데 항공기 추락 사고로 모두 놀랐겠지. 세계적인 셰프가 운영하는 장 조지 레스토랑에서는 식사하라고 연락이 오고. 지난 월요일 저녁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가서 평화로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산책을 하다 집에 돌아온 게 전부나. 바로 메모하자 않으니 나의 기억도 사라져 갔다.
어제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은 지옥을 연상케 했다. 홈리스는 구걸하러 다니고 플랫폼에서 승객들은 고래고래 악을 쓰고 평소 익스프레스로 운행하는 지하철은 로컬로 운행하고. 소란스러움의 정도가 지나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종점 역인데 승객들은 얼마나 많은지 빨리 자리 잡으려고 하니 마치 전쟁터 같았다.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 역에서 내렸는데 봄바람이 겨울처럼 차가워 두터운 겨울 옷을 입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 역에 도착 30분 정도 후에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에 탑승했다.
어제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린 공연이 열렸다. 40년 이상 연주활동을 한 그녀는 아직도 너무나 우아하고 고운 모습으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매년 카네기 홀에서 그녀 연주가 열리고 수년 전부터 해마다 그녀 연주를 보고 있다. 그녀의 오랜 피아노 파트너인 램버트 오키스와 연주를 했고 피아니스트 연주가 정말 좋았다. 갑자기 공연 프로그램이 변경되었다. 원래 한국 작곡가 진은숙 곡을 한국 바이올리니스트와 듀엣으로 연주하려고 했는데 취소되고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다. 갑자기 변경된 프로그램으로 준비가 덜 되었는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했고 차츰 바이올린 소리가 더 좋아졌다. 안네 소피 무터에게 헌정한 곡은 세계 초연이고 작년 줄리아 피셔랑 함께 연주했던 첼리스트와 램버트 오키스와 함께 연주를 했다. 휴식 시간 지나고 연주했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와 플랑 곡이 듣기 좋았다.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을 보러 온 중국인 시니어 벤자민도 만났다. 지난주 금요일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고 그날 난 카네기 홀 공연을 보지 않고 대신 집에서 세탁을 하다 딸이 뉴욕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고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을 구입해서 베르디 오페라를 봤다. 벤자민에게 그날 공연이 어떠했는지 묻자 피아니스트 연주가 좋았지만 오케스트라 연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제 서부 샌디에이고에서 온 젊은 과학자도 만났다. 뉴욕에 여행 와서 1주일 정도 머무는데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을 보러 왔다고. 샌디에이고가 아름답다고 오래전 들은 적이 있지만 난 그곳에 여행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니 과학자에게 샌디에이고에 대해 물었다. 리서치 센터도 많고, 멕시코와 국경지대라 아주 가깝고 군사 기지가 있고, 해변가 지역은 집값이 아주 비싸지만 사막과 가까운 지역은 집값이 저렴하다고.
메트 뮤지엄에서 일하다 은퇴하고 온 지팡이를 들고 온 할아버지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출신이라고. 디트로이트는 뉴욕보다 훨씬 더 춥고 5월에도 가끔씩 눈이 온다고 하니 난 그곳에 살면 안 되겠어. 디트로이트는 시카고와 가깝지만 시카고가 디트로이트 보다 더 춥다고 하고. 카네기 홀에서 매년 25회 정도 공연을 본다는 음악을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 사고에 대해 말하며 기차를 타고 여행하라고 하니 웃었다. 기차 타고 다른 나라에 여행할 수 있나. 유럽이면 가능할 텐데.
독일 출신 백발 할머니도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나는데 그분 이름은 묻지 않아 잘 모르고 어제는 할머니 남편을 카네기 홀에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볼 적 만났다고 하니 놀랐다. 뉴욕에 더 빨리 왔다면 카라얀과 파바로티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난 늦게 왔어. 뉴욕이 뭔지도 몰라 관심조차도 없었다.
어제저녁 6시 콜럼비아 대학에서 Pop Up 공연이 열렸다. 처음 듣는 컨템퍼러리 음악이라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피아니스트 터치가 무척 아름다웠다. 밀러 시어터 입구에서 파란색 종이 팔찌를 손목에 끼워주는데 나이가 적힌 뉴욕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 요즘은 내게 신분증 조차 요구하지 않으니 난 너무 늙어버렸나. 참 슬프네. 벌써 늙어가면 어떡해. 파란색 종이 팔찌는 맥주나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표시. 며칠 우울의 나라에서 지내니 사무엘 아담스 맥주 한 병을 달라고 해서 맥주를 마시며 피아노 음악을 감상했다. 맥주가 온몸에 퍼지면 서서히 몸이 마비된 느낌이 온다.
Pop Up 공연 보기 전 콜럼비아 대학 교정을 거닐다 공연을 보고 카네기 홀에 가려고 지하철을 타고 아들에게 연락하니 카네기 홀로 오는 중이라고 하니 약간 시간적인 여유가 남아 카네기 홀 근처에 있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 2층 갤러리에 갔다. 마침 리셉션이 열리는 중이라 갤러리 안에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와인과 딸기와 쿠키를 먹고 전시회를 보고 나와 카네기 홀에 갔다. 아들에게 어디쯤 오고 있냐고 물으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에 도착했다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잠시 후 우리는 만났다.
어제 맨해튼 5번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부부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너무 정답게 보인 부부라 보기 좋았다. 불어, 아랍어, 히브리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시니어 할머니는 프랑스 파리에서 명성이 높은 에꼴 데 보자르 졸업했다고 하니 놀랐고 매년 프랑스 Côte d'Azur에 여행을 간다고. 지중해 모로코도 정말 아름답고 세계여행을 자주 한다는 시니어는 예쁜 모자를 쓰고 오셨다. 지금은 뉴욕 롱아일랜드에 거주한다고 하고 5번가 플라자 호텔 맞은편에 있는 애플에 가서 아이폰을 구입하러 간다고. 이스라엘에서 탄생한 부부라고. 시니어 할머니는 엄마가 스페인계라서 스패니쉬는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니 놀랐고 더 놀란 것은 그녀가 변호사라고. 그녀 남편은 프랑스 문학 박사 학위가 있고 프랑스 파리에서 유엔 대사로 지내다 은퇴했다고. 필립 로스와 밀란 쿤데라 책 두 권을 구입했던 노부부의 신분은 북 카페 떠나기 직전 말씀하셨다. 그 부부가 뉴욕에 여행 온 줄 알았는데 여행객이 아니었다.
북 카페에서 나와 피자 한 조각 먹으러 갔는데 직원에게 피자 달라고 말하고 지갑을 여니 텅텅 비어 깜짝 놀랐다. 지난주 금요일 밤 통닭을 주문하면서 지갑에 든 돈을 다 써버렸는데 그만 잊어버렸어. 피자 한 조각 먹기도 정말 힘들어.
수요일 아침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새소리가 들려온다.
3. 13 수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