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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와 프랑스 여행객들의 5백만 불짜리 미소

북카페에서 만난 프랑스 여행객, 북 카페, 축제, 갤러리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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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플러싱 주택가에서 본 산딸기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가는 길 어릴 적 한국에서 봤던 산딸기 열매 보니 너무 반가웠다. 무더운 여름날 초록숲에서 매미 울음소리 들으며 호숫가를 몇 바퀴 돌며 아카시아 나뭇잎 보며 어릴 적 놀던 추억이 떠올랐다. 우리가 어릴 적 장난감도 귀하던 시절. 자연이 우리의 놀잇감이었지. 친구랑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면서 아카시아 나뭇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고 먼저 떼어낸 사람이 이기는 게임.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겠다. 호수 근처 주택가에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는 갈수록 커져가고 이웃집 정원 과일이 무럭무럭 커져가는데 왜 내 마음이 기쁜지 몰라. 초록 나무 그늘 아래 걸으며 바람을 맞으면 행복한 산책. 땡볕이 내리쬐는 곳은 마라톤 선수처럼 달리고 나무 그늘 아래서 천천히 걸으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호수에서 흑조와 거북이 떼 일광욕하는 것도 보고 웃었지. 어제처럼 노 젓는 연습 하는 아저씨와 칼 들고 운동하는 중국인 두 명은 보지 못했어. 무더운 여름날이라 참새 한 마리가 고인 물에서 샤워하는 것도 보고 이웃집 정원에 핀 장미꽃, 수국 꽃, 백합꽃 보며 행복한 아침.

호수에서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인종 차별하는 스카프 쓴 백인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오래전 플러싱 지하철역 부근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자주 만난 할머니인데 왜 그리 차가운지 몰라. 어느 날 할머니 뒤에서 서서 시내버스 기다리는데 날 보고 저 멀리 가라고 외치는 할머니. 할머니 짐이 든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기다리라고 하니 웃었어. 어느 날 그 할머니가 시내버스에 탄 중국인 여자 두 명이 수다 떠는 것을 보며 '너의 나라로 가라'라고 악을 썼다.

뉴욕은 다인종이 거주하는 도시라 인종 차별이 아주 극심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 플러싱은 중국인과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지만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도 거주한다. 하얀 피부색으로 보면 아일랜드 이민자로 보이나 북극보다 더 쌀쌀한 할머니랑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 어느 나라 출신인지 잘 모른다. 할머니 의상 감각은 멋져. 대개 아일랜드 출신이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하는 말을 오래전 대학원에서 공부할 무렵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 아침부터 그 할머니 눈빛과 마주치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냥 잊어야지.

어제 아침 글쓰기를 하고 산책을 하고 맨해튼에 갔다. 처음으로 5번가 브라이언트 파크 옆 여자 홈리스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주 여린 몸매 아가씨가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차츰 체중이 불어나 내 마음도 아팠다. 하얀색 보행자 신호등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 반스 앤 노블 북 카페 근처 지나가는데 하늘에서 비가 뚝뚝 떨어졌다. 어제 집 근처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우산을 담지 않아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 아파트에 도착할 무렵 아들이 우산을 들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우산을 펴고 빗속을 걷다 북 카페에 도착했다. 운 좋게 쉽게 빈 테이블을 구해 가방을 두고 커피를 주문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 맞은편에 있는 의자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다 몇 마디 주고받았다. 남부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 5명. 뉴욕에서 1주일 머물 예정이라 하니 '거버너스 아일랜드, 첼시 갤러리, 링컨 센터 축제,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메디슨 애비뉴와 프랑스혁명 기념일 축제'에 가 보라고 추천했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니 더 이상 대화를 나눈 것은 불가능했고 그들이 북카페를 떠날 때 내게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짓더라. 5명이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었으니 5백만 불짜리 미소를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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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알면 알 수록 여행의 즐거움도 커지는 도시. 잘 모르면 짜증만 하늘로 높아만 가는 도시. 돈은 억수로 지출하면서도 낯선 뉴욕에 와서 죽어라 고생하고 떠나는 여행객들도 많다고. 어제 북 카페에서 흐르는 노래도 좋더라. 무더운 여름이라 여행서 읽는 사람들도 많고 스페인과 비엔나 여행서 보고 나도 여행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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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7시 반 링컨 센터에서 무료 공연이 열리는 날. 북 카페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카네기 홀 부근에 내려 아트 스튜던츠 리그 2층 갤러리에 가서 전시회를 보았다. 마크 로스코, 잭슨 폴락, 조지아 오키프,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유명한 화가들이 공부한 명성 높은 미술 학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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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구경하고 콜럼버스 서클 지나 링컨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도착하니 홀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혹시나 입장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공연을 보았다. 난 잘 모르는 가수인데 어제도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더라. 나이 든 사람들도 많고 젊은이들도 많고. 와인과 맥주 마시며 공연을 보는 뉴요커들. 홀 입구에서 직원에게 가방 검사를 맡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내 바로 앞 할머니는 검사를 마치자마자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흔들 거려. 음악이 흐르면 바로 춤을 추는 노인들도 많아서 놀랍다. 어제 무대에 선 흑인 여가수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은빛으로 빛나는 예쁜 구두를 신어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구두에도 자꾸 눈길이 갔다.

어제 비가 내려 링컨 센터 Midsummer Night Swing Festival은 취소가 되어버렸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옆 댐로쉬 공원(Damrosch Park)에서 열리는 축제인데 비가 내리니 누가 댄스를 추겠어. 댄스 추려고 티켓 구입한 사람들 마음은 슬퍼했겠지. 여름날 배롱나무 꽃 피는 공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는 행복 얼마나 좋아. 축제도 하늘의 뜻이 중요하고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 마음도 장마가 오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듯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신의 뜻을 피할 수 없는 슬픈 운명과 춤추는 사람도 있다. 힘들고 슬픈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화를 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하면서. 개인마다 삶이 천양지차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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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321.jpg?type=w966 링컨 센터 분수대

여름 비 내려 링컨 센터 분수대는 고독하더라. 평소 분수대 주위에 앉아 휴식하거나 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은 뉴욕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인데 비 오니 아무도 없어 혼자서 실컷 분수대 구경했어. 링컨 센터 분수대는 언제 봐도 멋져.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분수 보며 희망과 꿈과 사랑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여름이라서 분수대 보면 가슴도 서늘하니 좋고. 그래서 언제나 사랑스러워.

아들은 내일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낚시하러 가니 가슴이 설레겠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낚시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물고기 많이 잡는 행운도 따르면 더 좋겠지. 그럼 나도 맛있는 매운탕 끓여 먹겠다. 난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을까. 차가운 얼음물 마시고 정신 차리자.

7. 12 금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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