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탕

by 김지수

11월 27일 수요일 추수감사절 휴일


특별한 휴일인데 서부에 사는 딸은 무척 바빠서 올 수 없고 그냥 빈둥빈둥 하루를 보내자니 약간 섭섭하고 추수 감사절 휴일은 대개 문을 닫는 곳이 많아서 갈 곳도 많지 않고 요즘 플러싱 시내버스 기사가 자주 스케줄에 맞춰 오지 않아 오래오래 기다리다 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아서 사랑하는 브루클린 코니 아일랜드와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갈 에너지도 없고 그래서 메트 뮤지엄에 갔다. 상당히 추웠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렉싱턴 애비뉴 86가에 내려 뮤지엄 마일을 향해 걸었다. 분명 메트 뮤지엄이 오픈한다고 구글에 나왔다. 정말 나 뉴요커 맞아하면서 웃었다. 메트 뮤지엄 문이 닫혀 있었다. 허탕을 치고 말았어. 그것도 추운 날 애써 찾아갔는데. 가을이 되면 거의 매일 공연을 감상할 수 있으니 뮤지엄과 미술관이 멀기만 하다. 뮤지엄 전시회는 언제나 감상할 수 있고 공연은 그날 그 시간 아니면 볼 수 없잖아. 그래서 한 동안 뮤지엄에 방문하지 않았는데 실수를 하다니. 여행객도 아닌데 말이야. 메트 뮤지엄 앞에는 노란색 택시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꼭 나같이 허탕을 치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나 봐. 덕분에 센트럴파크 가을 정경도 바라보았어. 감기만 아니라면 센트럴파크가 나의 놀이터인데 공원에 뛰어갈 에너지도 없고 할 수 없이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플라자 호텔 근처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나의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주문하고 마음을 달랬어. 우연히 미술 평론가를 만났다. 지난번 콜럼버스 서클 근처에서 하늘 높이 올라가는 빌딩을 바라보며 왜 내가 살 집은 없는 거야 하면서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먹다 그분에게 들켰는데 여자분이랑 지나가다 날 보고 회피하는 눈치였다. 추수 감사절 휴일이라 멀리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 소란스러웠고 미술 평론가와 서로 눈으로 인사를 했다. 잠시 후 뉴욕에서 명성 높은 코미디언도 오셨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말았어.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은 가지 못하더라도 감기만 아니라면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달렸을 텐데 요즘 나의 몸은 감기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야. 왜 하필 추수감사절 날 메트에 가서 허탕을 치고 만 거야. 맨해튼에 살면 그래도 더 나을 텐데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수 차례 트랜스퍼하고 날씨도 추운데 보고 싶은 전시회도 보지 못해 섭섭하게 지나갔어. 삶이 항상 뜻대로 되겠어.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고 그러지. 뭐 가다 보면 종착역 묘지에 도착할 텐데 매일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야지. 묘지에 들어갈 때는 사랑과 추억 말고 가지고 갈 것도 없다더라. 홀가분하게 기쁜 마음으로 살자. 가을이 저만치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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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246.jpg?type=w966 플러싱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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