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월의 마지막밤_할로윈_줄리아드 학교 테너 공연

by 김지수

10월 31일 할로윈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던 시월의 마지막 날. 죽은 영혼이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정말 무서웠다. 고목나무도 바람에 곧 쓰러질 거 같아서 허리케인 샌디도 생각났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면 딴 나라 구경하니 무서운 바람 속에도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나의 아지트에 가서 따뜻한 커피 한 마시고 줄리아드 학교에 공연을 보러 갔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공부했던 아트 스튜던츠 리그 근처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어 얼마나 예쁘던지 가슴속에 담고 길을 재촉했다. 콜럼버스 서클 타임 워너 빌딩 앞 가로수도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 예뻤다. 황금색 물결이 춤추는 맨해튼. 내 마음도 황금물결로 춤을 추었다. 링컨 센터로 향하는 길 늘 보는 중국인 할머니 홈리스는 결석을 하니 이상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구걸을 하는데. 개근상 받아야 하는 할머니 홈리스는 어디로 갔을까. 단테 파크 주변에 갈색 낙엽들이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던지 내 가슴은 가을 향기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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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45.jpg?type=w966 언제봐도 예쁜 링컨 센터 분수



링컨 센터 분수를 바라보며 어제 그제 오페라 보던 추억을 떠올렸다. 참 가슴 아픈 날이 많기도 하지. 복잡한 일이 생겨 마음이 블랙홀로 잠수를 했다. 그러다 오페라를 관람하러 가자고 가장 저렴한 입석표를 구입해 오랜만에 오페라를 감상했는데 너무너무 좋아서 다음날은 러시 티켓을 시도했는데 운 좋게 수 백 불하는 티켓이 내 손에 들어오고 말았다. 1년 내내 행운이 찾아오지 않기에 얼른 달려가 오페라 티켓을 받고 파리의 라틴지구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노래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봤다. 메트에서 오페라 보는 순간만큼은 귀족이 된다. 세상의 고통 다 잊고 천상에서 산책을 한다. 메트를 떠나면 오페라 봤던 추억이 오래오래 된 거 같아서 이상하다.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나무 계단에는 쉐릴 할머니 친구가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하고 함께 공연을 감상했다. 소프라노와 테너가 부르는 곡을 감상했는데 테너가 부른 슈만 곡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플러싱 집에서 맨해튼까지 가깝지 않으니 가끔은 약간 망설이기도 하는데 맨해튼에 가면 멋진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11월이 되면 점점 더 많은 공연이 열려서 좋다. 할머니에게 테너 곡이 무척 예쁘다고 말했다. 객석에서 "브라보 브라보" 외쳤다. 테너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메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어 보였다.


IMG_1746.jpg?type=w966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반 무료 공연


저녁 7시 반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서도 무료 공연이 열렸다. 쉐릴 할머니랑 함께 공연을 보러 가서 잠깐 공연을 감상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아파트와 교통카드로 마음이 무겁다고. 할로윈인데 정말 유령이 찾아와 쉐릴 할머니가 고통을 받고 있나. 맨해튼 할렘에 살다 아파트 치안이 안 좋아 저 멀리 브롱스로 이사를 갔는데 역시나 마약 거래 상인들이 무단으로 아파트에 침입을 하니 답답한 일이다. 시니어 교통 카드를 30일 정액권으로 충전했는데 이상하게 교통카드가 충전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 지하철역 직원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필요 없는 일이다. 우리 가족도 수 차례 당한 일이다. 교통 카드를 뉴욕 교통국에 보내도 답변 조차 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할로윈 퍼레이드가 열렸지만 난 조용하게 할로윈을 보냈다. 지하철에도 할로윈 복장을 한 뉴요커들도 보였다.


참 좋은 세상이다. 멀리 지낸 사람들 소식도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차 한 잔 마시고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은 없지만 소식만 듣고도 기쁘다. 뉴저지에 사는 분이 올린 캘리포니아 포도밭 사진 보며 마음은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났다. 파리에서 오랫동안 음악 공부를 하다 작년 10월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던 분도 벌써 1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올려서 놀랐다. 1년 빨리도 흘러갔어. 음악가로 활동하다 쇼핑몰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한 용기라서 응원한다고 안부를 남겼다. 사업도 하면서 파리에서 사진전도 열었다고 하니 축하한다고 했다. 어느 분야든 쉬운 것은 없고 힘들 때는 잠시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도 좋다. 세상에 단 하나의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맨해튼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학자 분도 4년 동안 연구한 결산물인 책을 출판하고 저널도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고 소식을 전했다. 평생 수험생처럼 학문을 연구해야 하는 학자의 길도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세상에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치열한 싸움을 하며 삶을 만들어 가는 듯 짐작된다.


아름다운 시월 참 바쁘게 지냈다. 몇 권의 브런치북을 발간하느라 더 바쁘기도 했다. 책 한 권 집필이 왜 그리 어려운지 몰라. 수년 동안 매일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가서 하루 종일 걸으며 보고 듣고 읽은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좋은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출판도 하면 좋겠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부촌 할로윈 장식도 무척 예쁜데 올해는 한 번도 구경도 못했다. 메트 뮤지엄 방문도 자꾸 미루고 있다. 집에서 왕복 7마일 거리에 있는 하얀 백조 가족이 사는 황금 연못에도 가고 싶었는데 그만 가지 못했다. 황금물결 춤추는 가을 나무가 무척 예쁜데. 다리를 건너면 내가 사랑하는 바다를 볼 수 있는데. 구겐하임 저택이 있는 롱아일랜드 Sands Point도 무척 아름다운데 차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야. 숲과 바다 풍경 모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뉴욕 명소가 그립기만 하구나. 수년 전 드라이브하면서 딸과 함께 방문했는데 추억으로 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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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미드타운 마트 할로윈 장식도 예쁘다.



맨해튼 마트 할로윈 장식도 참 예쁘다. 시월의 마지막 밤 이용의 노래를 듣곤 했는데 그도 늙어가겠다. 아름다운 시월도 보내고 말았어.



시월의 마지막 밤_이용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나를 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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