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에서 베를린 여행객 만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마터면 맨해튼에 갇힐 뻔했어. 토요일 저녁 무렵 센트럴파크에서 탱고 이벤트 보고 베데스다 분수대와 테라스와 아름다운 호수 풍경 보고 십 메도우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 보고 링컨 센터 축제 보려고 공원을 빠져나오는데 횡단보도 신호등이 작동을 하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다른 횡단보도 신호등도 작동하지 않음을 눈치채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어렵게 통과해 ABC 방송국 앞을 지나 링컨 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링컨 스퀘어 역시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 그제서 사태가 심각함을 눈치를 챘다. 9.11 사고도 머릿속을 슬쩍 스쳤다.
토요일이 링컨 센터 스윙 축제 마지막 날. 정전이라 링컨 센터 분수대도 잠들고, 링컨 스윙 축제 보러 갔는데 화려한 조명 없이 아름다운 배롱나무 꽃이 핀 댐로쉬 파크에서 열리고 있었다. 잠깐 축제를 보고 얼른 지하철역으로 갔는데 지하철 역 안은 정전. 타임 스퀘어 역에 가야 하는데 1호선이 운행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1호선은 운행했다. 뉴욕 맨해튼에서 처음으로 맞는 정전 사태. 캄캄한 지하철역에서 1호선을 타고 타임스퀘어 역에 도착. 얼른 플러싱에 가는 7호선에 승차했다. 혹시 7호선이 운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1호선은 냉방이 안되어 불편했지만 불평할 입장도 아니고 비상사태에 작동하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7호선은 아주 시원할 정도는 아니지만 에어컨이 작동했다.
토요일 아들은 친구들과 롱아일랜드로 낚시하러 가니 나도 토요일 밤늦게까지 맨해튼에서 지낼까 하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 메트 뮤지엄에도 안 가고 그냥 집에 돌아왔는데 대소동을 피울 뻔했다. 정전 사태가 발생하니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도 있다고. 맨해튼에 산다면 걸어서 갈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플러싱은 맨해튼과 달라 걱정이 되는데 내가 이용하는 지하철은 다행스럽게 운행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맨해튼에 사는 것과 아닌 것 차이는 아주 크다. 대중교통이 작동을 하지 않아도 맨해튼은 걸어서 집에 갈 수 있지만 롱아일랜드는 불가능하다. 수년 전 아들이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 재학 중일 때 하얀 눈 펑펑 내리던 겨울날 펜스테이션에서 롱아일랜드 힉스 빌에 가는 지하철 타려고 기다리는데 방송에서 자꾸 기차가 연착이 된다고 하니 아들이 엄마에게 늦어진다고 자꾸 연락을 하다 결국 3시간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맨해튼에서 롱아일랜드 제리코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택시비가 저렴하다면 큰 소동이 아닐 텐데 택시비는 기억에 약 70불. 뉴욕 택시비 너무 비싸다. 그때는 차를 팔기 전이지만 평소 운전하고 맨해튼에 간 적도 없고 하얀 눈 펑펑 내리는 날이라 더더욱 운전하고 아들 픽업하러 갈 수도 없는 상황. 할 수 없이 택시를 이용했다. 만약 그때 기차가 운행하지 않을 줄 알았다면 3시간씩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고생을 했다. 토요일 예비학교에 가려면 새벽에 일어나 집에서 6시경 출발하고 종일 학교에서 수업받고 밤늦게 귀가한 스케줄이라 눈 소동 아니라도 피곤한 일이다.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맨해튼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 일찍 아들은 친구들 만나러 가고 나도 일찍 집을 떠나 맨해튼 북카페에 갔다. 무더운 여름날 냉방되는 북 카페처럼 더 좋은 곳 찾기도 어렵고 음악 들으며 책과 커피랑 함께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베를린에서 온 모녀랑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분명 독일어였다. 뉴욕 여행서 몇 권을 읽는 그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베를린에서 왔다고. 엄마는 약간 살찐 체형이고 딸은 아주 마른 체형이라 모녀 사이인 줄 몰랐다. 엄마는 베를린에서 부동산 에이전트 일을 하고 1주일 동안 뉴욕에서 체류, 토요일이 마지막 밤, 일요일 베를린으로 떠난다고 하면서 거버너스 아일랜드에도 다녀왔고 매일 10마일 정도 걸어서 상당히 피곤하지만 뉴욕 여행이 즐겁다고 말했다. 모녀에게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센트럴파크 럼지 플레이 필드에서 서머 스테이지 무료 공연이 열린다고 말해주니 신난 표정으로 바로 북 카페를 떠났다. 토요일 북 카페 에어컨이 너무 강한지 실내가 너무 추워 꽁꽁 얼어버릴 거 같아 서점을 나와 미드타운을 걷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애비뉴(6th Avenue)에서는 거리 축제가 열리는 중. 옥수수 한 개 3불, 컵에 담긴 수박이 4불. 다양한 물품을 파는 거리 축제를 보며 카네기 홀로 향해 걷다 마트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센트럴파크에 갔다. 토요일 저녁 무렵 공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하고 있는지. 혹시나 하고 베데스다 분수대에 연꽃이 피었나 궁금했는데 1년 만에 연꽃을 보아 기뻤다.
토요일 밤 예정보다 더 일찍 집에 돌아와 뉴욕 타임스 읽으니 허리케인 소식, 페이스북 5 빌리언 달러 벌금 소식, 로저 페더러 테니스 선수 준결승전에서 나달을 상대로 이겼다는 소식 등이 올려져 있었다.
뉴욕에 와서 허리케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 수년 전 샌디가 뉴욕을 지옥의 불바다로 만들었을 때 허리케인이 온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경험하지 않아서 허리케인이 오면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철없이 롱아일랜드 유적지 Sagamore Hill National Historic Site에 단풍 구경하러 갔다. 이곳은 미국 26대 대통령 씨어도르 루스벨트 생가로 국립 사적지에 속한다. 허리케인이 지나면 단풍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 같으니 얼른 차를 몰고 찾아가 단풍 사진 몇 장 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에게 연락을 받았다. 엄마 주유소에서 오일 채웠어요?라고 물었다.
지옥의 불바다로 만든 샌디(2012 허리케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생각만 해도 공포다. 그때 무사히 단풍 사진 찍고 집에 도착했지만 주유소에서 오일을 채우려고 4시간 이상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뿐 만이 아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지붕이 샌디 때문에 날아가 버려 아파트 천정에서 비가 쏟아졌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겪었던 일. 세상에 동화책에서나 본 일을 내가 경험할 거라 누가 생각을 했을까. 집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물바다로 변하니 얼마나 소동을 피웠을까. 아파트 관리실에 비가 쏟아진다고 말하니 천재지변이라 보상도 없고 한 달 동안 아파트 천정 수리하는 동안 고생도 많이 했다. 그때 뉴욕이 정전이 되니 근처 몰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그때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 대소동을 피웠던 샌디 추억도 떠오른다. 뉴욕에 와서 살면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는지 몰라.
미국 루지애나주에 상륙한 허리케인으로 피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페이스북은 벌금 내려면 마음 아프겠구나. 런던 윔블던 준결승전에서 이긴 로저 페더러는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꽤 많은데 놀랍기만 하다. 다음 달 뉴욕에서 유에스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데 로저 페더러 경기 볼 수 있을까. 플러싱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장이 가깝다는 점.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쳘역에서 한 정거장이니 무척 가깝고 좋다. 작년 폭염에 테니스 선수들이 죽을 거 같다고 했는데 올해 날씨는 어떨지. 8월이면 가장 기대되는 스포츠 경기다.
아들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작은 물고기를 잡았지만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결국 매운탕은 먹지 못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낚시하고 저녁 식사하고 볼링을 쳤다고.
뉴욕 대정전 42주면 기념일에 또 정전 사태가 발생하니 우연치곤 이상하네. 암흑의 도시 맨해튼에서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토요일 여기저기 움직였으면 정말 난리 피울 뻔했어.
7. 14 새벽 1시가 되어갈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