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에서 낯선 일본 중년 여자 만나 이야기 듣다.
두 번째 맞는 사월의 월요일 아침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이웃집 정원에서 목련꽃과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계절. 고목나무에서 연한 초록 잎새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너무너무 예뻐.
어제 일요일 오후 2시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공연이 열려서 카네기 홀에 갔다. 1942년 출생(77세) 백발 할아버지의 피아노 선율을 듣고 싶었다. 대학 시절 자주 음반으로 폴리니 음악을 들었고 뉴욕에 오니 그의 연주를 듣게 된다. 얼마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가. 77세 할아버지가 피아노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를 하다니. 70대 후반이라면 건강이 안 좋아 다리도 허리도 아파 힘들다고 하는 시기인데 역시 위대한 음악가들 삶은 보통 사람과 많이 달라. 폴리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196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인터 내서널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했다. 브람스, 슈만과 쇼팽 곡을 연주했다.
공연 보고 얼른 집에 오려고 계단을 걷는데 쇼팽의 선율이 들려왔다. 앙코르 곡으로 쇼팽 발라드를 연주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폴리니 하루 일과가 어떨지 생각해 보았어. 매일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할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나누고 필요 없는 일은 신경 끄고 오로지 피아노 연습에 집중하며 영혼을 불태울 거 같아. 위대한 예술가가 그냥 이뤄지지 않겠지.
폴리니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카네기 홀에 왔다. 어제도 낯선 일본 여자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일본 후쿠오카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녀의 삶이 보통 사람과 많이 달랐다. 그녀는 20년 전 결혼했고 페루, 빈과 런던에서 살다 뉴욕에 온 지 약 2개월 반이 지났고 맨해튼에 산다고. 대학 시절 영문학을 전공했고 피아노 레슨을 꽤 오래 받았고 음악을 무척 사랑한다고. 그녀 남편은 일본 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주말에도 쉼 없이 일을 하니 혼자서 공연 보러 왔고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자녀는 없다고 한다. 자세히 묻지 않았지만 눈치에 일부러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것은 아닌 듯 짐작했다. 뉴욕 메트(오페라)에서 활동하는 페루 출신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Juan Diego Flórez) 공연을 좋아하고 오페라 사랑하는 그녀는 그의 공연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봤다고. 빈도 뉴욕처럼 매일매일 수많은 공연이 열리고 자주 공연을 보러 가서 낯선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컸다고 하니 웃었다. 나 역시 뉴욕에서 낯선 사람 만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삶에 대해 들으며 문득 나의 삶을 돌아다보았다. 중년의 일본 여자와 나의 삶은 극과 극으로 다름을 느꼈다. 갈수록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 많이 다르다. 낯선 도시로 이동하니 보통 사람이 모르는 대가도 치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도자기 굽는 일본 할머니도 만나 그녀에게 소개해주었다. 둘은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트랙킹이 취미인 할머니는 아직 인도에 가지 않았다고. 정말 건강한 할머니 취미는 트랙킹이라고 하니 얼마나 놀라워.
지난 토요일 저녁 카네기 홀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고 그날 공연이 정말 좋았다고 몇몇 사람들이 말했다. 카네기 홀 직원도 내게 그날 공연 좋았지요?라고 물어서 그날 공연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딸이 뉴욕에 왔으니 딸과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직장에서 일하다 주말에 쉬러 왔으니 무리한 스케줄 만들기는 어려워 그날 공연은 포기했다. 바르톡 '푸른 수염의 성주'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는데 메트 오페라 성악가보다 더 잘 불렀다고.
어제 점심시간 무렵 미드타운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특별 공연이 열렸다(The American-Scottish Foundation Pipes and Drums on the Fountain Terrace).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음악 들으며 스코틀랜드 이민자 카네기도 잠시 생각했어. 13세 1주일에 6일 동안 12시간씩 일하며 1.2불 받았다고(지금 가치로 28불). 어려운 환경 속에 자라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미국을 위해 많은 자선 사업을 했던 앤드류 카네기. 그가 기부한 돈으로 오늘날 카네기 홀이 세워졌지. 카네기 홀이 없었다면 유명한 음악가들이 뉴욕에 오지도 않았을 텐데.
미드타운 브라이언트 파크는 황금빛 수선화 꽃과 보랏빛 팬지꽃들이 잔치를 하니 너무너무 예뻤다.
잠깐 음악을 듣다 카네기 홀 가는 길 5번가 북 카페도 지나치고 라커 펠러 센터에서 지하철을 타고 카네기 홀에 갔다.
어제 아침 사랑하는 딸이 버스를 타고 보스턴에 갔다. 딸에게 마리 퀴리 부인의 삶에 대해 적은 책을 선물로 주었다. 인간이 견디고 참기 힘든 환경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노벨상까지 수상한 마리 퀴리 부인 책이 감동적이었다. 우린 7호선 종점 역 허드슨 야드에 내려 버스 탑승할 시각까지 약간 넉넉한 시간이 있어서 허드슨 야드에서 잠깐 산책을 했다.
얼마 전 오픈한 종합 예술 공간 The Shed는 중앙 멋진 빌딩 뒤편 왼쪽 사각형 모양 빌딩.
럭셔리 쇼핑 매장에 들어가서 딸이 엄마 마시라고 주문한 블루 바틀 커피를 뉴욕에서 처음으로 마셨다. 블루 바틀 커피가 명성 높아 한국에도 들어갔다고. 늘 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커피를 마시고 버스 타러 가는 길 우연히 새로운 빌딩 뒤편으로 걷다 하이라인 파크로 연결된 것을 처음으로 알았고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바로 고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놀랐다. 세상에 그럼 우린 늘 고 버스 정류장 찾아가는데 먼 길을 찾아 헤맸단 말이지. 바로 앞에 두고 먼 길을 돌아갔어. 어쩌면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우리 옆에 행복이 있는데 그만 모르고 지낸 것.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 바로 옆에 문제 해결책이 있는데 먼 곳에서 찾으려고 헤매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딸이 잘 지내길 바라면서 딸을 보냈다.
어제는 가고 새로운 날이 왔어. 매일 기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행복을 찾아야지. 매일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책을 읽고 명상하면서 마음을 정화한다. 내게도 아프고 힘든 날이 많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보내노라니 상처가 치유가 된다. 슬픈 과거는 떠나고 아름다운 날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는다. 다시 축복된 하루를 열자꾸나.
4. 8
월요일 아침잠에서 깨어나 노란 유자차 마시며 메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