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드 학교, 크리스티 경매장, 북 카페, 맨해튼 음대, 스펙트럼
일요일 아침 기온 3도. 며칠 전 영상 21도까지 올라 여름 같던데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몸은 불덩이 같아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었는데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유자차를 끓여 테이블에 가져왔다. 왜 하필 봄날에 감기가 찾아와 날 힘들게 할까. 정신없다 보니 성 패트릭스 데이 퍼레이드가 어제인 줄도 모르고 오늘이라 착각했어. 어쩐지 어제 맨해튼에 초록색 모자를 쓰거나 양말을 신거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 이상하다 했는데 나의 착각이었어. 너무 바쁘면 착각을 하기도 할까.
어제 드디어 스펙트럼 라우터를 반납했다. 어제 나의 1순위가 라우터 반납하기.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갔다. 로컬이 사랑하는 심포니 스페이스 극장이 있는 W 96th st. 지하철 역에 내려 스펙트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지나가다 보면 가끔 스펙트럼 보기도 하나 내가 필요할 때 찾으면 안 보여. 잠시 후 스펙트럼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다리는 손님들이 아주 많아 놀랐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예약하지 않았으면 얼른 예약하고 기다리라고 하니 난 고인돌 시대 사람 같이 느껴졌다. 병원 등 특별한 곳에 방문할 적 예약하지만 라우터 하나 반납하는데도 예약을 해야 하다니 놀랐어. 얼마나 촌스러워. 뉴욕에 산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문화가 낯설다. 나의 계획은 문 열고 직원 얼굴 보면 얼른 돌려주고 줄리아드 학교에 공연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나의 계획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기다려야지. 1초가 하루같이 길더라. 짜증이 났지만 참고 기다리고. 목에 가시 같은 스펙트럼 취소했으니 감사하고 라우터만 돌려주면 되니 기다렸다. 마침내 내 순서가 찾아와 직원에게 라우터를 돌려주고 영수증을 받았다. 이제 그 비싼 인터넷 수신료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속이 조금 후련하다.
얼른 지하철을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보러 갔다. 오랜만이었다. 줄리아드 학교가 봄방학이라 한동안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미리 보려고 했던 공연은 볼 수 없었지만 대신 아름다운 클라리넷 연주를 들으며 행복했다. 잠시 후 피아노 연주도 듣고 좋았지만 미드타운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려고 학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다.
라커 펠러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서 갤러리를 둘러보았다. 갤러리에 전시된 미술 작품보다 내 눈에 꽃이 더 예쁘게 보였다. 노인 부부는 예쁜 아시아 미술품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돈 많은 아시아 사람들은 도자기를 자세히 보고 있었다. 아마도 미술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겠지. 나야 눈으로 구경만 하고.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나와 5번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갔는데 초록 물결 가득해 놀랐는데 어제가 바로 축제일이었어. 언제나 손님 많아 빈자리 찾기 어렵고 어제도 빙빙 돌다 늦게 테이블 발견해 잠시 휴식을 했다.
북 카페에서 나와 타임 스퀘어 지하철역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음대에 갔다.
어제저녁 7시 반 맨해튼 음대에서 100주년 특별 공연이 열리는데 몸이 안 좋아 망설이다 방문했는데 사랑하는 그린필드 홀이 가득 차서 놀랐다. 몸이 너무 안 좋아 공연 앞부분만 보고 집에 갈까 하다 마지막까지 공연을 다 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공연이 더 좋았다. 마지막 색소폰 연주는 죽여주더라. 맨해튼은 재즈 공연이 발달된 곳이고 학생들 연주도 좋은데 맨해튼 음대 개교 100주년 특별 공연이라 정말 좋았어. 공연 보러 오는데 날씨와 상관이 없나 봐.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난 너무너무 추우면 공연 보는 거 포기하고 집에 일찍 돌아가기도 하는데 맨해튼 사람들은 밤 9시도 초저녁 같아.
일요일 축제가 열린 줄 알고 어디서 축제를 볼까 생각했는데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어. 수백만 명이 몰려드는 축제 보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 도로도로를 다 막아버려 당황스럽기도 하는데 다행이야. 주말 지하철도 정상 운행 안 하고 도로도로 막아버리면 힘든데 오늘은 축제일이 아니라 괜찮겠어.
몸은 불덩이고 감기가 얼른 나아야 할 텐데 걱정이야.
3. 17 일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