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금요일
금요일 저녁 맨해튼 이스트 리버 파크(East River Park)에서 열리는 댄스 공연을 보러 갔다. 매년 여름 뉴욕시 공원에서 열리는 섬머 스테이지 댄스 공연이었다. 뜻하지 않은 일로 바쁘다 보니 올해 섬머 스테이지 공연 스케줄도 거의 확인하지 않아서 댄스 공연이 열린 줄도 몰랐다.
금요일 저녁 6시 맨해튼 미드타운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Carnegie Hall Citywide: Citywide Night 특별 공연이 열려서 갔는데 공연이 내 취향이 아니라 뮤지엄에나 갈까 하면서 막 떠나려는 순간 우연히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쉐릴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내게 공연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셨다. 별로라고 대답을 하고 할머니 의견은 어떤지 묻자 나와 같은 의견이다고. 할머니는 댄스 공연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휴대폰도 없이 지내는 할머니는 댄스 공연이 열리는 이스트 리버 공원에 가는 길도 잘 모르셨다. 커다란 종이 지도를 펴고 이리저리 가면 된다고 하나 이스트 리버 방향과 다른 곳을 가리켰다. 내 휴대폰으로 구글 맵에 들어가 공원에 가는 길을 확인 후 브라이언트 지하철역에 가서 메트로카드를 긋고 들어갔는데 뒤 따라오시던 할머니가 안 보였다. 지하철역 플랫폼은 적도처럼 뜨거워 얼른 지하철을 타고 싶은데. 할머니가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전화를 할 텐데 이상하다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 찾기 시작했다. 한참 뒤 할머니를 만났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메트로카드가 작동을 안 해서 소동을 피웠다고.
잠시 후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서 내렸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야 하고 시내버스 정류장 앞 기기 시작 버튼을 누르고 메트로카드를 넣고 종이 티켓을 받았다. 맨해튼 일부 시내버스는 종이 티켓을 요구하고 그럴 때는 시내버스 정류장 기기에 적힌 대로 따라 하면 된다. 일부 시내버스는 종이 티켓을 요구하지 않는다. 저녁 무렵 시내버스는 승객이 많아 복잡했다. 처음으로 이스트 리버 공원을 찾아가는 길 시내버스가 달리는 14th Street를 바라보았다.
구글맵이 알려준 곳에서 내렸는데 댄스 공연이 열리는 곳이 가깝지 않아 오래오래 걸었다. 쉐릴 할머니는 내 잘못이라고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고 난 처음 가는 길이라 잘 모르고 구글맵이 알려준 정거장에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트 리버를 따라 남쪽을 향해 걸었다. 공원에서 테니스와 축구와 농구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댄스 공연이 열리는 이스트 리버 파크에 도착했다. 음악은 귀가 터질 듯이 요란하게 울리지만 이스트 리버 전망은 무척 아름다웠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윌리엄스버그 다리도 보였다. 마침 석양이 지는 시각이라 하늘은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니 더 아름다운 저녁 시간. 음악이 너무 커서 힘들다고 하니 할머니가 종이 조각을 주며 귀를 막으라고, 종이 조각으로 귀를 막아도 음악 소리는 컸다.
약 40년 전에 창단한 모던 댄스는 환상적이었다. 이스트 리버 파크가 교통이 무척 불편하니 괜히 갔나 싶었지만 황홀한 댄스 공연을 보니 쉐릴 할머니 말이 맞았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링컨 센터와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축제는 방문객이 많아 줄이 길다. 할머니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이스트 리버 전망이 아름다워 좋다고. 금요일 밤이라 뮤지엄에 방문한다고 하니 할머니가 뮤지엄은 언제든 방문해도 돼, 하면서 날 데리고 갔는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뉴욕 댄스 공연도 무척 좋으나 무료 공연이 자주 열리지 않지만 여름날 뉴욕시 공원 축제에 가면 댄스 공연을 볼 수 있다. 여름날 공원에서 매일 열리는 수많은 이벤트를 다 볼 수 없고 난 우선순위로 몇 개만 봤는데 할머니는 꽤 많은 공연을 보셨다고. 지난주 화요일 어퍼 이스트 사이드 Temple Emanu-El에서 열렸던 Orpheus Chamber Orchestra 공연이 아주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저녁 두 자녀와 함께 맨해튼에서 피자를 먹고 지하철을 타고 콜럼비아 대학에 방문해 교정에서 산책하다 버틀러 도서관 맞은편 계단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했다. 딸은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과 보스턴 캠브리지에서 일하던 무렵을 돌아다보면서 힘들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딸은 고등학교 과정부터 뉴욕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니 뉴욕에서 태어나 부모의 든든한 뒷받침을 받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지냈던 힘든 고교 시절. 언어 장벽만 없어도 조금 더 쉬울 텐데 뉴욕에서 태어난 경우와 아닌 경우는 하늘과 땅 보다 더 큰 차이가 난다. 하루아침에 언어 장벽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 힘든 세월을 견디었다. 꽤 많은 이민자 가정 부모도 자녀를 위해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지만 난 두 자녀 뒷바라지를 할 수 없었다. 우리 집 두 자녀는 들판에서 자란 잡초와 야생화처럼 자랐다. 모든 것을 스스로 힘으로 해결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민 가방 들고 온 40대 중반 엄마도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 뉴욕의 보통 가정과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고 거의 장님 수준이었다. 중요한 교육 정보를 구해서 자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내 공부도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워 숨 쉴 틈도 없었다. 그렇게 힘들고 아픈 세월이 흘러갔다.
낯선 도시에 여행을 가면 요즘이야 구글맵을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세상에 삶의 지도는 없다. 낯선 뉴욕에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 어디가 무엇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 상상해 보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 가서 산다고. 여행만 가도 미리 여행서 읽고 공부하고 자료 구해서 간다.
그런데 세상에 삶의 지도가 있는가. 지리도 몰라. 백화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어디서 냉장고를 파는지도 몰라.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아무것도 몰라.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편리해? 미국은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차가 없이 살 수 없다. 우리 가족 첫 정착지 롱아일랜드에서 매일 수 시간씩 걸었다. 매일매일 땡볕 아래서 낯선 지리를 익혔다. 처음 정착 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 보통 가정과 싱글맘 가정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아무도 없는 뉴욕에 왔다. 학교에 가면 뉴욕에서 태어난 학생들과 경쟁을 한다. 낯선 도시에 가면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그냥 열리지 않는다. 고통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조금씩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하며 살아간다. 정착 초기 맨해튼 문화생활은 우주만큼 거리가 멀었다. 맨해튼이 뭔지도 몰랐다. 수년 동안 매일 지하철을 타고 가서 탐구하다 보니 보물섬을 발견했다.
쉐릴 할머니랑 함께 모던 댄스를 보고 이스트 리버에서 산책도 하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러 걸었다. 교통이 무척 불편한 곳이라 꽤 걸었다. 할머니는 기사에게 할머니 집 가는 길과 내 집에 가는 교통편을 물었다. 또 축제가 열린 바로 옆 시내버스 교통도 물었다. 기사는 공원 바로 옆에 우리가 탔던 M14D 버스 정류장은 없다고. 그러니 내 잘못이 아니었다. 구글맵이 알려준 대로 내려 오래 걸으니 할머니는 내가 실수로 더 빨리 내려 오래오래 걸었다고 했지만 버스 정류장이 공원 근처에 없었다. 할머니와 난 버스를 타고 달리다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지하철에 환승했다. 할머니 메트로카드는 다시 말썽을 부렸다. 몇 번을 그어도 작동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다.
지하철 안에서 할머니가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난 웃으며 22살이라고 말하니 할머니가 웃었다. 난 재주가 많아. 남을 웃게 만드니. 수년 전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낯선 할아버지랑 이야기하다 할아버지가 내 나이를 물어서 22살이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쉐릴 할머니는 다시 웃었다. 왜 웃어? 난 분명 스물두 살인데. 내 마음은 스물두 살이야. 하하.
금요일 아침 아들과 운동을 하러 갔다. 매미 울음소리 들으며 나팔꽃 보며 트랙을 몇 바퀴 돌다 집에 돌아오는 길거리에서 매미 한 마리를 보았다. 식사를 하고 오후 북 카페에 갔지만 소란하니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온 중년 여행객과 두 명의 손님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나 그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서점을 떠나고 말았다. 그들에겐 행복을 주는 북 카페.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8월 9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