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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을 돌아본 댄스 축제,
코미디언과 아티스트

8월 12일 월요일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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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허드슨 강 석양이 무척 아름다워.





뉴욕 맨해튼 배터리 댄스 페스티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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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지는 허드슨 강 바라보며 댄스 구경을 하고 꽃 향기 맡으며 공원에서 산책하고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 비치는 달과 별도 보았어. 석양이 지는 시각 바람도 불어서 더 좋더라. 아름다운 석양 속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석양이 떠나버려 섭섭했어.


황홀한 석양은 왜 잠시 머물다 사라질까. 하지만 파도 소리와 매미 소리와 석양과 댄스는 오래도록 내 머릿속 기억 창고에 머물겠지. 정말 석양 지는 순간은 찰나 같아. 인생도 찰나 아닌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죽고 오랫동안 교육받고 일하며 살다 저 세상으로 떠난다. 순간순간 피할 수 없는 숙제를 해결하며 잠시 살다 머나먼 길을 떠나지. 생이 정말 잠깐이니 찰나를 즐겨야지. 아무리 생이 무겁다 하더라도 고개를 들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푸른 바다도 보며 휴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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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댄스 축제를 보았는데 1년이란 세월은 왜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 몰라. 무얼 하고 보냈을까. 마음 아픈 날도 많고 많았지만 참고 견디고 버티고 지냈지. 알 수 없는 게 생 아니던가. 늘 알 수 없는 문제가 찾아와 내게 사랑을 고백한다. 힘든 순간이 정말 많고 많았지. 고통과 고통 속을 날아다녔을까. 고통 없는 인간이 어디에 있을까. 고통의 순간에도 절망 가운데도 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축제와 전시회를 보고 북 카페에서 책을 읽곤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축제도 보았어. 수 백만 군중이 모여드는 축제를 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축제를 보러 갔으니.


보스턴 캠브리지 연구소에서 일하던 딸은 지난 6월 서부 실리콘밸리로 옮겼고 아들과 나도 몇 차례 보스턴을 방문해 아름다운 찰스 강 석양도 보고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해당화 꽃 피는 요트 정박장이 있는 곳에서 석양 지는 무렵 산책하니 행복했지. 또, 보스턴 맛집에 가서 맛있는 식사도 하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MIT 대학 근처 레스토랑은 메뉴판이 화학 원소 기호 판처럼 생겨 웃었어. 역시 천재들이 사는 동네 분위기는 달라.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 교정에서 거닐며 이야기를 했지.



너무너무 바쁜 딸이 짐을 정리할 시간도 없어서 우리가 도와주러 갔는데 메가 버스 시간은 예정되어 있고 겨우겨우 짐을 싸고 우버 택시를 불렀는데 하필 목발 짚은 할아버지가 나타나고 우리 짐은 많고 할 수 없이 할아버지 기사를 보내고 다시 우버 택시를 불렀는데 그만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에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그때 만난 터키 출신 기사는 우리가 뉴욕에서 왔다고 하니 "뉴욕은 이민자들 도시이고 시간이 돈이니 보스턴과 다르지요",라고 말해서 웃었다. 뉴욕은 차도 빨리 달리고 보스턴은 학구적이고 보수적인 도시고 뉴욕은 자유롭고 진보적인 도시니 두 도시가 다르다. 그 기사는 오래전 택시에 수 만불 지폐가 든 돈 가방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 가방 주인에게 돈이 얼마나 들어있냐고 물으니 잘 몰랐다고. 그럼에도 돈 가방을 돌려주었다고 하면서 평생 잊기 어려운 추억이라고 하더라.


메가 버스는 밤늦게 운행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사우스 스테이션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물론 메가 버스 티켓은 다시 구입해야 하니 숙박비와 교통비가 많이 들어 속이 상했지만 대신 우리 가족은 보스턴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보스턴 호텔에서 흐르는 음악도 좋았는데 잊어버렸다. 뉴욕과 분위기가 약간 다른 보스턴. 보스턴을 떠나올 때 메가 버스에 탑승해야 하는데 정해진 짐 규정이 넘으면 안 되어 호텔에서 머물며 다시 가방 정리를 하고 어쩔 수 없이 호텔에 버린 물건들도 많았다. 그리고 메가 버스 탑승했을 때도 짐 무게가 초과한다고 하니 하버드대 교수님이 선물로 준 전공 서적을 가방에서 꺼냈다.


딸이 전부터 미국 동부 휴양지 케이프 코드에도 가자고 말했는데 여행경비가 많이 드니 자꾸만 미뤘는데 딸이 서부로 옮긴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에 초고속 페리를 타고 케이프 코드 프로빈스타운에도 다녀왔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프로빈스타운에 갤러리들은 왜 그리 많던지 놀랍기만 했지. 또 예술 공간이 무척 많으나 여행객으로 잠시 머문 우리 가족이 특별한 공연을 볼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바다를 사랑하는 난 처음에 푸른 바다에 황홀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초고속 페리에서 죽는 줄 알았지. 비행기 속도가 페리 보다 더 빠를 텐데 왜 페리에 탑승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든지 몰라.


지난 1년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와 줄리아드 학교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공연도 보고 친구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좋았어. 인도에 트래킹 떠난 할머니는 뉴욕에 돌아왔나. 사랑하는 거버너스 아일랜드에도 가끔 찾아가 공연도 보고 전시회도 보았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휴식하면 에너지가 솟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행복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슬픈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가슴 아프고 슬픈 추억은 잊고 싶구나. 아픈 기억은 다 잊고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고 살면 좋겠어. 걱정하면 안 돼. 걱정과 근심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게 되지. 뜻하지 않은 슬픈 일이 찾아와도 걱정하지 말고 최선이 무언지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작은 인간이 어찌 하늘의 뜻을 피하겠니.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나. 아마 특별한 날은 쓰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거의 매일 글쓰기를 했던 거 같다. 삶은 슬프지만 매일 행복을 찾으려고 맨해튼에 갔어. 뉴욕이 세상의 한 복판이란 것도 모르고 왔는데 어느 날 눈 떠보니 세상의 한 복판이야. 세상의 부자와 귀족들과 천재들과 예술가들이 모여사는 맨해튼 거리거리에는 홈리스가 넘치고 넘쳐 참 가슴 아프지. 극과 극을 보여주는 뉴욕. 생은 아무도 몰라. 홈리스 가운데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 인재도 많다고. 박사 학위 받은 홈리스도 있다고 하더라.


월요일 아침 아들과 운동을 했다. 공원이 문이 잠겨져 호수에 가서 기러기떼 산책하는 호수를 몇 바퀴 돌다 집에 돌아왔다. 애완견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도 많고 벤치에 앉아서 휴식하는 주민도 보았지. 플러싱 주택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와 감나무도 보고 매미 울음소리 들으며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 숲 속에 매미 오케스트라가 사나. 동서남북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가 마치 뉴욕 필하모닉 공연 같았어. 그 많은 매미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무더운 여름날 들려오는 매이 소리는 전공 서적 붙들고 씨름하지 않으니 정말 좋아.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하고 글쓰기 마치니 피곤이 밀려와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힘내어 시내버스와 지하철에 몇 차례 환승하고 맨해튼에 갔다. 미드타운에서 커피와 함께 책을 읽으며 잠시 쉬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날 보고 아티스트냐고 물었는데 처음에 날 보고 말하는지도 몰랐다. 다시 아티스트냐고 물어서 고개를 들었다. 정장 입은 중년 남자가 날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나.


맨해튼에서 만나는 괴물들이 자꾸 날 보고 아티스트냐고 묻는다. 왜 괴물이냐고. 파릇파릇 청춘이 빛나는 20대도 아니고 주름살 가득한 평범한 586세대이고 노 메이크업, 아들이 수도승 옷 스타일이라고 말한 바로 그 옷을 입고 있는데 날 보고 아티스트냐고 물어서. 알고 보니 그가 아티스트였다.


내게 일본에서 왔냐고 물어서 한국이라고 하니 부산에 한 번 갔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분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를 아냐고 물어. 내가 맨해튼에 있는 사람들 어찌 다 알아. 모른다고 하니 정말 유명한 분이라고 해. 명성 높은 할아버지는 내가 모른다고 하니 기분이 안 좋았을까. 알고 보니 Jackie Mason 코미디언이라고.


아티스트가 내게 무얼 좋아하냐고 물어서 자연, 여행, 그림, 댄스, 음악, 문학, 영화,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니 놀라더라. 며칠 전 담은 윌리엄스버그 다리 석양 사진도 보여주고 센트럴파크 사진도 보여주었는데 마음에 든 눈치였다. 한국 출신이라고 하니 트럼프 정책과 한국 관계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물어. 미국인과 내가 정치 이야기를 어찌해. 모른다고 했어. 피곤해 맨해튼에 갈지 망설이다 갔는데 유명한 코미디언도 만나고 아티스트랑 이야기 나눠 좋았어.


뉴욕 문화가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데 그분은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고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책이 어렵지 않냐고 물어서 책을 좋아하니 어렵지 않다고 했지. 어릴 적부터 맨해튼에서 자라지 않은 내게 코미디는 아직도 상당히 도전이고 사실 코미디 볼 여력도 없다. 공연과 전시회 보고 책 읽기도 너무 바빠서. 뉴욕 지각생은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과 문화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맨해튼 배터리 파크에서 댄스 축제 보고 낯선 아티스트와 코미디언 만나고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긴 호흡을 하고 힘을 내어 한인 마트에 가서 수박과 김치도 샀다. 수박은 맛이 좋은데 왜 그리 무거운지 몰라. 힘이 없으니 수박이 지구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8월 13일 월요일




맨해튼 배터리 파크 석양이 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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