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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불바다/ADDA 첼시 갤러리 위크

플러싱에서 만난 한인 할머니 이야기

by 김지수

또 하루가 시작했다. 목요일 아침 커피를 끓여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어제 뉴욕 날씨는 지구를 삼킬 듯한 폭염이었다. 아들은 숨쉬기가 힘들다고 표현했다. 무엇보다 습도가 높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함께 산책을 하러 갔다. 습도가 너무 높아 밖도 쾌적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집안의 열기보다 조금 더 나았다. 공원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운동을 했다. 지상이 폭발할 거 같은 날씨에도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다. 또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애완견도 힘든지 쉼 쉬는 소리가 달랐다. 허스키가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아들이 들려주어 웃었다. 고목나무 아래에 새들과 청설모를 위해 물을 담아 둔 그릇도 보았다. 우리도 집에 돌아와 아파트 정원에 일회용 작은 용기에 물을 담아 두었다. 무더운 날 아파트 슈퍼는 잔디 깎는 작업을 했다. 왜 하필 이리 무더운 날 하는 것인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날마다 식사도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렌치 레스토랑 위크가 7월 8일-21일 사이 열리는데 가고 싶은 마음도 드나 나중 신용카드 빌 갚을 거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 포기했다. 맨해튼 부동산값이 너무 비싸니 레스토랑 운영도 어렵다고 하고 당연 식사비가 비싸 서민들은 자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그래서 레스토랑 위크가 좋은 기회. 뉴욕 레스토랑 위크는 다음 주에 시작한다. 뉴욕 레스토랑 위크에 가려고 미리 예약을 했다. 아들 생일도 다가오고 우리 가족이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온 기념일이기도 해서 몇 주전 예약을 했다. 인기 많은 곳은 빨리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하기 어렵다.



어제 점심 식사를 하고 에어컨을 켜고 고민을 했다. 엄마가 외출하면 아들은 혼자라서 에어컨 켜지 않고 지낼 것 같아 외출할지 말지 생각에 잠기다 어제는 무더운 날이라 아들에게 에어컨을 켜고 지내라고 부탁도 하고 평소처럼 아파트 문을 잠그고 아파트를 나왔다. 땡볕이 내리쬐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제 시각에 시내버스가 오면 얼마나 좋아. 어제처럼 태양이 불타올라 견디기 힘든데 기사는 안 보이고 대신 양산을 든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혼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양산을 든 할머니가 오셔 함께 쓰자고 하셨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으니 웃으며 그렇다고 하셨다. 그러다 우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9년 4월 25일에 미국에 관광 비자로 오셔 처음 뉴저지주에 살다 지금은 뉴욕에 살고 계신다고.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도에 특별 사면 제도가 있어서 쉽게 영주권을 받았는데 할머니는 몇 개월 늦게 도착하니 영주권을 받지 못했다고 하셨다. 할머니에게 미국이 좋아요?라고 물으니 미국이 좋다고 하셨다. 왜 그런가 이유를 물으니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아서 좋다고. 남들 눈 의식하지 않은 미국 문화가 참 좋은가 보다.



뉴욕 상류층이야 고급 브랜드 의상을 입겠지만 서민들은 꿈도 꾸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세금 공제전 받은 수입의 30%를 렌트비로 충당한 사람이 많다고. 그럼 세금 공제 후는 약 50%가 되겠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디 집뿐일까. 주거비 외에 들어가는 비용도 정말 많다. 미국처럼 의료비 비싼 나라가 얼마나 될지. 수년 전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우체국에서 일하는 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했는데 의료보험비가 비싸 가입하지 않아 의료 보험이 없다고. 기억에 그분 가족이 미국에 살고 있어서 수 십 년 전에 뉴욕에 이민 오셨다고. 그때 날 위해 식사비를 내니 언제 갚아야지 하는데 그 후로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 아들 위해 김밥도 사주셔 담아주셨다. 낯선 분에게 신셰를 져서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랑 얘기를 하는데 그분 아드님이 오셨다. 팔에 깁스를 하셔 왜 그런지 물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으셨고 다음에는 목 수술도 받아야 한다고 하니 내 마음도 무거웠다. 그러다 우린 출산 얘기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래전 한국에서 지낼 때 병원에서 출산하지 않고 집에서 출산하셨다고. 이웃분이 가위 들고 오셔 출산했다고 하니 요즘 젊은이들과 얼마나 다른 세상인가. 할머니는 여자가 출산을 하면 더 건강해진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과거 출산을 많이 하니 병이 없어서 여자들이 건강했다고. 뉴욕에서 어느 날 히스패닉계 여자가 12명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니 혹시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었는데 그녀의 답은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세상에 12명을 출산한 엄마도 있나 보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할머니 아드님이 한국에도 그런 분 있어요,라고 하셨다. 매년 자녀를 출산하게 되니 밖에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왜 그런가 물었다. 밖에 외출만 하면 사람들이 배가 얼마나 불렀는지 쳐다보니 외출을 할 수 없다고. 또 노인 아파트 이야기도 들었다. 신청자 수가 너무 많아서 노인 아파트를 신청하면 10년 정도를 기다린다고. 할머니는 일하면 소셜 연금을 받을 수 없고 일하지 않으면 소셜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이상한 법'이라고 표현하셨다. 할머니 지인이 일했는데 나중 폭풍 세금 받아 일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할머니 연세가 꽤 되어 보이고 오랫동안 일하고 정부에 세금도 내니 지금은 소설 연금을 받을 시기가 된 듯 짐작하나 자세한 내용은 묻지 않아 잘 모른다. 처음부터 일을 안 해야 소셜 연금을 받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내버스가 30분 동안 오지 않아서 할머니와 할머니 아드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버스에 탑승하고 플러싱 지하철역 부근에 내려 헤어졌다. 7호선을 타고 맨해튼 5번가 브라이언트 파크 지하철역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걷기가 왜 그리 힘든지 몰라. 매일 운동하려고 노력하는데 계단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 역 출구로 나오니 그림 그리는 여자 홈리스가 담배를 피우며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땡볕 아래 여행객 많은 5번가를 걷다 북 카페에 도착했다. 서점 앞에 플러싱 지하철역 앞에서 본 남자 홈리스가 책 몇 권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니 놀랐다. 플러싱에서 적어도 1년 전부터 홈리스 생활을 한 젊은 남자 홈리스. 지난번 "삶이 날 죽여요."란 문구가 보여 마음이 아팠던 바로 그 홈리스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갔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지하에 내려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와 다시 2층에 올라가 어렵게 빈자리를 구해 앉았다. 음악이 흐르는 북 카페는 냉방이 되니 너무 좋고 커피를 주문하고 책을 펴고 읽기 시작. 무더운 날이라 여행서를 읽으려는데 집중도 안 되고. 옆자리에 백발 할머니 두 분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서점을 나와 5번가 지하철 역으로 향하다 몇 명의 홈리스를 지나쳐 7호선을 타고 허드슨 야드 종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역 아트가 어린 왕자를 생각나게 하고 보스턴에서 딸이 뉴욕에 올 때 마중 나가던 곳이라 딸 생각도 났다. 지금은 서부에서 일하니 자주 만나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 갔던 블루 바틀 카페도 생각나고. 허드슨 야드에 우리의 추억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딸과 함께 허드슨 야드 Vessel 앞 럭셔리 쇼핑 매장에 잠시 쉬러 들어갔는데 어린 딸이 엄마를 잃고 딸에게 부탁해 도와준 기억도 났다. 예쁜 드레스를 입은 어린아이는 어쩌면 한국 아이 같기도 하나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간 허드슨 야드 하이라인을 걸으며 야생화 향기 맡았지만 폭염이라 걷기도 힘들었다. 어제 나의 방문 목적은 첼시 갤러리 전시회를 보는 것. 얼마쯤 하이라인을 걷다 계단을 내려가 첼시 갤러리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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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작품 가운데 마음에 와 닿은 작가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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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600.jpg?type=w966 ADDA Chelsea Gallery Week 7. 17




어제는 특별 이벤트가 열렸다. 평소 저녁 6시면 갤러리 문을 닫는데 저녁 8시까지 오픈. 무더운 날 갤러리 안은 시원하니 천국 같았다. 특별 행사가 열려서 와인을 준비한 곳도 있어서 작가의 멋진 작품도 보고 와인도 마시며 냉방된 공간에서 산책하니 행복한 오후였다. 가족을 담은 작품에 아주 작은 미니 선풍기가 그려져 우리 집 엄지 손가락 선풍기도 생각나 웃었다. 어제 본 전시회 가운데 낯선 독일 작가의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작품 타이틀도 멋져. <Herbert Zangs/ Plus M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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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 재즈 축제 / 무료




어제저녁도 그리니치 빌리지 프로빈스타운에 뉴욕대 재즈 축제를 보러 갔다. 어제는 재즈 앙상블. 뉴욕대 재즈 학과 디렉터 분도 열심히 연주를 하고 색소폰, 트롬본, 키보드 등 다 함께 연주하니 무더운 날 연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도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감상을 했다. 대학 시절 클래식 기타반에서 합주 연습했던 추억도 떠올렸다. 매년 봄과 가을에 정기 연주회 열리는데 합주 연습하면 밤늦게 집에 돌아가곤 했다. 날마다 며칠 뉴욕대 재즈 공연 보러 갔는데 내 앞에는 할머니가 같은 자리에 앉아 재즈 공연을 감상했다. 그분과 난 늘 같은 자리만 지키니 웃었다. 더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재즈 공연 보고 나와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할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깜짝 놀랐다. 왜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았을까. 무더운 날이라 화장실 문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나. 실수였지만 정말 미안했다. 난 옷 입은 할아버지 뒷모습만 봤어. 과대 상상할 필요는 없어.




어제저녁 센트럴파크에서 서머 스테이지 특별 공연이 열려 꼭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재즈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하늘을 보니 비가 쏟아질 거 같고. 휴대폰 보니 비가 올 확률이 높고. Merce Cunningham 100주년 특별 댄스 공연이라 꼭 보고 싶었는데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오는데 휴대폰에 홍수 경보 메시지가 떴고 지하철에 비상경보가 울렸다. 천 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74 브로드웨이 지하쳘역에 내려 7호선을 기다리는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머스 커닝햄 100주년이라고 뉴욕에서 특별 행사가 많이 열렸는데 그 많은 이벤트를 다 놓쳐 아쉬움이 남는데 나랑 인연이 없는 댄스 공연인가. 7호선에 탑승해 빈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은 졸면서 내게 몸을 기대니 불편했다. 잠시 후 경찰 두 명이 탑승하고.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밤에도 오래오래 버스를 기다렸다. 댄스 공연을 보지 않아도 밤늦게 집에 도착했다.



어제 오전 11시 기온이 31도. 하지만 체감 온도는 36도.

오후 1시 32도, 체감 온도는 39도.

이번 주말 37-38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분명 체감 온도는 더 높을 텐데.

목요일 아침 비가 내려 기온은 조금 내려갔지만 습도가 96%. 참 견디기 힘든 계절이네.


뉴욕은 불바다

푸른 바다에서 잠들고 싶어.




7. 18. 목요일 아침 10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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