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토요일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길을 걸었다. 시든 붉은 장미꽃도 보고 11월의 햇살도 11월의 바람도 느꼈다. 토요일 저녁 카네기 홀에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나 마음은 갈팡질팡하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이틀 연속 공연 보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고민했어. 주말 7호선이 정상 운행하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 몇 주 동안 7호선이 111가까지 운행하니 무료 셔틀버스를 타야 하니 상당히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김치찌개를 끓여 식사 준비를 하고 외출을 했지만 몹시도 추웠다.
너무 추워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낯선 뉴요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좋았다. 매네스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홍콩 출신 학생이었다. 전에 만난 매네스에서 피아노 공부한 중국 유학생과 친구라고. 둘이 함께 공연을 보러 왔다. 15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우다 작곡을 공부한다고. 왜 작곡을 배우냐고 하니 꿈이 지휘자라고 해서 웃었다. 아들도 초등학교 시절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놀랐다. 사실 그때는 한국에 지휘자란 직업은 흔하지 않았다.
홍콩 출신 음악가에게 어떤 작곡가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컨템퍼러리 작곡가를 좋아한다고. 뉴욕에 와서 천천히 컨템퍼러리 음악에 노출되지만 아직도 내게는 낯선 음악 세계다. 주로 줄리아드 학교에서 현대 음악을 듣곤 한다. 홍콩 경제가 어떠냐고 물으니 갈수록 안 좋다고 했다.
두 명의 음악가는 내년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랑랑 공연 스케줄을 알고 있어서 역시 나랑 다름을 느꼈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한 동안 연주를 하지 않았는데 건강을 되찾았나 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건강처럼 소중한 게 없는데 평소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다 아프고 난 후 깨닫는다. 정말이지 건강처럼 소중한 게 어디 있겠어. 건강을 잃으면 다 잃어버리잖아. 스티브 잡스도 하늘로 떠났다. 의사가 그의 병을 고쳐준다면 전재산 다 줬을 텐데. 뉴욕 음악팬들은 오페라와 뉴욕필과 카네기 홀 공연 스케줄을 미리미리 확인한다.
날씨가 추워 미리 예약했던 특별 재즈 공연과 줄리아드 예비학교 공연 보러 가는 것은 포기했다. 1호선이 정상 운행하지 않은 것도 포기한 이유에 속한다. 주말 1호선이 익스프레스로 운행. 추워 잠시 걷기도 힘들었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면 백합과 장미꽃 향기 맡으며 천상의 음악을 감상할 텐데 할 수 없지.
토요일 너무너무 추워 맨해튼에서 세 잔의 커피를 마시고 말았다. 좀 드문 일이다.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는 것은 플러싱에 사는 나로서는 상당히 도전적이다. 집안일이 없다면 덜 피곤할 텐데 주부로서 해야 하는 최소의 의무는 잊지 않아야 하니까. 그리고 수 차례 트랜스퍼해서 맨해튼에 오니 피곤하다.
맨해튼 외출 1순위 목적은 카네기 홀 공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1년 내내 카네기 홀에서 열린 것도 아니니 피곤하고 힘들지만 이틀 연속 공연을 감상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고개는 약간 무겁나 봐. 다른 지휘자와 달리 아주 약간만 고개를 숙이고 청중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의 안경테와 구두는 반짝반짝 빛나더라. 공연이 막이 내리면 단원들 가운데 악기별로 부분 부분 일어서 소개를 하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좋아하겠어.
두 번째 날 공연은 프로코피예프 곡만 연주했다. 공연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고 가끔은 아주 섹시한 바이올린 소리에 행복했다. 플루트 소리도 아름다워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플루트 마스터 클래스에 안 간 걸 조금 후회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플루트 연주가가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는데 게을러서 안 갔어. 요즘 추워 여기저기 이동하기 싫다. 추운 겨울에 마음 따뜻하게 하는 금관악기 연주는 어렵나 봐. 유명한 교향악단 금관악기 연주가 신통치 않으니까.
November 16, 2019 —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iccardo Muti, Music Director and Conductor
Program
ALL-PROKOFIEV PROGRAM
Selections from Romeo and Juliet
Symphony No. 3
아들은 이틀 연속 공연 보기 힘들다고 포기하니 나 혼자 카네기 홀에 갔다. 지난번 독일 뮌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이틀째 공연을 보다 졸고 말았어. 세상에 좋아하는 음악 감상하러 갔는데 졸고 말았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어.
토요일 오후 부자들 잔치 열리는 크리스티 경매장에도 가서 전시회를 감상했다. 백발노인 두 명은 작품을 구매하려는지 직원과 상담하고 계셨다. 존 싱어 사전트, 윌리엄 메릿 체이스, 매리 카사, 차일드 하삼, 로만 록웰, 밀턴 에브리 등 미국 작가를 비롯 라틴 아메리카 대표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을 보고 갤러리를 나왔다. 백장미 향기 맡으며 그림 향기 맡고 밖으로 나오니 얼마나 춥던지. 맨해튼 미드타운은 벌써부터 아주 복잡하다. 점점 더 많은 여행객들이 뉴욕에 오고 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