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보스턴으로 떠나고
새소리 들려오는 일요일 저녁 조금 전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노트북을 켜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연 보고 지하철을 타고 2차례 환승 후 플러싱에 도착했는데 모처럼 바로 시내버스에 탑승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자주 환승하는 경우 시내버스와 지하철이 바로 연결되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 하지만 대개 기다려야 한다. 특히 주말엔 더 오래 기다려 답답할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 이용한 불편 아닌가.
아침 일찍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딸을 배웅하기 위해 맨해튼 허드슨 야드에 갔다. 생떽쥐베리가 집필한 어린 왕자 떠오르게 한 허드슨 야드 지하철역 아트도 보고 7호선 종점역에 내려 고 버스 탑승하는 곳에 데려다주었는데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했더라면 소동을 피울 뻔했다. 종점역 출구가 두 곳인데 고 버스 탑승하는 곳과 가까운 출구가 닫혀 예상외로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 같아. 딸을 보내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지만 멀리 보냈지.
보스턴행 버스는 떠나고 7호선 종점역 허드슨 야드에서 지하철에 탑승하니 허드슨 야드 공연장 광고 포스터가 보였다. 정거장이 멈출 때마다 승객은 들어오고 타임 스퀘어를 지나 5번가 역에서 내려 반스 앤 노블 북카페로 향해 걸었다. 얼마 전까지 거리에 화사하게 핀 노란 수선화 꽃과 붉은 튤립 꽃은 저 멀리 사라진 5월의 중순도 지나가는 시점. 문을 열고 북 카페에 들어가 빈자리에 가방을 두고 커피를 주문하러 다녀왔는데 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버스 기사가 지리를 잘 모른 듯하고 내비게이터 읽는 것도 서투르다고. 버스 안 승객들 모두 웃고 있다고. 오후 4시가 지나 무사히 보스턴에 도착했다고 소식이 오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북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백발 할아버지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몇 권의 책을 테이블 위에 두고 천천히 읽으시더니 가방에서 딸기를 꺼내 먹고 있더라. 기억에 전에도 본 할아버지였다. 북카페에서 손님마다 다양한 메뉴를 골라 먹고 모카 카푸치노를 먹는 중년 여자에게 낯선 남자가 "당신이 먹고 있는 게 뭐예요?"라고 하니 "모카 카푸치노예요."라고 말하고. 드디어 태양이 불타는 여름이 찾아와 신선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도 많은 듯. 반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치즈 케이크를 먹는 손님도 있고 난 오랜만에 세일 쿠폰을 꺼내 쿠키를 주문했는데 평소처럼 커피만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오니 직원이 내게 쿠키를 가져다주었다.
레디 가가의 노래도 들려오고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자주 들은 "You Are My Sunshine " 노래가 들려오니 문득 양로원 노인들이 그리워졌다. 동시에 아름다운 오이스터 베이 석양도 그리워지고. 기찻길 옆에 있는 바닷가 오이스터 베이 석양이 정말 예뻐서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때 두 자녀랑 통닭 한 마리 들고 가끔씩 찾아가곤 했는데 뉴욕시로 이사를 오니 너무나 먼 곳이 되어버렸어. 양로원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여자 직원이 오이스터 베이를 알려줘서 그 후로 찾아가곤 했지. 알츠하이머와 치매 전문 양로원에서 아들과 난 발런티어를 했지. 노인들 기억은 사라져 버렸지만 과거 젊은 시절 불렀던 노래는 기억하고 부르면서 눈물 흐르면 아들과 내 가슴에도 눈물이 흘렀지. 노인들이 하늘로 떠나기 전 죽음을 앞두고 지낸 양로원에서 발런티어 했던 추억은 정말 쉽게 잊히지 않아.
일요일 오후 2시 반 줄리아드 학교에서 Honors Chamber Music Recital 공연 보려고 서점을 나왔는데 불볕더위가 느껴졌다. 어느새 말없이 여름이 찾아와 버린 건가. 시원한 여름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지하철역으로 가서 로컬 1호선을 기다리는데 지하철역에 여름철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연극제와 포레스트 힐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공연 스케줄 포스터가 보였다. 대학 시절 자주 들은 윌리 넬슨의 이름도 보이더라.
뜨거운 여름철 밤하늘 별을 보면서 연극을 보는 뉴요커들. 셰익스피어 연극 인기가 많아 정오부터 무료 표를 나눠주지만 아침 일찍 셰익스피어 가든에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올여름 연극을 볼 에너지가 있을지. 몇 시간 기다려 연극표를 받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가끔씩 아들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가까스로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 공연이 열리는 모세 홀로 내려가서 챔버 공연을 감상했다. 사랑하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와 브리튼의 현악 4중주 곡을 들었는데 제1 바이올린 음색이 정말 아름다워 황홀한 시간이었어. 라이브 음악을 들으러 간 보람이 있었지. 녹음보다 라이브 음악 악기 음색이 더 좋아.
BEETHOVEN String Quartet No. 8 in E minor, Op. 59, No. 2
BRITTEN String Quartet No. 2 in C major, Op. 36
영국 작곡가 브리튼의 곡은 내게는 귀에 익지 않은 곡. 브리튼의 곡을 연주하니 지난번 펜스테이션에서 만났던 오페라 지휘자가 생각이 났다. 지난 5월 초 브루클린 덤보에서 브리튼 오페라 지휘한다고 보러 오라고 했는데 가지 못했어.
어제 카네기 홀에서 오페라 지휘자를 만나 인사를 했다. 어제저녁 8시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공연이 열려서 두 자녀랑 함께 보러 가서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니 딸이 놀라는 눈치였다. 평소 엄마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교적이지도 않은데 뉴욕시에 아는 사람들이 이리 많아하는 눈치였다.
Saturday, May 18, 2019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The MET Orchestra
Valery Gergiev, Conductor
Daniil Trifonov, Piano
SCHUMANN Piano Concerto
SCHUBERT Symphony No. 9, "Great"
카네기 홀 직원 몇 명도 알고 인사를 나누고. 음악을 사랑하는 수잔 할머니와 남자 친구도 만나고. 수잔 할머니 아드님은 피바디 음악원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한 음악가, 남자 친구는 맨해튼 음대를 졸업한 플루리스트. 수잔 할머니 아들이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면 여분의 티켓을 나 준다고 내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셔 어제 알려주었다.
음악 사랑하는 중국 시니어 벤자민 부부도 만났어. 바그너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벤자민은 오랜만에 만난 날 보고 최근 오페라 봤냐고 물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매주 1편의 오페라를 보려고 했는데 삶이 뜻대로 돼야지. 복잡한 일도 많아서 시간은 흐르고 오페라 보기를 중단했어. 바그너 오페라는 저녁 6시경 시작 밤 11시 반에 막이 내려 무려 5시간 반 동안 스탠딩 티켓을 구입해 서서 오페라를 감상했다는 벤자민은 어제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평소 무릎이 안 좋아 힘들다고 하셨는데 역시 사랑하는 일을 하면 특별한 에너지가 솟구치나 봐. 스탠딩 티켓은 저렴한데 바그너 오페라 스탠딩 티켓은 50불이라고. 그럼에도 바그너 오페라 전부를 봤다고 하니 얼마나 오페라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
오페라 지휘자와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한 나타샤 할머니 부부도 만났어. 또 이번 봄 학기 콜럼비아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애틀에서 일하는 타이완 출신 청년도 만나고. 시애틀은 주 세금이 없어서 뉴욕보다 수입이 더 많다고 하더라. 뉴욕은 뉴욕시와 뉴욕주 세금을 전부 내야 하니 세금이 많아 수입이 생각보다 더 적어.
트래킹 사랑하는 일본 할머니도 만났어. 6월 말에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트래킹 떠난다고. 평소 도자기 구우러 시니어 센터에 다니신다. 할머니 아드님은 MIT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 외모는 할머니지만 몸은 젊은이보다 더 건강해 보여 놀랍다.
The MET Orchestra
Valery Gergiev, Conductor
Daniil Trifonov, Piano
사랑하는 젊은 피아니스트 트리포노프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연주가 좋았어. 보스턴에서 온 딸도 좋다고 하니 더 좋았어. 오랜만에 가족끼리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봤어. 보스턴에 사는 딸은 늘 바빠서 함께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볼 시간이 없다. 메트 오케스트라 슈베르트 교향곡 9번 연주도 좋았어. 첼로 음색도 좋고 목관악기 음색도 좋더라.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자는 컨디션이 훨씬 더 좋고 어제 지휘도 아주 좋았다. 그는 갈수록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나. 지휘자의 손가락은 파도치는 듯 보였다. 그의 건강이 더 좋아 보여 비밀이 뭔지 궁금해졌다.
어제 카네기 홀 근처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보았지. 조용한 갤러리에 아무도 없으니 좋더라. 나 혼자 조용히 그림 감상했다.
지난 목요일 밤늦은 시각 뉴욕에 도착한 딸이 며칠 지내다 보스턴으로 돌아가니 집안이 절간처럼 조용하다. 한 명 더 있고 없고 차이가 참 크다. 딸과 함께 메트 뮤지엄에 가서 특별전도 보고 카네기 홀에서 공연도 봐서 좋구나.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멋진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고 싶구나.
잠시 후 커피 한 잔 마시고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가야겠다.
내일은 뉴욕 온도가 30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이제 여름이 시작이 되었나 보다.
밀린 일기를 쓰다 보니 장문의 글이 되어버렸어.
5. 19 일요일 저녁 7시 반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