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토요일
11월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전시회를 보려고 첼시에 갔다.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세월은 왜 그리 빨리 흐를까. 복잡한 일도 가슴 아픈 일도 많고도 많았지만 매일 공연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지하철을 타면 매일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맨해튼이지만 내가 찾지 않으면 세상이 닫혀있어. 내가 첼시 갤러리에 가지 않으면 첼시 갤러리 전시회를 어찌 보겠니. 날마다 보물을 찾으러 발로 뛰어다닌다. 난 맨해튼에도 살지도 않아. 가난한 이민자 동네 플러싱에 살아. 만약 내가 유럽에 산다면 진즉 유럽 보물지도 만들었을 거야. 유럽은 기차 타고 달리면 이웃 나라에 가잖아.
김춘수 시인의 시 <꽃>도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1월 말이라 도로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과도 인사를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고 추운 날 반바지를 입고 조깅하러 가는 남자도 보았어. 마지막 가을 풍경을 본 셈이겠다.
첼시 David Zwirner 갤러리, Yayoi Kusama/ 537 West 20th Street
일본 출신 화가 쿠사마 야요이 전시회를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놓치고 말아서 꼭 보려고 방문했는데 웬걸 전시회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려 놀랐다. 아, 정말 갤러리에 가서도 추운 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나. 방문객들이 아주 많아서 놀라고 결국 난 줄을 서지 않아서 그녀의 전시회 일부만 보고 나와버렸다. 감기 몸살로 상당히 힘든데 추운 날 밖에서 오래 기다리기 힘들어서 포기했어. 전시회 막이 내리기 전 다시 방문하고 싶은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12월도 크리스마스 방학 전까지 매일 공연이 열리니까. 음악가는 음악을 위해 살고 난 매일 음악을 먹고 산다. 뉴욕이 주는 즐거움 아닌가.
쿠사마 야요이(1929년 출생)가 정신질환을 앓아서 스스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니 놀랍고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뉴욕에도 건너와 미술 활동을 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정신 병원에 스튜디오를 만들어 창작 활동을 한다고 하니 특별한 작가다. 고흐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비싼 값에 팔려 유명해졌듯이 그녀 작품도 크리스티 매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니 명성 높아졌다.
그녀의 위대함은 정신질환을 앓음에도 불구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것. 작은 일에도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아무리 아파도 창작활동을 하니 얼마나 위대한가. 지금이야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무명 화가였지. 아무리 명성 높은 화가도 무명에서 시작하잖아. 해리 포터 작가 J. K. Rowling (J. K. 롤링)도 얼마나 고생 많았어. 싱글맘 되어 어린아이 우유 먹일 돈도 없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카페에서 글쓰기를 했다지. 누가 알았겠어. 그녀가 세상에서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고. 그녀가 매일 글쓰기를 한 카페는 지금은 여행객이 찾는 명소로 변했다니 재밌는 세상 아닌가.
작년 퀸즈 라커웨이 비치에서 그녀 전시회가 열려서 꼭 방문하려 했는데 게으름을 피우다 놓치고 말았어. 라커웨이 비치가 집에서 아주 가깝지 않은 것도 이유에 속하지. 하나의 전시회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
2013년 모마 PS1에서 마이크 켈리(Mike Kelley) 회고전을 처음으로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그 후 가끔 마이크 전시회를 보곤 했지만 첼시 하우저 & 워스 갤러리(Hauser & Wirth)에서 열린 전시회 느낌은 전과 달랐다. 불과 몇 번 보고 작가 작품 스타일을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처음으로 하우저 &워스 바에 들어가 보았는데 바 인테리어가 아주 특별했다. 뉴요커들이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난 눈으로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리고 11월 말이 전시회 마지막 날 작가의 작품도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희망(Hope Gangloff). 전에 그녀 전시회를 보았으니 두 번째 그녀 작품을 보았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림이라 느낌이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이름이 왜 희망일까. 희망이 얼마나 소중해. 희망 없이 하루도 살 수 없어. 희망과 꿈과 정열이 없다면 내 삶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거센 폭풍우가 쉬지 않고 치는 폭풍 같은 삶. 희망과 꿈으로 하루하루 행복을 찾고 지내지. 평생.
내 아이폰 배터리 수명이 다해가고 배터리가 거의 없어서 사진도 거의 찍지 않고 눈으로 보았다. 매일 눈만 뜨면 지출할 곳이 날 기다려 큰일이야. 새로 배터리 교환해야 하나 봐. 이번 아이폰 배터리 수명이 무척 짧은 거 같다.
분명 많이 아프다. 일기 쓰기조차 상당히 힘들구나. 겨우 11월 마지막 날 일기를 완성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1월 한 달 동안 27일 하루 빼고 일기를 썼다. 그날은 장 보고 세탁하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어. 맛있는 고구마도 구입하고 세일 중인 단감 박스도 구입해 기분이 좋았지. 단감 1박스에 평소 27불+ 세금인데 그날은 7불+세금이라 기분이 좋았어. 교직에 종사할 때 월급 받으면 꼭 단감 몇 박스 사서 먹곤 했는데 어쩌다 삶이 이리 복잡하게 꼬여버렸을까. 산타 할아버지가 답변 보내주면 좋겠다. 하얀 눈 펑펑 오는 날 소원을 빌어야지. 하하, 아직도 난 어린아이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