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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서부로 떠나고

8월 8일 목요일

by 김지수



난 평생 고통을 먹고 살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찾아와 날 흔들면 고통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위기를 잠시 벗어나면 다시 위기가 찾아오곤 했다. 고통이 날 키우더라. 고통을 극복하면 다음에 같은 고통이 찾아오면 고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준 복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게 해결되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꿈은 원대하고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으니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날 위해 무얼 해준단 말인가.



새벽 4시가 지나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꿈나라에서 헤맬 때인데 딸이 아침 비행기로 서부로 떠나야 하니 알람을 4시 반으로 맞췄는데 더 일찍 잠에서 깨었다. CEO와 HARVARD 대학과 MIT 공과 대학 교수들이 새벽에 깨어난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하루 리듬이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들 삶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할 일도 있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새벽에 일어난다는 글을 오래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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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5시 반경 집에서 출발 플러싱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자메이카 역에 갔다. 새벽 시간인데 버스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라 놀랐다. 자메이카 역에 도착 에어 트레인 탑승하는 곳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승차권을 구입하고 딸과 함께 에어 트레인에 탑승했다. 1회 요금 5불, 왕복이면 10불이다. 서부로 떠나는 딸과 자주 만날 수 없을 거 같아 탑승 수속하는 곳까지 배웅했다. 에어 트레인도 만원이었다. 터미널 2 델타 항공기 탑승하는 곳으로 갔다.



공항에 델타 항공기 여행지와 출발 시간이 적혀 있어서 딸이 수속을 하는 동안 잠시 바라보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나의 시선이 멈췄다. 우리 가족의 첫 해외 여행지가 런던이고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또, 딸이 런던에서 공부할 적 뉴욕으로 돌아올 때 하필 폭설이 내려 공항이 문을 닫아 몹시 힘들었던 기억도 났다. 런던도 뉴욕도 비상이고 비행기 탑승권을 구하려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딸과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히드로 공항 상황에 대해 들었다.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딸은 하룻밤은 공항에서 홈리스처럼 지내고 그 후 며칠은 어렵게 구한 호텔에서 지내다 뉴욕에 돌아왔다. 물론 숙박비도 엄청 비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딸은 지난주 토요일(8월 3일) 아침 일찍 뉴욕에 와서 수요일(8월 8일) 떠났다. 휴가를 받아 뉴욕에 온 것이 아니라서 개인적인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쉽지 않아서 일이 늦게 끝나기도 했다. 딸은 바쁜 가운데도 동생과 엄마를 위해 시간을 비워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감사하다. 플라자 호텔 옆 극장에 가서 파바로티 영화도 보고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템플에서 오르페우스 공연도 보려다 계획을 변경했지만 카네기 홀에서 공연도 보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도 하고 맨해튼 미드타운 레스토랑에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근사한 아침 식사를 하고 뉴저지 저지 시티와 호보켄에도 방문하고, 콜럼비아 대학과 브라이언트 파크와 타임스퀘어와 그랜드 센트럴 등 맨해튼 곳곳을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 같은 며칠을 보냈다. 만나면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기다리며 사는 걸까. 서부가 보스턴처럼 가깝다면 자주 오고 갈 수 있을 텐데 아직은 삶이 복잡하니 마음과 달리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서부에 갈 때 뉴욕대와 공동 프로젝트할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하늘이 준 선물인가. 감사한 마음이 든다.


JFK 공항에서 딸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에어 트레인을 타고 자메이카 역으로 돌아와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았다. 집에서 공항까지 시내버스로 약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집에 도착해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러 갔다. 가볍게 아침 운동을 했다. 매미 울음소리 들으며 나팔꽃 보며 파란 하늘 보며 트랙을 몇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글쓰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고지 30매 가까운 분량이라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독자가 읽은 시간은 불과 1-2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글쓰기를 하는 입장은 반대다.


엄마가 글쓰기를 하는 동안 아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컴퓨터 부품을 사러 갔다. 집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린 곳에 컴퓨터 부품 파는 숍이 있다고. 새로운 컴퓨터를 구입하니 아들은 얼마나 가슴 설레었을까. 생각보다 짐이 무겁다고 연락이 와서 시내버스정류장이 집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짐을 들고 오는 아들을 마중하러 가려고 아파트 문을 막 여는 순간 아들이 집에 들어왔다. 컴퓨터 가게에 갈 때는 시내버스에 승객이 더 많아서 오래 걸렸고 집에 돌아올 때는 승객이 많지 않아서 더 빨리 집 근처에 도착해 집으로 걸어왔다고. 미리 출발했더라면 아들에게 도움을 줬을 텐데 8월 7일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온 특별한 기념일이라 장문의 글이 되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들은 혼자서 컴퓨터를 조립할 예정이고 일부는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부품이 있으니 바로 조립이 불가능하다고. 아들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를 사주고 대학 시절 학교에서 맥북프로를 무료로 받았다. 풀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니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다.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니 낡고 오래되어 진즉 구입했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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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266.jpg?type=w966 Sheep Me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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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277.jpg?type=w966 센트럴파크 여름날 풍경




오후 맨해튼에 갔다. 초록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 속의 궁전 센트럴파크에 갔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마차를 보며 맨해튼의 고층 빌딩과 숲의 조화가 아름다운 Sheep Meadow에 갔는데 혹시 노장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분은 만나지 못했다. 수영복을 입고 선탠 하는 뉴요커도 보고 어린아이들이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미니카와 달리기 경주하는 것도 보고 초록 나무 그날 아래서 달콤한 휴식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공원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다 아주 빠른 속도로 뛰는 말을 보았다. 센트럴파크의 마차는 영화처럼 아름답지만 대개 말의 눈빛은 슬프다. 그 말을 보며 나 자신을 생각도 했다. 매일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가서 종일 지내고 평균 하루 1만 보-2만보를 걸으며 매일 사진 작업과 동시 하는 글쓰기가 쉽지는 않다. 맨해튼에 살고 레스토랑에서 매일 식사하면 더 편하겠지만 난 플러싱에 살고 집에서 지내니 눈만 뜨면 반복되는 일상이 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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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무얼 먹고살까. 난 무얼 먹고살까. 경주마처럼 뛰는 말이 무얼 먹는지 잘 모르지만 난 평생 고통을 먹고 살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찾아와 날 흔들면 고통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위기를 잠시 벗어나면 다시 위기가 찾아오곤 했다. 고통이 날 키우더라. 고통을 극복하면 다음에 같은 고통이 찾아오면 고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준 복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게 해결되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꿈은 원대하고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으니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날 위해 무얼 해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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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스퀘어 재즈 공연



카네기 홀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에 갔다. 여름 동안 타임 스퀘어에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재즈 공연이 열린다. 스타벅스 카페 옆 위치에서. 여행객들은 잠시 의자에 앉아 칵테일과 맥주를 마시며 재즈 선율을 감상하고 나도 잠시 재즈 선율을 들으며 하루를 피로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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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 많은 타임 스퀘어에서 캐릭터 인형과 네이키드 걸도 만났지. 뉴욕에 1년 6천5백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찾아오니 타임 스퀘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수도승 옷을 입은 스님인가 내게 황금빛 조각을 주면서 돈을 달라고 하더라. 그럼 난 웃는다. 가짜 황금 조각을 돈 주고 사면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나. 재미있는 세상이야.


사랑하는 아지트 북 카페에서 잠시 쉬고 약간 늦게 링컨 센터에 갔는데 이미 홀 인원이 차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매주 목요일 7시 반에 열리는 무료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더라. 조금 더 일찍 갈 걸 그랬나 후회도 되지만 이미 늦었지. 같은 시각 링컨 센터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가 열리는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앞에서 그냥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홀에 들어가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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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ly Mozart Festival(7/10-8/10) 축제였나. 베이스와 바이올린 연주가 정말 좋아 황홀했어.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 안 보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지고 나의 선택이 나의 삶을 만들어 간다. 나의 선택이 행복을 주었다. 베이스 연주가가 노래도 부르며 연주하는데 얼마나 공연이 좋던지. 두 음악가의 공연을 보는 중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정말 멋진 선택이었다. 야외에서 열리는 축제 보러 갔으면 비에 흠뻑 젖었을 텐데 비도 피하면서 음악도 감상하니 행복한 목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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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센터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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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고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오니 비가 그쳐 다행이었다. 링컨 센터 분수를 지나니 댐로쉬 파크에서 아웃 오브 도어스 축제 조명이 비췄다. 곧 축제가 막이 내리는데 어제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놀랐다. 잠시 축제가 열리는 공원에 들려볼까 하다 입구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밤하늘에 노란 반달이 어둠을 비추고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8월 8일 목요일 2만 942보를 걸었다. 긴 하루를 보냈다.



8월 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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