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직 춥다.
한국에는 진달래꽃도 피고 목련꽃도 피었다고 하는데 뉴욕은 아직 춥기만 하다. 아침과 밤 기온차가 너무 커서 적응하기 어려운 시기. 꽃샘추위가 무섭고 바람도 거세지만 새들은 봄이 왔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어제 악몽을 꾼 덕분에 늦잠을 자고 말았고 그래서 세탁을 하지 못하고 오늘 아침 세탁을 하러 갔다. 물세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브런치를 먹고 설거지하려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말도 없이 급수가 중단되면 어찌 살라고. 정말이지 물 없이 어찌 살 수 있어. 물소동 덕분에 모든 일이 미뤄지고 말았다. 늦게야 정상적으로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어서 늦게 샤워를 하고 맨해튼에 갔다.
5번가에 도착하니 홈리스들이 줄을 이어 거리 바닥에 앉아 있으니 가슴이 아파. '세상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하고 외치는 홈리스도 있고 "50불이 필요해요."라고 말한 아주 젊은 아가씨 홈리스도 있고 몇 미터 간격으로 홈리스가 보이는 맨해튼. 극과 극의 세상을 보여준다. 뉴욕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과 더 가난한 홈리스와 여행객으로 나뉜 듯.
북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빈 테이블을 찾는데 손님이 많아서 한참 동안 서서 기다렸다. 코너 둥근 테이블 옆 빈 테이블 위에 가방과 책이 놓여 손님이 사용 중인 테이블이라 짐작했는데 나 보다 더 늦게 도착한 손님 두 명이 코너에 앉은 아가씨에게 옆 자리가 비었는지 묻자 그제야 그녀 짐을 옮겨 놀랐다. 분명 그녀는 나를 비롯 몇몇 손님들이 빈자리 찾는 것을 봤을 텐데 혼자서 두 개의 테이블을 사용하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더 놀란 것은 그녀가 화장실에 간다고 그녀 노트북을 내게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은가. 세상에 내가 빈 테이블 찾으려고 소동을 피우는데 안 척도 안 하다 자신이 아쉬운 입장이 되니 남에게 웃으면서 부탁을 해.
저녁 무렵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공연 보기 위해 타임 스퀘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평소 익스프레스로 운행하는 3호선이 로컬 지하철역에 멈춰 로컬로 운행한 줄 알고 탑승하니 익스프레스로 운행한다고. 할 수 없이 내려서 로컬을 기다렸다. 오래오래 기다린 후 1호선에 탑승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손님이 많아 지옥철인데 더 슬픈 것은 움직이지 않아. 타임 스퀘어에서 링컨 센터까지 약 10분 정도면 도착해야 하는데 1분 정도 가다 멈추고 반복하니 줄리아드 학교 저녁 6시 공연을 볼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포기했다.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않은 사람도 많다고. 일본 모자 디자이너 역시 링컨 센터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헬스 키친에 사는데 평소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하니 놀랐다. 20년 된 자전거가 그녀 아파트에 있었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부잣집 일본 할머니 역시 매일 시니어 센터에 도자기 구우러 가는데 맨해튼 미드타운 5번가에서 걸어서 이스트 빌리지에 간다고 하니 놀랍다. 아주 추운 날은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평소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두 사람 모두 부자라서 더 놀랍다.
저녁 7시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대회를 보기 위해 콜럼비아 대학 역에 내려 거센 바람맞으며 걸었지. 너무너무 추운데 대회를 보러 갔는데 지팡이 두 개를 짚고 오신 할아버지를 봤다. 동네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늘 대회 심사위원이었다. 맨해튼 음대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에서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소나타를 감상했다. 음악을 들으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은 잠시 잊게 되어 좋다. 아름다운 베토벤과 드뷔시의 선율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대회가 막이 내리면 심사 결과를 바로 발표한다고 하나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난 미리 학교를 떠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맨해튼 음대에서 콜럼비아 대학 지하쳘역까지 걷고 지하철과 버스에 4회 환승 후 집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 되어간다. 밤하늘 별을 보고 집에 돌아왔어.
아들은 엄마 대신 닭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혼자서 유튜브 보고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드는 나이가 되었어. 아침에 세탁하러 갈 때도 아들이 엄마를 도와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딸도 고등학교 시절 엄마를 많이 도왔다. 오늘 밤 누가 우승을 했을까 조금 궁금하다. 내일은 우승자 공연이 열리는데 난 다른 일로 바빠서 오늘 파이널 대회를 보러 갔다.
3. 26 화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