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는 쏟아지고

액땜이라고 생각해야지.

by 김지수

여름 비는 쏟아지고 하늘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종일 비가 오려나. 아침 기온 22도 습도 95%. 하늘이 내 슬픈 마음을 알아버렸을까. 아...

어제 아침 글쓰기를 하고 세탁을 하러 아파트 지하에 갔다. 그런데 세탁물이 담긴 가방이 지하 벽을 슬쩍 스쳤는데 찢어져버렸다. 혼잣말로 역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야,라고 했다. 오래오래 전 완공된 아파트 지하는 영락없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하게 한다. 가끔 이웃 주민이 담배를 피워 냄새가 나기도 하고 쓰레기 버리러 가는 것도 무섭기도 하니 대개 낮에 가는 편이다. 세탁을 하면 기분이 좋은데 어제 세탁 가방이 찢어져 마음이 아팠어. 정말이지 슬쩍 지나쳤는데 왜 가방이 찢어져.

공동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는데 몇 대는 고장이니 사용불가라는 쪽지가 붙여져 있었다. 다행스럽게 내가 사용할 빈 세탁기가 보여 세탁물을 넣고 돌아와 30분 후 세탁물을 건조기에 옮기려고 다시 지하에 갔다. 그 사이 식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브런치를 먹고 세탁물을 가져오고 오후 맨해튼에 가기 전 아들에게 수박 먹을 거야 물으니 잠시 후 먹는다고 해서 유리그릇에 수박을 담아 냉장고에 넣으려고 문을 여는 순간 내 손에 있던 유리그릇이 거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정말 순간이었다. 어제 아침 몸이 피곤했고 글쓰기 하고 세탁하고 식사 준비하니 쓰러질 거 같았다. 조금만 몸이 덜 피곤했더라면 손에서 유리그릇이 미끄러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유리그릇도 자주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올해 처음으로 구입한 수박인데. 수박 한 통의 1/4 정도를 유리그릇에 담아서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과 수박을 치워야 하는데 조심스럽기만 했다. 두툼한 종이로 바닥을 쓸어 담고 작은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면서 혹시 작은 유리 조각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조심 조심했지만 나의 검지 손가락은 어느새 피가 흐르고 말았다.

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아들은 대일 밴드 가져오고. 검지 손가락에 대일 밴드 하나 붙었는데 왜 그리 불편한지. 노트북을 사용하는데 스크롤 사용도 불편하기도 하고.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나는 유리그릇과 수박. 이미 지난 일인데 잊어야지 어떡해. 더 안 좋은 일 찾아오는 거 막아버린 액땜이라 생각해야지. 분명 그럴 거야.

산산조각이 나 버린 유리그릇 보면서 오래전 거실에서 깨진 내 사랑하는 첼로가 떠올랐어. 그때도 무더운 여름날이었어. 대학 시절 사랑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레슨 받으며 행복하던 시절. 매미가 울던 여름날 사랑하는 나의 첼로는 거실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져 있었다. 그게 내 운명의 전주곡이었나. 그 후로 안개가 걷히고 난 머나먼 뉴욕으로 떠나올 준비를 했구나. 누가 운명을 알겠어.

김광석 노래도 자주 들으며 뉴욕에 갈 것을 꿈꾸었지. 아무도 없는 낯선 땅 뉴욕에 오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무도 믿지 않았지. 40대 중반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간다고 하니 모두 미쳤다고 하더라. 불가능한 꿈이라고. 돌아보면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한 의미를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눈물바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구나. 눈물을 뿌리며 꿈과 희망을 키우며 어딘가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를 찾고 있지.

삶이 그런 거 아닐까. 누가 알겠어. 어느 날 아무도 모르는 일이 찾아와 삶을 뿌리째 흔들어 버리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지.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지하철을 타고 북 카페에 갔다. 맨해튼 5번가 지하철역에 내려 북 카페에 가는 동안 "모든 거 다 잃었어요. 하지만 희망과 미소를 잃지 않았어요."라고 적은 종이가 보이는 홈리스는 안 보였다. 어제 태양이 지글지글 타오르니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간 모양이야. 5번가 뉴욕 공립 도서관에는 무지개깃발 펄럭이고 5번가는 세일 중이고 걷기도 불편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1억 내지 1억 2천이면 사,라고 말하는 한국인 몇 명도 지나가고 난 어느새 북 카페에 도착했다. 핫 커피 한잔 주문해 마음을 달래면서 책을 펴고 읽고. 옆 자리에 앉은 두 명의 노인들은 멋진 정장 차림인데 스콘과 커피를 마시며 '뉴요커 잡지'에 초록색 펜으로 줄을 그으며 읽으니 놀랐어. 수험생도 아닌데 잡지에 줄을 그으며 읽는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북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동안 링컨 센터에서 Mostly Mozart Festival 티켓 구매하라고 연락이 오고 오늘 밤부터 링컨 센터에서 Midsummer Night Swing Festival이 열린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조명이 비추는 공원에서 누군가는 댄스를 추면서 여름날의 추억을 만들겠구나. 난 매년 축제 구경하러 가서 멀리서 춤추는 장면을 바라보고 돌아온다.

하지가 지나고 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느껴졌던 어제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아름다운 석양 보러 갈까 하다 에너지 흐름이 낮아 포기하고 센트럴파크 서머 스테이지도 포기하고 타임 스퀘어 역에 가는데 거리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켜고 오페라를 불러 좋았어. 역시 음악은 좋아.

6월 프라이드 축제가 열리고 타임 스퀘어 하드록카페에 무지개 깃발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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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561.jpg?type=w966 예쁜 앵무새들, 토끼, 애완견 데리고 구걸하는 남자. 맨해튼 여기저기서 자주 만난다. 어제는 타임 스퀘어에서 만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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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스퀘어 지하철역과 타임 스퀘어 거리 풍경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 복잡한 타임스퀘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도착. 하필 에스컬레이터도 고장 사람들은 너무 많아 지하철역 빠져나오는 것도 전쟁터 같은 느낌이 들고 시내버스 탑승하니 빈자리커녕 서서 있기도 고통스러울 정도. 어렵게 집에 도착 식사를 하고 밤늦게 아들과 호수에 산책하러 다녀왔다.

어느새 6월의 마지막 주 화요일.

슬픈 일은 잊고 힘찬 하루를 시작하자.

힘내자.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자.

어딘가에 숨어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의 보석을 찾아야지.

해바라기 노래도 생각나는구나.

아름다운 청춘 시절 사랑하던 그 노래.

날 얼마나 행복하게 했던 노래야.

그 시절 아름다운 노래 들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었지.

아름다운 꿈, 꿈, 꿈.

6. 25 여름 비 쏟아지고 천둥 치는 화요일 아침

아파트 뜰에 핀 주황색 나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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