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음대 마스터 클래스, 프릭 컬렉션 전시회, 라커 펠러 센터 빙상
목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말았어. 불덩이 같은 몸이 회복될 때까지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억지로 일어났다. 밀린 일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한단 말인가. 뉴욕의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하늘에서 세상 사람들의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걸까. 에티오피아 항공기 추락 사고로 아직 충격 속에서 지낸 사람도 많을 테고 뉴질랜드 테러 사고도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삶은 끝도 없이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지. 하늘은 알고 있을 텐데 내게 미리 알려주면 얼마나 좋아.
불덩이 같은 몸으로 매일 지옥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단 한 줄의 글을 쓸 시간도 발견하지 못했다. 가방에 랩탑을 담고 움직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낡고 오래된 파란색 가방에는 책 한두 권과 아파트 열쇠가 담아 있을 뿐이지.
어제 수요일 맨해튼에서 많은 행사가 열렸다. 카네기 홀에서 저녁 8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고 아들과 함께 공연을 봤다.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 연속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고 아들은 어제 공연만 보고 난 이틀 연속 공연을 봤다. 지난 화요일 르네 플레밍 공연이 열렸을 때 카네기 홀 직원은 왜 아들이 오지 않냐고 물었다. 어제는 낯선 피아니스트 선율도 감상하니 좋았고 뉴욕 초연인 곡이라 연주가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을 했다. 마지막 곡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연주가 가장 좋아 몸이 금방 회복될 거 같았고 어제 첫 번째로 연주했던 리스트 메피스토 왈츠는 부분 부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종일 맨해튼에서 머문 엄마를 위해 아들은 도시락을 준비해 와 함께 먹고 공연을 보러 갔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제프도 만나고 70년대 카네기 홀에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볼 때 남편을 만났다는 백발 할머니 독일어 강사도 만났다.
Pinchas Zukerman’s 70th Birthday Celebration
7:30 PM, Neidorff-Karpati Hall
Performance
20세기 후반의 세계적인 지휘자 핀커스 주커만의 70세 생일 특별 공연이 어제 맨해튼 음대에서 열렸다. 1967년 25회 레벤 트리 국제 콩쿠르에서 정경화와 공동 우승한 주커만은 현재 맨해튼 음대에 재직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카네기 홀에서 이작 펄만과 함께 공연할 때 주커만의 연주를 들었다. 어제 특별 공연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카네기 홀 스케줄과 겹쳐 주커만 공연 대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연주를 들으러 카네기 홀에 갔다. 뉴욕은 음악가 생일 특별 이벤트도 일반인에게 오픈하니(유료) 놀랍고 70세 생일 연주라 더더욱 감명 깊을 거 같다.
과연 난 70세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졌는지 모르지만 건강이야말로 중요한 역할을 할 거 같아 가끔 걱정스럽기도 한다. 생은 알 수 없지만 남은 시간은 건강한 모습으로 살면 축복일 거 같아. 남과 다른 길을 가니 내 삶의 속도로 천천히 천천히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내가 젊을 적 꿈꾸던 일은 할 수 있을 만큼 하다 하늘로 떠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싱글맘과 어려운 환경 속에 자라는 두 자녀가 독립하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아야 할 텐데 자본주의 나라 미국에서 우리 가족의 존재는 깃털보다 더 가벼운 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지만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게 우리 가족의 의무. 40대 중반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온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뉴욕에 오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왜 불가능이라고 말했는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세상이란 정글 속에서 생존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천천히 깨닫고 있다. 20대 세상을 너무나 몰랐던 나.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모르고 내가 아는 세상은 억만 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Nina Lee, Cello Master Class
4:00 PM, Miller Recital Hall
Master Class
Yeni Lee, Collaborative Piano Master Class
4:00 PM, Greenfield Hall
Master Class
어제 오후 맨해튼 음대에서 첼로와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하필 같은 시각에 두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니 난 어디로 갈지 망설이다 한인 첼리스트 마스터 클래스를 보러 가서 아름다운 베토벤 첼로 소나타 선율을 감상하다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도 궁금해 그린필드 홀에 가 보았다. 말하자면 반반 치킨을 먹은 셈이다. 반은 첼로 반은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를 봤다. 아름다운 브람스 첼로 소나타와 세자르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와 베토벤 첼로 소나타 선율이 아름다워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감기가 회복되지 않아 불덩이 같은 몸으로 여기저기 움직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특별 이벤트는 항상 열리지 않으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맨해튼은 마법의 도시.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마스터 클래스도 잠깐 열리고 사라지면 일상으로 돌아온다.
어제 오후 1시 라커 펠러 센터에서 아이스쇼가 열렸다. 하얀 아이스 링크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 올림픽 금메달을 받은 김연아 선수도 생각났다. 얼마나 힘든 길을 오래오래 걸었는지 가끔 생각하곤 한다. 딸이 척 사랑하는 김연아. 어제 그 시간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지구처럼 무거운 내 몸도 바람에 날려갈 거 같이 추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강렬했지만 은반에서 펼쳐지는 쇼를 감상했다. 아이스 쇼를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도 많고 하얀 웨딩드레스 입고 웨딩 사진 촬영하는 신랑 신부도 보았다. 매년 라커 펠러 센터에서 몇 차례 열리는 특별 이벤트 보러 잊지 않고 방문했다.
전에 카네기 홀에서 만난 브라질에서 온 여행객에게 내 아이폰에 담긴 아이쇼를 비롯 수많은 사진을 보여주니 그들도 나처럼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실은 내가 매일 방문한 특별 이벤트는 딱 그 순간에 열리니 여행자가 뉴욕에 와서 나처럼 이벤트 순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미리 매일 이벤트 찾고 스케줄 만들고 방문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열정 없이 불가능한 일.
스펙터클한 빙상 쇼를 보고 메디슨 애비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프릭 컬렉션 부근에서 내렸다. 명품 디자이너의 재주가 빛나는 숍들이 즐비한 메디슨 애비뉴.
오랜만에 오페라 갤러리도 가서 그림 구경도 하고 파란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을 담은 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뉴질랜드를 생각했지. 호수 빛이 너무 아름다워 호텔에서 글쓰기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딱 한 번 뉴질랜드에 방문하고 그 후론 아직 가지 못했다. 세상에서 봤던 가장 아름다운 호수 빛이었다.
잠시 후 프릭 컬렉션에 도착. 지난 일요일 카네기 홀 옆에 있는 마트에서 만난 에쿠아도르에서 온 조각가가 프릭이 아트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하면서 돈 많으니 아트 수집에 열정적이었다는 바로 그 뮤지엄에 방문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6시 사이 기부 입장이라 꽤 많은 방문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과 외투를 맡기고 뮤지엄 티켓을 받고 안에 들어가 정원에서 분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군자란 꽃 보며 하늘로 긴 여행 떠난 친정아버지 생각도 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키우던 식물 군자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바둑도 두곤 했는데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어. 내가 어릴 적 친정아버지는 정원을 가꾸셨다. 프릭 컬렉션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니 정원 말고 사진을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낯선 화가 초상화 전이 열려서 방문했는데 내 마음에 든 작품은 없었다. 초상화에 담은 얼굴 표정은 행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다리는 모델처럼 날씬해 미소를 지었다. 화가의 상상력이 반영된 작품일까 생각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초상화가 걸린 전망 좋은 룸 한가운데 화병에 담긴 하얀 작약꽃이 정말 예뻤다. 프릭 초상화도 다시 보고 사랑하는 램브란트 초상화도 보고 베르미어와 드가 등의 작품을 보고 나와 시내버스와 지하철에 환승해 맨해튼 음대에 갔다.
맨해튼 5번가 도로에는 홈리스가 얼마나 많은지 가슴 아프게 하고 지옥철을 타니 인간의 배설물로 액션 페인팅하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놓았으니 이거 또한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 아닐지. 아름다운 꽃피는 봄이라 갈수록 맨해튼 거리에 여행객은 많아져가고 걷기도 힘든 시절이 찾아왔어. 뉴욕은 세상의 한 복판 별별 풍경을 다 보여준다.
목요일 아침 흐린 하늘 보며 어제 일상만 스케치했다. 이제 브런치 준비할 시간이네. 맨해튼에서 살면서 매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 좋을 텐데 플러싱에 살고 누가 날 위해 식사 준비할 사람도 없고 모두 내 몫이야. 빨리 불덩이 같은 몸이라도 나아야 할 텐데 매일매일 고된 일과에 불덩이는 태양처럼 뜨거워가네.
3. 21 목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