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월요일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석양이 맨해튼에 물들고 있는 마법의 시간 속으로 우린 떠났다. 마법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월요일 아침 딸은 일찍 일을 하러 떠나고 아들과 난 맨해튼 곳곳을 여행객처럼 걸었다.
브라이언트 파크를 지나며 아들은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우린 걷기 시작 뉴욕 타임스 빌딩과 딘 앤 델루카를 지나고 허드슨 강을 향해 걸었다. 맨해튼 미드타운 거리에서 하얀색 무궁화 꽃을 보니 반가웠고 걷다 보니 Pier 83에 도착했다. 보트에 탄 여행객들은 신난 표정이었다. 피어 83은 아들과 내가 오래전 옥토버페스트 축제를 보러 페리를 탔던 곳이다.
독일인 축제를 보러 간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저렴한 티켓을 구입했는데 축제가 열리는 Bear Mountain까지 편도 3시간 정도 걸려 죽는 줄 알았다. 페리에서 3시간 여행은 견디기 쉽지 않았다. 나중 알고 보니 차로 달리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싼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닌데 무얼 하든 예산을 생각하는 입장이 되니 저렴한 가격에 유혹을 당한다.
두려운 것은 뉴욕으로 돌아오는 것. 다시 3시간 동안 페리를 탈 생각을 하면 아찔했다. 하지만 이미 왕복 페리 티켓을 구입했으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들었던 독일 축제가 생각났다.
매년 가을 단풍이 들 무렵 열리는 축제에 가서 하얀 백조도 구경하고 독일 음식도 맛보았던 추억이 남아 있다. 독일 맥주도 마실까 하다 마시지는 않았다.
부두에서 나와 허드슨 야드를 향해 걸었다. 7호선 지하철 종점역 허드슨 야드에 뉴욕의 명소가 된 벌집 모양의 계단 빌딩 Vessel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딸이 보스턴에서 뉴욕에 올 적 함께 블루 바틀 커피와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었던 허드슨 야드 명품 매장 바로 앞에 있는 건축물. 새로운 뉴욕 명소로 자리 잡아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하니 우린 예약을 하고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명품 매장 2층 빌딩에 시타렐라에 가서 연어 스시를 먹었다. 뉴요커가 사랑하는 맛집에 손님도 무척 많고 우리 옆 테이블에는 불어를 구사하는 여행객이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빌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명품뿐만 아니라 중저가 브랜드 H&M과 Zara 매장과 세계적인 브랜드 화장품을 파는 세포라 매장도 있었다.
우리는 약속 시간에 가까워질 무렵 베슬에 가서 휴대폰으로 티켓을 보여주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소 공포증이 심한 난 계단을 올라가다 자주 멈췄다. 베슬을 올라가며 어지럽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았는데 난 역시 고소 공포증이 심하다. 계단 높이는 낮고 편했지만 한층 한층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돌았다. 올라갈수록 다른 세상이 보인다고 하는데 내게는 공사 중인 뉴욕의 현장과 영화 속처럼 아름다운 옥외 수영장과 하늘에 닿을 듯한 마천루 빌딩과 허드슨 강만 보일 뿐. 예약을 하고 1시간 기다려 방문한 베슬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은 10분 정도나 되었을까. 빨리 계단을 벗어나고 싶었다.
높은 계단 올라가는데 어지러움증을 느끼며 난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낯선 땅 뉴욕에 어찌 왔을까 잠시 생각을 했다.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 뉴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와서 이방인으로서 이민자로서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빛이 없는 동굴을 오랫동안 걷는 느낌이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견디고 살았을까.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릴 거 같은 고통도 참고 인내의 세월을 보냈다. 오랜 세월이 흘러 흘러 빛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월요일 늦은 오후 딸이 메시지를 보냈다. 뉴욕에서 일하는 첫날 저녁은 동료들과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온 딸을 만나 어디로 갈지 생각하다 지하철을 타고 오랜만에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었다. 마침 노을이 지는 시각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석양이 맨해튼에 물들고 있는 마법의 시간 속으로 우린 떠났다. 마법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걷기도 힘들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은 우리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뉴욕 야경을 보면서 천천히 산책을 하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저녁도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두 자녀와 방문한 곳은 디저트 바. 한인 타운에 있는 디저트 바에 처음으로 갔다. 손님들이 많아 귀가 터질 거 같았다. 두 자녀는 익숙한 분위기고 내게는 낯선 세상. 빙수와 아이스크림과 어릴 적 한국에서 먹은 찰떡 맛이 나는 디저트를 먹으며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고 여행객이 무척 사랑하는 타임 스퀘어로 가서 야경을 구경했다. 거리는 얼마나 복잡하던지. 소란스럽고 떠들썩한 타임스퀘어에서 사진 한 장 담는 것도 너무나 힘든 일. 여행객이 많고 도로는 공사 중이라 걷기조차 힘들어서. 밤에도 캐릭터 인형들은 여행객과 사진을 찍고 팁을 받고. 매일 밤 뮤지컬을 봐도 좋을 텐데 뮤지컬 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아름다운 타임 스퀘어 야경을 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미드타운 그랜드 센트럴 옆 빌딩 크라이슬러 조명도 보았다. 뉴욕의 상징적인 크라이슬러 빌딩 조명이 무척 아름다워서 잠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월요일 난 23,688보를 걸었다. 매일매일 맨해튼에서 시간을 보내며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다. 난 얼마나 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종일 집에서 지낸다면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을 매일 낯선 거리를 걸으며 축제를 보며 낯선 사람들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
8. 5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