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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Apr 05. 2019

아메리칸드림은 사라졌다

뉴욕 한인 택시 기사(39년)와 쉐릴 할머니(뉴욕 거주 약 60년)


줄리아드 학교 로비 



메트(오페라 하우스)



줄리아드 학교에서 저녁 6시 공연을 볼 때 우연히 쉐릴 할머니를 만나 나란히 앉아서 테너,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노래를 들었다. 어릴 적 자주 들은 베토벤의 '아델라이데' 곡도 부르고 귀에 감미로운 곡도 아닌 곡도 있었다. 목소리가 아름다워도 감정 표현이 풍부해야 청중의 귀가 즐겁다. 집안 대대로 음악에 재능 많은 쉐릴 할머니는 합창단 활동을 오랫동안 하고 클라리넷 연주를 하니 음악을 즐기는 수준이 대단하다. 할머니와 함께 공연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면 자주 만나는 몇몇 노인들도 보았다. 몸이 아주 불편함에도 지팡이를 들고 오셔 공연을 보는 노인들도 꽤 있다. 아름다운 공연 보면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뉴욕 문화의 한 단면이다. 쉐릴 할머니랑 6시 공연을 보고 나서 무얼 할 건지 묻고 나서 함께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반에 무료 공연이 열리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갔다. 이미 홀 인원이 차서 우리가 홀에 들어가려면 누군가 홀 밖으로 나와야만 입장할 수 있어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순간. 


줄리아드 학교에서 그곳에 가는 동안 할머니에게 아메리칸드림에 대해 물었다. 영어권 버뮤다에서 초등학교(Sixth grade) 시절  변호사 외삼촌 도움을 받아 쉽게 미국에 이민을 온 할머니.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남자 친구랑 결혼했고 나중 이혼한 케이스. 스탠퍼드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남편을  할머니는 늘 천재라고 부른다. 또한 그분 피아노 연주 실력도 대단하지만 서로 맞지 않아 이혼하게 되었다고. 그분과 결혼 초기 집을 구입했다고. 그런데 요즘은 주택 구입이 너무 어렵고 불가능하니 사실상 아메리칸드림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플러싱의 봄



처음으로 쉐릴 할머니에게 아메리칸드림에 대해서 물었다. 사실 오늘 아침 식사를 하고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가서 뉴욕에서 40년 가까이 산 한인 택시 기사로부터 아메리칸드림은 불가능하단 말을 들어서 쉐릴 할머니 의견은 어떤지 궁금했다. 플러싱도 화사한 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하늘은 그지없이 파랗고 예뻤다. 노란 개나리꽃, 화사한 벚꽃과 자목련꽃과 노란 민들레꽃과 제비꽃이 피어 눈부시다. 컬리지 포인트 BJ's는 한인 마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특히 육류가 싱싱하고 저렴한 편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아보카도, 귤, 우유, 달걀과 치즈 등을 구입했다. 집에 배달된 할인 쿠폰도 가져가 계산대 직원에게 주었다. 




쇼핑 후 빈 박스 찾아 스스로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


가격이 한인 마트에 비해 저렴한 매장이지만 포장지에 담아주지도 않으니 빈 박스를 찾아 스스로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 미국은 서비스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서비스가 돈이다. 오늘따라 적당한 빈 박스조차 찾기 힘들었다. 차가 없어서 장을 보러 가는 것도 부담이 된다. 집에서 걸어서 장을 보러 가고 그나마 물건을 사고 나서 빈 박스라도 쉽게 구하면 행복하나 짐을 담을 박스 조차 구하지 못하면 쉽게 피곤하고 짜증 도수가 올라간다. 아들이 엄마에게 빈 박스 없다고 하지만 내가 빈 박스 만들 수도 없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아무 상자에 담아서 한인 택시를 부른다. 


처음 만난 기사님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서비스 직종이고 손님은 팁을 준다. 기사마다 서비스가 너무 다르다. 아들은 서비스 만족도에 따라 팁을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난 그냥 20% 이상 팁을 주는 편이다. 꽤 젊게 보인 기사는 뉴욕에 온 지 39년이 되었다고 하니 놀랐다. 30세 뉴욕에 와서 지금껏 살고 있다고. 기사님 얼굴이 동안이라고 하자 집안 내력이라고 하면서 어머님 연세가 91세인데 작년에 사이판에 여행 가셨다고 하니 무척 건강하신가 봐. 기사님 아버지는 80세에 돌아가셨다고.  


기사에게 뉴욕 생활이 어떤지 묻자 "그냥 살지요."라고 답변을 했다. 이어서 말씀하길 "사실상 아메리칸드림은 사라졌다고 봐요. 지금은 부부 열심히 일해도 집 장만하기조차 힘들어요. 과거는 부부 열심히 노력하면 집도 샀지요.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해요. 뉴욕에서 인간답게 살려면 연봉이 20만 불 정도는 되어야 해요. 그래야 자녀 교육도 시키고 여행도 하고 그러지요. 한인 의사들은 잘 살아요. 하지만 변호사는 맨해튼 일류 로펌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수입이 좋지만 아닌 경우는 이류 변호사입니다. 신문에 광고하는 이류 변호사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요. 요즘은 부모 도움 없이 집 구입이 거의 불가능해요."라고. 기사는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 사촌 형(신상에 대해서 비공개)이고 그분에게 미국 이민에 대해 들어서 전두환 시절 뉴욕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카네기 홀에서 만나는 수잔 할머니도 역시 미국은 빈부 차이가 극심하다고 한다. 그분 가족도 오래전 미국에 이민 오셔 롱아일랜드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아들도 박사, 여동생도 박사 학위가 있지만 보통 가정생활이 힘들다고 강조하신다. 


언론에 미국 빈부차가 정말 심각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 이민 오면 아메리칸드림을 그냥 쉽게 이룬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이민은 개인차가 너무너무 크다. 이민 적응도는 모두가 달라.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중산층 진입조차 쉽지 않다. 아래 언론에 언급된 기사를 모았다. 이민 준비 없이 와서 성공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 교육비는 얼마니 비싸. 학자금 빚으로 흔들거리는 미국. 










오후 4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바리톤 공연을 봤다. 멋진 공연이었다. 작년엔가 링컨 센터에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를 만났는데 오늘은 지팡이 없이 나타나 반가웠다. 그때 그는 10년 이상 더 늙게 보여 충격을 받았다. 바리톤은 스스로 공연이 만족했는지 무대를 떠날 때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내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자주 만난 분. 파란색 모자를 쓰고 빨간색 스웨터를 입고 오셨다. 요즘 도서관에 자주 가지 않는데 그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뵈었는데 그사이 늙어서 나도 많이 늙어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링컨 센터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오페라 본 지도 꽤 되어가네. 






4. 4 밤 10시 30분 





링컨 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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