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나움버그 오케스트라 공연, 타임 스퀘어, 센트럴파크
금요일 주말 아침 이웃집에서 잔디 깎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마다 여름이면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 주말 뉴욕에 폭염 경보가 내렸다. 내일과 모레 최고 기온이 37도라고 하는데 체감 온도는 얼마나 높을까. 8월 중순이 지나면 US Open 예선전도 시작하는데 테니스 선수들은 긴장하고 있겠다. 작년 무더위 선수들은 죽음의 경기를 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테니스 경기를 하는 거 같았다. 폭염 아래 가만히 앉아서 경기를 보는 것도 숨이 헉헉 막히는데 매초 긴장하는 선수들은 지옥을 만났겠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테니스 선수들 경기를 가까이 지켜보며 실감을 했다.
어제 날씨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아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초록 나무 그늘 아래에서 운동을 했다. 그 시각 부슬비가 내렸다. 어제는 비가 내리니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없었다. 비 내린 날 하드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게 무척 위험하다고. 나 대학 시절 테니스 경기장은 모래였고 그때 하드 코트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 후 맨해튼에 갔다.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 가려고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이웃집 정원에 예쁜 무궁화 꽃이 펴 반가웠다. 지하철 역 앞에 도착하니 1백만 불 복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복권을 사서 행운을 바라며 동전으로 긁었겠지. 꽝이라 던져버렸을 거야. 가난한 동네 플러싱 도로 바닥에 복권이 뒹굴면 마음이 짠하다. 나도 딱 한번 복권을 샀다. 그때 돈이 필요했다. 딸이 런던에서 대학을 다닐 때 비싼 학비를 더 이상 줄 수없어서 트랜스퍼를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복권 한 장을 구입했지만 꽝이었어. 돈이 없으니 딸은 결국 트랜스퍼를 했다. 참 슬픈 일이지. 가난해서 대학을 옮긴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이야.
어제저녁 7시에 열리는 나움버그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Temple Emanu-El에 갔는데 우연히 쉐릴 할머니를 만나 반가웠다. 날 보자마자 "생일 축하해!" 하니 놀랐다. 장미의 계절 내 생일이 있다. 할머니는 내 생일을 기억했다. "생일날 뭐했어?"라고 묻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날 롱아일랜드에 경마축제 보러 가려고 계획했는데 취소를 했다. 내 생일 무렵 브롱스 뉴욕 식물원에서 장미 축제가 열린다. 어릴 적 내 생일은 왜 무더운 여름이야 하면서 불평을 했다. 그때 장미의 계절이란 것도 몰랐다. 한 달도 더 지난 내 생일날 무얼 했는지 기억하기도 어렵다. 경마 축제야 특별한 이벤트니 기억을 하는데 티켓마스터에서 유료 티켓을 구입해야 하니 약간 고민하다 가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6월에 경마장을 다녀오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냥 시간만 흘러가고 말았다.
2017년 8월 19일 저녁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어제 그제(7월 17일과 18일) 라커 펠러 센터 Radio City Music Hall에서 라이오넬 리치 공연이 열렸다. Ticketmaster에서 티켓 사라고 연락이 왔지만 가장 저렴한 티켓이 70불대라서 포기했다. 수년 전 저렴한 티켓을 구해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아들과 함께 라이오넬 리치 공연을 봤는데 노래를 너무 잘 불러 아들도 깜짝 놀랐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노래를 뉴욕에서 라이브 공연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 그제도 분명 공연이 좋았을 거야. 아쉽지만 눈을 감아야지.
할머니 친구 앤도 6월에 생일이라고. 앤은 스웨덴에 살면서 매년 봄과 가을에 뉴욕에 여행을 온다. 음악과 그림을 무척 사랑하는 앤은 뉴욕에서 일해서 뉴욕 문화에 대해 잘 안다고. 지난봄 줄리아드 학교에서 앤과 함께 있는 쉐릴 할머니를 만났다. 70대 쉐릴 할머니는 앤과 나를 가까운 친구로 여긴다.
오랜만에 만난 쉐릴 할머니는 신나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할머니랑 아주 오래전 줄리아드 학교에서 학생들 무료 공연 볼 때 자주 만났지만 우리가 인사를 한 것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어느 날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린 음악 공연 보고 할머니 집에 초대받아 갔다. 뉴욕에서 가끔 초대를 받곤 하지만 일본인 모자 디자이너와 쉐릴 할머니 집에만 방문했다.
할머니에게 지난여름 동안 무얼 했는지 묻자 너무 더워 집에서 에어컨 켜고 지냈다고. 지난번 나움버그 오케스트라 공연 열릴 때도 오셨지만 무대 가까운 앞쪽에 앉아서 우린 만나지 못했다. 뉴욕대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 좋은데 오지 않은 이유가 폭염이었다. 어제도 난 맨 뒷줄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지나다가 날 보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에게 여기 공연 보러 오기 전 무얼 했냐고 물으니 법원에 갔다고. 놀라서 왜 법원에 갔냐고 물으니 2년 전 할렘에서 브롱스로 이사를 했는데 아직도 아파트 디파짓을 받지 않아서라고. 대개 집을 구할 때 디파짓으로 한 달치 렌트비를 주는 경우가 많다. 2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디파짓을 돌려받지 않았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는데 악취가 났다. 그래서 다른 자리로 옮겼다. 할머니에게 왜 갈수록 뉴욕에 홈리스가 많아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도 그런다고 느낀다고. 참 슬픈 일이다.
어릴 적 변호사 외삼촌 덕분에 쉽게 수속을 해서 미국에 왔고 초등학교 시절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다고. 할머니 전남편이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할머니도 서부에 오래 살았단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어제는 서부에서 언제 살았는지 물었다. 1972년부터 1999년까지 서부 캘리포니아에 살다 뉴욕으로 옮겼다고. 전남편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지낼 텐데 마음이 아프다. 어제 할머니가 "돈이 전부야."라고 말하니 조금 놀라서 내가 "돈이 전부는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지요."라고 말했다. 간호사로 활동하다 퇴직하고 혼자서 사는 할머니는 소셜 연금을 받아서 지낸 듯 보이나 사적인 부분이라 얼마나 받아요?라고 묻기는 어려워 잘 모른다.
별을 무척 사랑하는 내가 할머니에게 농담을 했다. 웅장하고 멋진 템플 빌딩 내 장식된 별 12개를 훔치고 싶다고 말하니 할머니가 웃으시며 "너 유머가 그리웠어",라고 말하니 웃었다. 유대인 템플 빌딩에 별이 12개가 보였다. "하늘의 별이 되고 싶어요",라고 덧붙일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제 우리가 방문한 템플은 맨해튼 부촌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있고 센트럴파크 동물원 맞은편에 위치한다. 오래전 화제가 되었던 책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에 나오는 템플이다. 맨해튼 0.1% 상류층이 거주하는 어퍼 이스트사이드 사람들 삶이 어찌 서민들과 같겠어. 당연 다르지. 인류학자가 아들 교육위해 어퍼 이스트사이드로 이사를 가서 받은 충격으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뉴욕의 0.1% 부자라면 세상의 0.1% 부자에 속할지 몰라. 미국 최고 부자는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는 말이 들리니까. 부자든 가난하든 모두 행복하기를 원하고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질 것이지만 방법이 다를 것이다. 어떻든 부자도 아닌 우리가 부자 템플에 가서 특별 공연을 봤으니 감사하지.
할머니는 내게 공연 보러 오기 전 무얼 했냐고 물길래 타임 스퀘어와 센트럴파크에 갔다고 말했다. 센트럴파크에 갔는데 고고한 학 한 마리를 봐서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했는데 오랜만에 쉐릴 할머니를 만나 반가웠다. 타임 스퀘어에서 열리는 재즈 공연 시각을 알려주고 싶은데 휴대폰이 없는 할머니가 내게 펜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내게 펜이 없었다. 저녁 7시 공연이 시작되고 첫곡은 낯선 작곡가 곡이었는데 연주는 흡족하지 않았다. 나움버그 오케스트라 공연은 뉴욕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명성 높은 축제, 무료 공연이지만 당연 최고 음악 단체가 연주를 한다. 최고 연주 단체라 기대 이하란 말이지 아주 수준이 낮다는 말은 아니다. 할머니는 첫곡을 듣고 나서 내게 공연이 어떤지 물었다. 그저 그렇다고 하니 할머니도 공감한다고.
공연을 보는데 기침이 나와 밖으로 나왔다. 템플에서 일하는 직원이 내게 물을 마시라고 하니 지하로 내려갔다. 생수를 마시고 올라오다 뉴욕 클래식 음악 라디오 채널 WQXR에서 주는 부채와 펜을 가지고 홀 안에 들어갔다. 쉬는 시간에 쉐릴 할머니에게 펜을 가져왔으니 메모하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타임 스퀘어 무료 공연 스케줄을 적었다. 어제 컨템퍼러리 곡도 듣고 마지막 곡은 차이콥스키 곡이라 기다렸는데 아들이 석양이 무척 예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처음 들었던 컨템퍼러리 곡 연주는 좋았다.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곡이 아주 마음에 들면 끝까지 보고 아닌 경우는 일찍 떠나는 편인데 어제는 사랑하는 차이콥스키 곡을 마지막에 연주하니 기다렸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아 1악장 듣다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홀을 떠났다.
어제 왜 센트럴파크에 학이 찾아왔을까.
학은 무더위에 어찌 견딜까
주말 폭염을 어찌 견디지.
비행기 타고 뉴질랜드에 갈까
하얀 설원에서 스키를 타면 좋겠다.
아, 몰라.
내가 어찌 뉴질랜드에 간단 말인가.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노래나 듣자.
마음에 하얀 눈 펑펑 내리면 시원할 거야.
그렇지.
무더위 매미는 울고
오페라 성악가도
매일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고 있겠지
테니스 선수도
매일 연습을 하고 있겠지.
난
무얼 할까.
7.19 금요일 아침 8시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