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고 맨해튼 북 카페에 가고
하늘은 흐리고 바람 부는 화요일 아침 일찍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서 34살 된 골동품 세탁기에 세탁물을 놓고 돌아왔다. 무사히 세탁이 끝나길 기도해야지. 거실에 돌아와 작은 복숭아 몇 개 깎아서 접시에 담아 아들에게 주었다. 따뜻한 커피도 끓이고 새소리 들으며 어제 일을 더듬어 본다.
어제 오후 1시 50분경 맨해튼 미드타운 51가 7 애비뉴에 위치한 빌딩 옥상에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했으며 화재가 발생했다고 시민들은 9.11 악몽이 생각나 공포에 시달렸다고. 플러싱 메인스트리트와 노던 블라바드에서 버스와 승용차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고.
사고는 언제나 무서워. 오래전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만난 중년 한인도 떠오르게 하는 자동차 사고. 한인 택시 기사는 다른 차와 추돌했는데 상대방의 잘못으로 교통사고가 나서 엄청난 손해 배상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너무 가난해 돈이 없다고 하니 양로원에서 지내며 교통사고가 처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한인 택시 기사를 만난 지 오래되어간다.
저녁 8시 무렵 맨해튼 헬기 추락 사고 소식을 들었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려고 만난 아들이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일하는 아들 친구가 연락을 줘서 알게 되었다고 엄마에게 헬기 추락 소식을 알려주었다. 어제 난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시각 7호선 지하철 안에 탑승하고 있었다. 오후 2시 반 경 미드타운 5번가 북카페에 도착해 커피와 초콜릿 쿠키 주문해 테이블로 돌아와 책을 펴고 있었다. 책의 저자는 은발 머리 백인 남자였는데 파란색 눈동자가 푸른 바다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예쁘고 파란색 상의 셔츠가 무척 어울렸다.
책을 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언어와 문화가 낯선 이방인의 나라에 와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장님처럼 살게 된다. 두 눈이 있어도 세상이 보이지 않으니 특별한 장님인가. 끝없이 배우고 읽어야먄 조금씩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내가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날 위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매일 책 읽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으나 매일 읽으려고 노력한다. 어제도 책을 읽으며 뉴욕 문화에 조금 알게 되었다.
요즘 북 카페에서 초콜릿 쿠키를 세일 중. 한 개를 구입하면 한 개 더 주는 행사라 평소에 비하면 금액이 저렴하다. 초콜릿 쿠키는 며칠 전 나랑 함께 테이블을 사용했던 중년 남자를 연상하게 했다. 초콜릿 쿠키를 먹고 약을 꺼내 먹으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남자는 무슨 병에 걸린 걸까. 갈수록 건강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돈을 잃으면 조금 읽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는 것이다."는 말을 젊을 적 깨닫지 못했어.
북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객 커플과 잠깐 이야기를 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꽤 멋쟁이 커플은 아르젠티나와 뉴욕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다고 하니 돈이 많은가. 어느 나라 언어라고 물으니 스페인어라고 했지만 그들의 억양이 약간 달랐는지 내게는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려니 저녁 시간이 되자 서점을 나와 미드타운 피자집에 들러 피자 한 조각 먹고 타임 스퀘어 역에 갔는데 무지갯빛 조명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6월 말 게이 프라이드 축제가 열리고 맨해튼 5번가 숍도 무지갯빛으로 장식된 곳이 많다. 또 타임 스퀘어에 예쁜 요트가 보였다. 푸른 바다가 아닌 뉴욕 한 복판 타임 스퀘어에서 요트를 볼 거라 생각도 못해 웃었어. 타임 스퀘어 지하철 역에서 더블유 지하철을 타고 57가에 내려 카네기 홀에 가서 아들을 기다렸는데 처음 보는 낯선 직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어머 그래요. 오래전 한국에 갔어요.
-언제요?
-1988년
-그때 서울 올림픽 열렸던 해요. 한국 어떠했어요?
-무척 추웠어요.
-얼마나 머물렀어요?
-4개월 정도 머물렀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눌 무렵 아들이 도착하니 우리의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카네기 홀 직원이 군 복무 시절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 한국에 방문했다고 하니 나의 슬픈 과거도 떠올랐어.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여름 난 대학 시절 만난 남자와 약혼을 했다. 7년 동안 만난 남자와 약혼식을 치렀고 그다음 해 결혼식을 했는데 인연 깊은 남자와 작별하고 멀리 뉴욕까지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그와의 만남이 막을 내릴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지. 길고 긴 세월을 보냈지만 결혼 생활은 안개 가득했고 안개가 걷히자 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세월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또,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 양로원도 생각났어. 오래전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발런티어 할 때도 한국에 방문한 노인들이 많아서 놀랐다. 한국전에 참가했던 분도 계시고. 양로원에서 그런 분을 만날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아직 그분들은 생존하실까. 아름다운 바닷가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 (Oyster Bay)에 있던 치매와 알쯔 하이머 전문 양로원에서 뵌 노인들 안부도 궁금해.
"그대는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노인들을 어찌 잊으리. 아들과 함께 매주 일요일 양로원에 갔던 추억도 떠올라.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토요일 기차를 타고 새벽에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에 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고 일요일은 엄마랑 함께 발런티어를 하러 양로원에 가서 종일 시간을 보내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곤 했다. 너무너무 바쁜 고교 시절이었지.
사랑이 영원하면 얼마나 좋아. 대학 시절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애나 로스가 함께 부른 노래도 유행해 많이 들었어.
라이오넬 리치 노래 잘 부르더라.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저렴한 티켓 사서 라이오넬 리치 공연 봤는데 너무너무 좋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들은 엄마 대학 시절 알던 가수라 하니 놀랐지. 아들도 그가 노래를 꽤 잘 부른다고 말했어. 재능도 있고 열정도 많은 가수 리치.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봤다. 티켓 좌석이 정말 좋아 기분이 룰루랄라. 평소 우리가 자주 앉은 좌석은 발코니. 발코니 좌석이 하늘에 닿을 듯하게 보여서 놀랐어. 어제 앉은 좌석은 공간도 넓어서 편하고 좋은데 발코니석은 아주 좁아 아들이 불편하다고 한다. 할아버지 합창단이 얼마나 열심히 노래를 부르던지 아들은 아주 감명적이라고 말하고. 지휘자 보면서 열심히 노래 부르는 할아버지 모습이 보기 좋았어.
위 부분까지 글쓰기 하다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물 가져오고 그 후 호수에 산책을 하러 갔다. 오리 가족은 호수 중앙 작은 섬 거북이들이 일광욕하는데 옆에서 함께 쉬고 있더라. 초록 숲을 보며 분수가 흐른 호수를 보며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파란 하늘을 보며 호수를 돌면서 아들과 이야기 나누고. 어제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오늘은 청명한 여름날. 바람도 선선하게 부니 정말 좋았어. 한 마리 거북이는 호수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놀랐어. 무슨 일이 있길래 땅으로 나온 거야.
호수에서 산책을 하고 집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하얀 냉장고가 텅텅 비어가니 얼른 달려가서 장을 보았다. 후지 사과 약간, 콩 약간, 상치 두 포기, 양파 1묶음, 토마토 약간, 바게트 1개, 닭고기와 돼지갈비 약간을 구입해 아들과 함께 들고 걸어서 집에 돌아왔어. 혼자라면 정말 무거울 텐데 둘이라 무겁지 않아서 좋았어. 바람 부는 날 장미향 맡으며 파란 하늘 보며 걷는 것도 좋았어.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를 하고 먹고 설거지하니 오후 1시가 되어간다. 화요일 아침도 분주했구나. 세탁하고, 호수에서 산책하고, 장 보고, 글쓰기 하고, 식사 준비하고. 쉬지 않고 일했어.
오늘은 뮤지엄 마일 축제가 열리는 날. 오후 6-9시 사이. 얼마나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올까. 어제 비가 내렸는데 센트럴파크에서 메트(오페라) 공연 열렸을까. 난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느라 가지 못했다.
딸이 서부로 가니 상당히 복잡하고 분주했던 나날이 지나고 이제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서부는 동부와 달리 태양이 터질 거 같다고. 어제 딸이 근무하던 빌딩 전기가 나가버렸다고. 태양이 얼마나 뜨거울까. 동부의 시원함을 서부에 주면 좋겠어.
누가 내게 "그대는 나의 태양"이라 부를까.
6. 11 화요일 오후 1시경
카네기 홀에서 뉴잉글랜드 심포니 앙상블 공연 보는 청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