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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향과 잠들고 싶어

아파트 화장실 수선 대소동

by 김지수


어제는 귀족 오늘은 전쟁터 피난민 같아.
삶은 전쟁터.
마음이 초토화가 되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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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들에게 운동하러 가자고 말하니 샤워를 하기 어려우니 운동을 갈 수 없다고. 우리가 샤워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래층 할머니가 가급적 샤워를 안 하면 좋겠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어젯밤 아들은 샤워를 해서 할머니가 놀라게 해 줄까,라고 웃으며 장난말을 했다. 그럼 우리 가족이 샌디 때 겪었던 물벼락을 알 거라고 말하는 아들. 물론 우린 샤워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샤워를 하면 할머니네 집에 물이 떨어진다고.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 가운데 우리 집 지붕만 날아가 아파트 천정에서 물이 쏟아져 한 달 동안 수선을 하느라 대소동을 피웠다. 평생 잊으려 해도 결코 잊지 못할 슬픈 추억이다. 뭐든 경험해야 얼마나 힘든지 알지. 부자는 가난한 사람 마음 모르고,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마음 모르고, 건강한 사람은 아픈 환자 마음 모르고.



오전 9시 반경 아파트 슈퍼 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 10-정오 사이 화장실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인부가 찾아오면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무슨 일인지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대충 아래층 노부부 집에 누수가 되고 우리 집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 수선을 하러 오나 보다 생각을 했다. 오전 10시에 기다린 손님은 도착하지 않았다. 인부는 작업 도구를 들고 10시 45분이 지나 도착했다. 알고 보니 배관공이었다. 화장실 변기통을 들어냈다.


그제서 사태가 심각함을 알아챘다. 배관공에게 몇 시까지 작업을 하냐고 물으니 '하루 종일'이라고. 순간 깜짝 놀랐다. 하루 종일 걸릴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다. 이런 사태라면 미리 하루 전에 말을 했어야지. 무엇보다 화장실 사용이 문제였다. 샤워도 안 하고 맨해튼에 외출할 수도 없고. 꼼짝없이 갇혔다. 샤워는 포기하더라도 화장실은 필요해 슈퍼에게 전화를 했다. 인부가 하루 종일 걸린다고 하는데 화장실을 어찌하냐고. 그녀는 자신 집 화장실은 절대 사용 불가라고 말하고 끊었다.


아들과 둘이서 이야기를 하며 어디에 화장실이 있는지 생각을 했다. 샤워도 안 한 상태에 멀리 외출할 수도 없고. 아들에게 우리가 조깅을 한 공원에 화장실이 있는 거 같으나 공원 문이 잠겼는지 모르고 화장실 문도 잠겼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아들은 서둘러 공원에 다녀왔다. 기대와 달리 공원 화장실 문이 잠겼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면 얼마나 좋아.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
가능해? 불가능하더라.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 행동을 봐라. 아파트 슈퍼 부인이 우리가 그 집 화장실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 봐라. 그뿐인가.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 땡볕 아래 무거운 세탁물을 들고 걸어서 빨래방에 가서 세탁을 했다. 집주인은 세탁기가 있고 빌려줘도 될 거 같으나 그 집 세탁기 사용은 안된다고! 세탁기 사용 비용을 내고라도 사용하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그뿐이랴.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서 제리코로 이사했을 때 우리는 휴대폰이 없어서 집 전화와 인터넷 연결하러 온 사람들 연락이 안 되니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전화 한 통만 사용하자고 부탁을 해도 거절을 했지. 근처에 공중전화도 없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 좋다고 하는데 왜 난 그러지 않을까. 아무리 어려워도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날 힘들게 하지 않으면 감사하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면 어처구니가 없지. 이상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몰라.



보통 사람 삶은 비슷하다. 어렵고 힘들 때가 더 많다. 어쩌다 복 많고 운 좋은 소수와 비교하지 마라. 세상은 불공평하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도 많고 많아. 서로 주고받으면 좋을 텐데 좋은 관계가 성립할 텐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마음이 달라. 받는 사람은 항상 받으려고 하더라. 이상해.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적 아파트 화장실 타일이 비스킷처럼 바삭바삭 부서졌다. 한국에서 한 번도 경험한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화장실 바닥 사고. 아파트 관리실에 이야기하니 며칠 집을 비워 달라고. 집을 비우면 어디로 갈까. 하룻밤 뉴욕과 보스턴 호텔비는 얼마나 비싸. 정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 사는 설움. 슬플 때가 참 많다. 그래도 그때는 아파트 측에서 며칠 집을 비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미리 예고도 없이 화장실 수선 작업을 했다. 부자 나라 미국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그렇지 않더라. 경우에 따라 달라.


그때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적이라 수업 준비에 무척 바쁠 때다. 딸은 런던에서 공부할 무렵. 딸에게 이야기하니 보스턴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딸이 보스턴 호텔을 예약을 해서 며칠 보스턴에 다녀왔다. 부활절인데 너무 추워 고생도 많이 했다. 오래되고 낡은 트렁크 바퀴는 고장이 나서 소리가 대포처럼 크게 나니 귀가 아주 예민한 아들의 신경이 아주 날카로웠는데 더블트리 힐튼 호텔에 도착하니 갓 구운 초콜릿 칩 쿠키 몇 개 주니 아들과 난 맛있게 먹고 바람 불어 추운 날 초콜릿이 몸 안에 들어가니 아들의 화도 풀렸다. 왜 낡고 오래된 가방 버리지 않고 들고 왔냐고 했는데 백화점에 가면 멋진 트렁크 많은데 왜 난 역사 깊은 골동품이 많을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변했다.


그때는 보스턴 지리도 잘 모르고 아는 게 없으니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다. 하버드 대학과 MIT대학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인터넷에 올려진 맛집 식사도 형편없어 더 피곤하고 재미도 없었다. 하버드 스퀘어 The Coop 북카페에 가서 휴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먼 훗날 보스턴과 인연이 될 줄 몰랐지. 딸이 보스턴에 사니 우리가 자주 여행을 갔고 조금씩 보스턴도 뉴욕처럼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아파트 슈퍼 부인은 자신 집 화장실 사용은 불가라고! 그럼 어떡하란 말이니? 가만히 생각하니 아파트 지하에 화장실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각나게 하는 아파트 지하에 있는 화장실. 급하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당장 화장실 가야 하는데 아는 이웃도 없고 불결한 화장실에 갔다. 영화 The Pianist가 생각났다. 아파트 지하 화장실이 더 무서운 것은 안에서 잠글 수 없고 화장실 밖에서만 잠글 수 있다. 아들은 누가 문을 잠그면 어떡해?라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견디고 살아야 한다. 삶은 전쟁터일까. 힘겹고 슬플 때가 참 많다. 그런다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배관공은 정오가 지나자 어디로 사라졌다. 눈치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갔구나 짐작을 했다. 난 화장실 사용이 급하니 서둘러 작업을 하고 빨리 끝내주면 좋겠는데 그와 내 생각은 달랐다. 오후 1시 반이 지나 배관공이 돌아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이 끝날 무렵 배관공에게 냉장고에 있는 수박을 갖다 드렸다. 그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에콰도르에서 왔고 딸은 의사고 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굉장히 젊어 보였는데 의사 딸이 있다고 하니 놀랐어. 25년 전에 뉴욕에 온 그는 뉴욕 생활이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의사가 된 딸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눈치. 어디서 사냐고 물으니 자메이카라고. 위험한 곳이지 않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자메이카가 상당히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그의 대답은 달랐다.


그가 점심 식사하러 사라진 후 우리도 식사 준비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아파트 슈퍼 부인은 몇 차례 집에 찾아왔다. 오랜만에 그녀를 봤는데 할머니가 되어 충격을 받았다. 체중은 20파운드 이상 줄게 보였다. 작년인가 아파트 앞에 책과 헌 가구 누구 필요한 사람 있으면 가져라고 두었는데 슈퍼가 우리 집 때문에 벌금을 냈다고 하니 할 수 없이 슈퍼 부인에게 벌금을 갖다 드렸다. 그녀는 우리가 화장실 사용이 불편하니 조금 미안한 눈치지만 모른 체했다. 헌책과 가구보다 벌금이 더 비쌌어.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라 기분이 안 좋았다. 난 잘 모르고 아파트 앞에 책과 가구를 버렸는데 벌금 내라고 하니 황당했어.


참 이상해. 아래층 노부부 화장실에 문제가 있는데 그 집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고 우리 집은 종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몰라.
왜 나만 그래.


어제 할머니가 찾아와 천사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부탁을 했지만 대소동을 피울 줄 몰랐어. 맨해튼 외출은 포기. 인간이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하고 살 수 있는지 테스트받았어. 무사히 통과했어.


배관공이 떠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데 잔디 깎는 소음이 수시간 동안 들려왔다. 종일 내 마음은 초토화가 되어버렸어. 링컨 센터에서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가 열렸을 텐데. 어제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고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하고 북 카페 가고 귀여운 앵무새도 보고 아코디언 소리도 듣고 링컨 센터 분수도 보고 축제도 보았는데 오늘은 종일 배관공 작업하는 소리와 잔디 작업 소음만 들었어.


삶이 뭘까?

장미향과 잠들고 싶다.



7. 25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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