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버 뮤직, 타임스퀘어, 북 카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지난 일요일 새벽 2시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되어 아침 7시경 해가 뜨고 저녁 7시경 해가 지고 지난주와 달리 오늘 아침 기온이 영상 7도라 봄기운이 완연한데 어지러운 뉴스를 읽으면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썩어빠진 세상을 탈출해 조용한 섬에 가서 지내면 좋겠구나. 잘못하다간 뉴스 읽다 쓰러지겠어. 며칠 전 보도된 에티오피아 73기 항공기 추락 사고도 충격적인데 미국 역사상 사상 최대 대학 입시 부정 사건이 발각되어 학부모와 학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누구를 위한 대학 입시일까. 한국에서 '스카이캐슬' 드라마가 인기리에 상영하다 막이 내렸다고 하는데 미국 역시 학부모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은 화산처럼 뜨겁다.
미국 대학 입시 부정 뉴스를 읽으면 미국 교육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을까. 두 자녀는 이민자 가정 싱글맘 출신이고 학원에도 보낸 적이 없고 가정교사랑 공부한 적도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힘으로 하며 수능 시험 보고 혼자서 대학에 원서 보내고 나중 대학 합격 소식만 들었던 난 외계인이나 보다.
미국 명문 롱아일랜드 제리코 고등학교 역시 상류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고 화려한 부모의 사회적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들었고 두 자녀는 "이게 맞아?"라고 물었다. 쌍둥이 아들이 제리코 고등학교에 다녔고 한 명은 하버드대학에 입학 다른 한 명은 듀크 대학에 입학했는데 하버드대 입학한 학생이 듀크대 입학한 학생 수능 시험을 대신 치렀다는 이야기도 듣고, 학교 시험 볼 때도 치팅(Cheating) 한다고 자주 들었다.
미국은 기부금 제도가 있어서 부유층 자녀들은 어마어마한 기부금을 내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기도 하고 조지 부시 대통령도 이 제도의 특혜자다. 기부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형 입시 비리가 터진 것은 얼마나 충격적인지.
사람 사는 곳 다 마찬가지다. 한국만 자녀를 스카이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게 아님을 이번 뉴스로 세상에 알려지겠다. 상류층과 특권층 자녀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가 막힌 소식.
어디 대학 입시뿐이겠는가. 인턴십이나 취직도 인맥과 학연이 중요하다. 부모가 특권층에 속하면 인맥 이용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쉽다고 한다. 딸이 대학 시절 월가에서 인턴십 할 때도 인맥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상당수였다고. 그러니 이민자 가정 자녀들은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겠는가. 언어 장벽도 높고, 부모 뒷받침도 없고 인맥도 없고 등. 이민을 오면 사하라 사막에서 오아시스 발견한 것처럼 힘든 삶. 갖지 않은 자는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특권층 자녀가 부당한 방법으로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게 말이 되는지. 너무너무 슬픈 세상이다.
믿고 싶지 않은 슬픈 뉴스를 보면 매일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니 기운도 없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어쩌면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음악 속으로 피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제저녁 링컨 센터 부근 교회에서 열리는 챔버 뮤직 공연을 보러 갔다.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교회 문이 닫혀 밖에서 기다리다 너무 추워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조금 걷다 보니 뉴요커가 사랑하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가 보였지만 빈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와 다시 걷다 올봄 처음으로 화단에 핀 팬지꽃을 보았다.
교회 근처에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도 오픈해 얼마나 좋던지. 줄리아드 학교 근처 센추리 21에 오래전 반스 앤 노블 서점이 있었는데 영업이 어려워 서점 문을 닫아서 슬펐는데 줄리아드 학교와 가까워 가끔씩 이용해도 좋겠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 헌터 컬리지 부근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북 카페가 좋지만 줄리아드 학교와 반대편이라 편리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씩 특별한 공연이 열리는 교회 공연도 너무 좋았다. 커티스 음악원과 매네스 음대 졸업한 음악가도 있고 세인트 루크 챔버 단원으로 활동한 음악가도 있었다. 아름다운 슈베르트와 모차르트 선율에 행복한 밤을 보냈어.
어제도 5번가 북 카페에 갔다. 북 카페 위치가 좋아 편리하고 낯선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면 좋은데 어제는 빈자리도 구하지 못해 북 카페를 몇 바퀴 돌았다. 한 바퀴 돌아도 빈 테이블이 없고 다시 돌고 다시 돌고 다시 돌았다. 다섯 번인가 돌고 나서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았지만 옆에 앉은 젊은 남자 전화 목소리가 너무너무 커서 주위 사람들 모두 짜증이 났고 내 오른쪽에 앉은 백발 할아버지가 젊은 남자에게 가서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컸다. 빈자리 구하면서 몇 바퀴 돌다 우연히 이탈리아 Tuscany 사진집도 보고,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책도 잠깐 읽고 서점을 나와 링컨 센터 부근 교회에 가는 지하철을 타러 미드타운 타임 스퀘어로 향해 걸었다.
언제나처럼 타임 스퀘어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빌딩의 조명도 보고 스트랜드도 지나치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는데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첼로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첼리스트 얼굴을 보면 어릴 적 특별한 병을 앓았는지 정상이 아니고 슬픈 사연이 많을 거 같아 측은하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익스프레스 지하철을 탔는데 지옥처럼 만원이라 설 자리도 없어 힘들었다.
어제 아침 아들과 호수에 산책하러 가서 올봄 처음으로 거북이를 봤다. 겨울잠에서 깨어났을까. 청둥오리 몇 마리, 기러기떼, 백조 한 마리도 보며 호수를 몇 바퀴 돌다 파란 하늘 보며 집에 돌아왔다. 자연은 평화롭고 좋은데 세상은 왜 이리 어지러울까.
3. 14 목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