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일요일도 종일 여기저기서 축제가 열렸는데 축제에 갈 힘이 없었다. 아침 노란 유자차 두 잔을 마시고 글 쓰기를 하고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다녀왔다. 초록 나무 그늘과 바람과 장미향기가 좋은 계절. 호수에 도착하니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하는 중국인 두 명, 애완견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조깅하는 이웃들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다. 축제에 갈 힘은 없지만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북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함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 시절 들은 아바 그룹의 노래도 흐르고 래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부른 노래도 흐르더라.
북카페에서 런던과 영국에 대한 여행서 수북이 쌓아두고 읽은 뉴요커 보면서 20여 년 전 방문했던 런던도 떠올랐어. 겨울에 방문했는데 초록 잔디가 얼마나 예쁘던지 놀랐지. 아름다운 템즈 강도 보고, 런던 대영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미라 보고 놀라고, 버킹검 궁전 근처에 가니 한국어 구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놀라고, 트라팔가 광장에서 아주 많은 비둘기 떼 보고 놀라고, 비싼 런던 물가에 정말이지 놀라 물건을 사지 않고 그냥 나와버렸다. 어린 두 자녀는 처음으로 세계 여행 가서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잠들지 못했다. 저렴한 패키지여행이라 형편없는 런던 식사에 놀라고. 놀라고, 놀라고 또 놀랐다. 한인 가이드가 한국에서 누구 부인이 런던 가장 럭셔리 백화점에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쇼핑을 했다고 하니 여행객 팀 모두 웃었다. 그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딸이 런던에서 공부할 적 런던에 오라고 말했는데 그 무렵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고 여행 경비도 부담이 되니 포기했는데 돌아보면 아쉽기도 하다. 그때 런던에 가서 파리도 다녀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다시 방문하면 런던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 런던을 방문하면 거리축제도 보고, 셰익스피어 연극도 보고, 오페라도 감상하고, 런던 하이드 파크에도 가고, 런던 컨템퍼러리 갤러리도 방문하고, 헌책방도 가고, 낯선 골목길 걸으며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월은 정말 빨리 흘러간다. 20년이 1초처럼 흘러간 듯. 20년 사이 내 삶은 큰 변화가 찾아왔지. 20년 전 내가 뉴욕에 살 거라 상상도 못 했어. 어린 두 자녀 특별 바이올린 레슨 시키며 정말 바빴던 시절이었지. 나도 사랑하는 첼로 레슨 받으며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지. 대학 시절 사랑하던 바흐 무반주 첼로 곡을 레슨 받으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 세월은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구나. 20년 후 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련가 모르겠다.
맨해튼 5번가 북카페에서 빈 테이블을 발견하지 못해 전망 좋은 창가에 자리 잡았는데 옆에 앉은 커플이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니 도저히 집중하기 어려워 이사를 했어. 수험서 같은 책을 읽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 낯선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더니 날 보고 미소를 짓더라. 잠시 후 흑인 아내와 딸이 함께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 놀랐다. 꽤 연세든 백인 할아버지인데 흑인과 결혼했으니 상당히 진보적인 커플인가 싶다. 딸이 할아버지에게 "파파"라고 부르니 그제야 가족인 줄 알았어. 일요일에 가면 만나는 할머니도 만났다. 언제나처럼 하얀색 옷을 입고 바구니에 책 가득 담고 북 카페에 오셨더라.
아주 낮은 에너지로 맨해튼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소란스러워져 그냥 서점을 떠나 일찍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휴식을 하고 있다.
6월 세 번째 일요일 아버지의 날도 거버너스 아일랜드에서 재즈 파티가 열리는데 누가누가 파티에 갔을까. 어제 파티에 간 사람들도 오늘 다시 갔을까. 맨해튼과 너무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운 섬 초록 들판이 정말 사랑스럽고, 전망이 아름답고, 특별 이벤트가 열려서 좋고, 전시회와 공연도 좋아. 갈수록 방문자가 많아서 소란스러워지고 상업적인 분위기로 변하니 조금 슬프지. 맨해튼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 도착하는 약 10분 동안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지. 10분 사이 아름다운 브루클린 다리와 브루클린 하이츠 전망 보고 뱃고동 소리 울리며 달리는 페리 안에서 행복한 사람들 표정 보면 나도 행복해질 거 같아서 기분 좋아.
이웃집 뜰에 핀 장미꽃이 정말 예쁜 계절. 6월도 어느덧 중반에 이르고 난 감기몸살인지 기운도 없는데 이번 주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열리는데 컨디션 조절해야 하는데 왜 아픈 거야. 이번 주 뉴욕 일기 예보에 의하면 흐리고, 천둥 치고, 비 오는 날이 많아 마음 무겁게 하네. 수잔 할머니 아드님은 카네기 홀에서 공연했을 텐데 가지 못했어.
일요일 밤 습도가 죽여줘. 88%. 믿을 수 없구나. 오래전 뉴욕 날씨는 휴양지처럼 좋았는데 갈수록 이상해져 가네.
기운이 너무 없어 고디바 초콜릿 하나 꺼내 먹으며 글쓰기를 했다. 내일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야지.
조용한 일요일을 보냈구나.
6. 16 일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