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JFK 공항을 떠나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딸

by 김지수

6월 6일 목요일 아침 10시 기온은 25도 습도는 약 70%. 무더운 여름 날씨다. 조금 전 딸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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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727.jpg?type=w966 뉴욕 JFK 공항




뉴욕에서 며칠 머물던 딸은 JFK 공항에서 델타 항공기를 타고 멀리 서부로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 캠브리지에 직장을 구했지만 이민국에서 비자 승인을 거절하니 서울에서 1년 동안 원룸에서 지내다 1년 만에 취업 비자 허가를 받고 미국에 돌아와 보스턴 캠브리지 하버드 대학 연구소에서 3년 동안 일했다. 이제 서부 팔로 알토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된다.


딸도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면 이 많은 고통을 받지 않고 지냈을 텐데 무에서 새로이 시작하니 하나하나의 문을 여는 것은 고통의 대가고 눈물로 자신의 생을 개척해 가는 길이다. 최소 영주권만 있다면 지옥의 문을 통과하지 않았겠지. 이민 1세대와 1.5세대에게 신분 문제와 언어 장벽은 하늘처럼 높고 10대 뉴욕에 와서 공부하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경쟁하는 일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지난 5월 딸은 서부로 이사를 하기 위해 수많은 일을 혼자 처리하면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를 가는 것은 한국에서 뉴욕에 오는 것만큼 쉽지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이다. 가장 힘든 것은 보스턴 렌트 서브렛 구하기와 팔로 알토 집 구하기. 두 곳 모두 렌트비 너무 비싸고 집 구하기 너무너무 어렵고 힘든 곳. 다행히 보스턴 MIT 대학 근처 딸이 살던 집은 MIT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서브렛으로 들어왔고 천재 분위기 진하게 느껴지는 학생이었다. 3년 동안 보스턴에서 살면서 구입한 물건 등도 모두 정리하고 서부로 떠나야 하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전에 만난 뉴욕 한인 택시 기사분도 기사 부인이 플로리다주에서 살고 싶다고 하니 플로리다주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 뉴욕에 있는 짐 전부를 정리하고 플로리다주에 가서 새로 구입하고 몇 년 지냈는데 플로리다주 보다 뉴욕이 더 좋은 거 같아서 다시 뉴욕으로 이사를 왔다고. 말할 것도 없이 플로리다 주 짐은 전부 버리고 뉴욕에 와서 새로 구입했다고.


딸도 마찬가지다. 보스턴에 있는 짐 전부 정리하고 팔로 알토에 가면 새로 구입해야 하는 입장. 미국은 정말 넓은 지역이고 포장 이사는 너무너무 비싸 보통 사람들은 직접 짐을 싸고 이사를 하는 집이 많아. 미국은 부자 나라이니 모두 잘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현실은 다르다. 서비스가 돈이니 서민들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직접 한다.


딸이 서부로 떠난 아침 새벽 5시 기상. 샤워를 하고 간단히 빵과 요플레를 먹고 아침 일찍 우버 택시를 타고 자메이카 역에 도착했다.


우버 택시 기사는 한국에서 20년 전에 뉴욕에 오신 분이었다. 우리에게 먼저 한국어로 인사를 하니 그분이 한인이란 걸 눈치챘다. IMF 시절 한국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멀리 뉴욕까지 떠나오게 되었다고. 당시 환율이 아주 높아서 미국에 가면 큰돈을 번다고 하는 말에 깜박 속았다고. 매달 3천 불 정도 벌면 한국 돈으로 약 500만 원. 당시 사정으로 엄청 많은 급여라서 짐 싸들고 뉴욕에 왔지만 뉴욕 생활은 렌트비가 너무 비싸 버는 돈이 거의 렌트비로 나가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형편이라고. 기사분 말씀에 의하면 70년대 80년대 이민을 온 분은 당시 미국 경제 상황이 좋아 이민자들 살기 좋았지만 그 후로 이민 온 사람들은 전과 달리 모두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다는 말씀을 하셨다. 꽤 친절한 한인 기사분은 아들에게 생수 한 병을 주니 고마웠다.


한인 택시 기사가 달린 도로를 보며 오래전 소형차를 운전할 때 가끔 자메이카 역에 딸을 마중하러 갔던 기억이 났다. 딸이 런던에서 공부할 때 자메이카 역에 마중하러 갔다.


자메이카 역에 도착 1인 5불을 주고 에어 트레인을 타고 델타 항공 탑승 수속을 하는 터미널 4에 도착했다. 큰 트렁크 두 개에 짐을 쌌는데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고 만약 트렁크 한 개 당 50파운드 약간 초과하면 100불 추가 요금을 낸다고 하니 조심스러웠는데 두 개 트렁크 가운데 한 개는 초과 한 개는 약간 미달. 그래서 가방 하나에서 짐을 꺼내 다른 곳으로 옮겼다. 꼭 필요한 짐만 트렁크에 담는 것도 쉽지 않은 듯.


공항에서 탑승 수속하는 동안 한국에서 동생이 친정 엄마가 백내장으로 수술을 받게 된다고 연락이 왔다. 뉴욕 생활이 한국과 너무 다르니 친동생들에게도 힘든 이민 생활을 자세히 말하지 않고 한국에서 우리 집 가정 상황을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 지낸 시절과 극과 극으로 다른 특별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우리 가족.


외국에서 지내면 한국에 홀로 계신 친정 엄마가 어렵고 힘들 때 자주 찾아뵙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인터넷에 올려진 서부에 사는 중년 한인 여자의 블로그 내용을 읽으며 공감이 되었다. 그분이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바쁘고 힘들 때 그분 친정 엄마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그런데 한국에 계신 엄마를 뵈러 갈 때는 비행기 티켓이 언제 가장 싸는지 계산기 열심히 두드려 본다고.


딸은 탑승 수속을 하러 떠나고 아들과 난 다시 에어 트레인을 타고 자메이카 역에 도착. 밖으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미국 서부 팔로 알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할 예정이고 서부로 돌아기 전 뉴욕에 와서 며칠 쉬었다. 지난 5월 보스턴 케이프 코드 여행도 딸이 보스턴을 떠나게 되니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미국 동부 휴양지의 탑에 속하나 가깝지 않고 비용도 엄청 많이 들어서 자꾸 미루고 미루다 방문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내게는 여유로움이 주어지나 딸은 서부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몰라.


오래오래 전 런던에서 공부했던 딸은 뉴욕으로 돌아왔고, 대학 졸업 후 보스턴에서 일했고, 이제 서부 팔로 알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왔듯이 몇 년 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지 아직은 모른다. 과거는 추억으로 남고, 현재는 진행형, 미래는 알 수 없다.


무엇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까.

딸이 다시 보스턴 캠브리지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감미로운 장미향기처럼 인생도 감미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6. 6 목요일 아침 1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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