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일요일 밤을 보내 행복했어.
파란 하늘이 미소를 짓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초록 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다. 눈뜨자마자 설거지를 하고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집에 돌아와 커피를 끓이고 노트북을 켰다.
어제도 주룩주룩 내린 봄비 속에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플러싱에서 메츠 윌렛츠 포인트 지하철역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데 미끌미끌한 도로를 걷기도 몹시 불편했지만 화원에서 예쁜 장미나무 화분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어. 곧 장미의 계절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행복이 밀려와. 장미 정원에 방문할 생각 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장미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겠다.
비는 내리고 지하철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니 훨씬 더 복잡하고 비 내린 날이라 도로는 정체되고 그럼에도 7호선에는 승객들로 붐볐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내려 미드타운 5번가 북카페를 향해 걸었다. 지난 토요일 밤 시내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오래오래 기다리다 결국 한밤중 집까지 걸어온 악몽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힘을 내어 맨해튼에 가고 평소처럼 많은 곳을 가지 않았다.
북카페에 도착하니 빈자리가 없어서 잠시 머뭇거리다 어렵게 5번가 전망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 커피와 함께 책을 읽으려 하는데 주위 사람들 대화로 집중하기 몹시 힘들 때 내 옆자리에 새로운 손님이 나타났다. 투자에 대한 책 10권을 가져왔으니 내 눈은 호수처럼 커다랗게 변했는데 젊은 청년이 내게 인터넷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물어서 알려주었다. 그럼 북카페에 처음 오는 손님이구나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투자에 대한 전문서를 읽으니 놀랍기도 했어. 어렵게 번 돈을 물처럼 쉽게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돈 벌기는 얼마나 어려워. 그런데 거꾸로 돈 쓰기는 얼마나 쉬워. 갈수록 평균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니 백세 인생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무엇보다 건강관리와 재정 관리를 잘해야 할 거 같아. 그날그날 살기도 버겁고 힘든데 노후 생각하면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노란 택시가 달리는 5번가 전망이 보이는 창가 자리는 너무 소란스러워 이사를 했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쿠폰을 모으고, 아가씨가 자주 남자 친구에게 키스를 하는 모습도 보았지.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잠시 커피와 함께 책을 읽다 빈자리를 양보하고 서점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터벅터벅 걸었다. 비가 내려 평소보다 미드타운이 덜 복잡하니 좋았다. 타임 스퀘어 지하철역에 도착해도 거리 음악가도 안 보이고 평소보다 무척 조용하니 좋았어. 줄리아드 학교에 가려면 로컬 1호선에 탑승하는데 주말 1호선도 익스프레스로 운행하니 어쩔 수 없이 72번가 지하철역에 내려 다운타운으로 가는 1호선을 기다려 탑승했다.
저녁 7시 반 챔버 공연에 지각을 하고 말았어. 홀 밖에서 아름다운 비올라 연주를 들으며 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비 오는 날 비올라 소리도 듣기 좋았어. 슈만의 곡이 끝나고 브람스 곡 연주부터 듣기 시작. 졸업 시즌이 다가오니 학생들 공연 볼 날도 얼마 남지 않고 평소보다 공연을 보러 온 청중들도 많지 않아서 고요하고 좋았다. 에너지 넘치고 소란한 뉴욕에서 '고요'란 단어를 연상하게 할 정도의 특별한 밤이었어. 조용히 앉아 비올라와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니 행복한 밤이었다.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반주하는 피아니스트 연주가 얼마나 좋던지. 라벨의 현악 4중주 곡은 아쉽지만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듣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돌아왔다.
링컨 센터에서 1호선에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서 7호선에 환승, 메츠 윌렛츠 포인트 역에서 셔틀버스에 환승, 플러싱에 도착하니 시내버스가 안 보여 봄비 속에 터벅터벅 걸었어. 토요일 밤도 만약 시내버스가 안 올 줄 알았다면 오래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말없이 안 오니 승객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허사였어. 내 앞에서 기다린 남자는 '오 하느님!'이란 말을 열 번도 더 했다. 다시 토요일 밤 악몽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걸었어. 가끔은 포기하는 것도 행복이야.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기다린 것처럼 절망스러운 고통도 없어.
링컨 센터에서 지하철을 타니 하얀 구레나룻 수염 있는 할아버지 홈리스 눈빛은 초조하고 얼핏 보기에 학자 느낌이 나는데 한 밤중 지하철에서 도와 달라고 말하는 신세가 정말 처량해 보였다. 인생은 아무도 모르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아.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도 양복 입은 홈리스가 타서 영국 사람이라고 하면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화를 낸 목소리로 도와 달라고 하더니 무섭더라.
맨해튼에서 몇몇 홈리스를 만나기도 했지만 어제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밤이라 좋았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고요함'이 주는 행복이 내 가슴속에 들어왔지. 마음의 평화가 행복 아니겠어. 이 복잡한 세상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내 마음에 강물 같은 평화가 흐르면 행복해.
월요일 아침 세탁을 하는 동안 글쓰기를 하고 곧 식사 준비를 하고 아들과 함께 장도 보러 가야겠다. 햇살 좋은 날 시원한 바람맞으며 아들과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야지. 힘든 일도 즐겁게 하자.
월요일 아침 기온은 16도.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메모를 마친다.
5월 6일 아침 열 시 십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