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월요일
가을색이 점점 짙어만 가는 계절. 붉게 물든 이웃집 단풍도 보면서 설악산 단풍도 생각났다. 설악산은 얼마나 예쁠까. 오랜만에 아들과 호수에 산책을 하러 가서 하얀 백조와 기러기떼와 일광욕하는 거북이 떼도 보면서 노란 숲 속에서 산책을 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에 나오는 '노란 숲'이란 표현이 사실 뭔지도 몰랐다. 뉴욕 딕스 힐(Dix Hills)에 살 때 딸이 다닌 학교 가는 길 노란 숲이 환상적이라 잊히지 않는다. 얼마나 예쁘던지. 그해 가을 단풍이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먼 훗날 생이 달라졌다는 내용의 시는 마치 내 삶과도 비슷하다. 고등학교 시절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가지 않은 길' 시를 읽곤 했는데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날 흔들어 버리니 그 길이 얼마나 힘든 줄 모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도 힘든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하나의 문 열기도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런데 금세 문이 닫히고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하는 게 인생 아닌지. 가다가다 보면 묘지에 도착할 텐데 데 삶은 언제나 끝없이 복잡하지. 어떤 선택이 맞는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다 시간을 보낸다. 정말이지 단순한 삶을 좋아하는 내게도 끝없는 시련이 주어진다. 평생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지. 천상의 음악을 들으면 잠시 세상의 무게와 고통을 잊는다.
한국에서 노란 은행나무 말고 노란 숲을 본 기억나지 않는다. 노란 숲의 향연. 1년 365일 가운데 단 며칠 아름다운 단풍의 노래를 듣는다. 베토벤이 숲 속에서 자주 산책을 했다고 하니 노란 숲 속을 걷다 베토벤도 생각났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도 없고 어느 직업이든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작곡가는 정말 아무나 할 거 같지 않다. 뉴욕에 와서 거의 매일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다 보니 자주 음악가란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지난번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때 베를린에서 온 피아니스트를 만났는데 그도 아들과 나처럼 베토벤과 바흐를 사랑한다고 하니 웃었다.
호수에서 산책을 하다 장을 보러 갔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가는데 자꾸만 미뤘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귀족처럼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없다 하더라도 매일 먹어야 하니까. 맨해튼은 사실 사서 먹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신선하고 저렴하다면 바쁜 스케줄에는 사서 먹고 싶은 생각도 든다. 비싸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맨해튼에서 식사를 하지 않지만.
세일하는 아보카도 몇 개와 토마토, 파슬리, 소파, 달걀과 닭고기, 베이글 등을 구입해 배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못생긴 베이글은 가격이 평소보다 더 저렴했다. 베이글 가격도 천차만별. 맨해튼은 베이글 가격도 비싼데 1불에 4개를 주더라. 집에 돌아와 크림치즈 듬뿍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다.
월요일 맨해튼 한인 타운 근처 에이스 호텔에서도 오페라 공연이 열렸고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는데 집에서 휴식을 했다. 맨해튼에 외출하지 않아도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는지 몰라. 벌써 밤이 깊어간다. 어제는 달무리 진 보름달도 봤는데 오늘은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나랑 숨바꼭질하고 싶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