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금요일
서머타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상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금요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나서 지하철을 탔다. 오랜만에 까만색 겨울 스웨터를 꺼내 입고 맨해튼에 가는데 젊은 아가씨가 아이패드에 만화를 그리고 있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은 마법을 부린 듯했다. 펜으로 이리저리 스케치를 하면 멋진 만화가 완성되었다. 슬픈 표정을 짓는 간호사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퀸즈보로 플라자에서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에 환승했는데 홈리스들 몇 명이 지하철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지하철 안에서 더 많은 홈리스들을 보게 된다. 한 남자는 무릎 위에 노트북과 미국사 책을 펴고 미국 대공황 편을 읽고 있었다. 퀸즈 아스토리아 갤러리 주인은 지금 미국 빈부차가 대공황 시절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갈수록 심각한 빈부차 해결은 어디서 찾을까. 시간이 넉넉하다면 미국사 책도 읽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꾸 미루고 있다.
Friday, November 8, 2019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Mariss Jansons, Chief Conductor
Diana Damrau, Soprano
R. STRAUSS Four Symphonic Interludes from Intermezzo
R. STRAUSS Four Last Songs
BRAHMS Symphony No. 4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공연이 열렸다. 독일 뮌헨에 기반을 둔 오케스트라 공연이 정말 좋다. 디아나 담라우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환상적이었다. 카네기 홀에 간 보람이 있었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부한 아들 친구도 찾아왔다. 우린 플러싱에 사니 앙코르 곡도 듣지 않고 떠났다.
메트에서 활동하는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 Soprano)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찾아왔다.
얼마나 오랜만에 수잔 할머니는 만난 것인지. 한동안 거의 만나지 못해 안부가 그리웠는데 반갑기만 했다. 피바디 음악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드님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오셨다. 수잔 할머니 아드님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에 친구가 연주를 하니 공연을 보러 왔고 내일은 볼티모어로 떠난다고.
수잔 할머니 부모님은 뉴욕에서 탄생했지만 조부모님은 미국에 이민을 오셔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수잔 할머니는 이민 3세가 되겠다. 이민 1세와 2세와 3세는 각각 다르다. 언어 장벽이 높은 이민 1세는 이민 생활이 도전적이지만 이민 2세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언어가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서 사는 어려움은 어느 민족이든 마찬가지다. 메트에서 발런티어를 하는데 자주 리허설 오페라를 봤다고 하고 줄리아드 학교에서도 오페라를 봤다고. 줄리아드 학교 오페라는 유료라서 난 평소 보지 않는다. 또, 뉴욕 시티 발레,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요나스 카우프만, 르네 플레밍 등 공연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음악을 사랑한 사람은 만나면 음악 얘기부터 꺼낸다.
할머니 건강이 어떤지 묻자 눈 수술을 했는데 8000불씩이나 들고 보청기를 사용하는데 7000불이나 들었다고 비싼 미국 의료비에 대해 불평을 하셨다. 음악을 사랑하니 귀가 들리지 않으면 큰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보청기를 구입했다고.
갈수록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나는 쉐릴 할머니랑 연세가 같은데 아직 쉐릴 할머니는 눈과 귀에 이상이 없어 보인데 개인차가 큰 듯 짐작이 된다. 젊을 적 미리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한데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시달리다 보니 건강의 소중함도 잊게 된다. 독일 항공사에서 파업을 했다는 소식도 말씀하셨다.
아주 오랜만에 리처드 오페라 지휘자도 만났다. 오페라 지휘자니 오페라도 자주 본다. 라보엠 오페라도 보셨는데 홍혜경이 미미로 출연하는 라보엠 오페라를 다시 볼 예정이라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를 한 번만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만큼 본다. 또, 60세 홍혜경이 로돌프 시인의 사랑하는 연인 미미 역으로 출연하니 놀랍다. 카네기 홀에서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공연 볼 때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니 뉴욕시가 아닌 다른 곳에 지내서 어쩔 수 없이 공연을 볼 수 없었다고. 낯선 할아버지랑도 이야기를 했다. 지팡이를 들고 온 할아버지는 청바지와 초콜릿 재킷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18년 전에 조지아(구러시아에 속함)에서 미국에 이민 오셨는데 조지아에서 교수로 재직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너무 추운 날 5번가를 거닐다 벌써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고 산타 할아버지도 만났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간다.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는 연말이 다가온다. 쇼핑백을 들고 걷는 사람도 많고 거리에서 목도리와 털모자와 장갑도 파는 상인도 있고 군밤 파는 상인도 보았다. 군밤은 한국에서만 먹는 줄 알았다. 겨울에 먹는 군고구마와 군밤은 얼마나 맛이 좋은지. 가격만 저렴하다면 먹고 싶은데 5번가에서 파는 군밤은 그림의 떡이야. 추운 날 5번가에 홈리스들도 많았다. 교회 종소리 들으며 걷다 갤러리에도 방문해 전시회를 보았다. 직원 말고 아무도 없는 갤러리는 얼마나 한산해 좋은지.
미드타운 갤러리 전시회 작가의 라스트 네임이 '브라보(Claudio Bravo) '라 웃었다. 내 인생이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하면 좋겠다. 폭풍은 이제 그만 불고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면 좋겠다. 5번가 성 패트릭 성당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도 드렸다. 성당 안 벤치에는 홈리스가 누워 잠들고 촛불 켜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마 무료입장 시간이 오후 5시 반부터 밤 9시까지로 변경되었더라. 10월 21일부터 새로 오픈한 모마 전시회를 보지도 않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