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주인은 따로 있다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공부하는 컬럼비아 출신 유학생과 함께

by 김지수

12월 4일 수요일 록펠러 센터(라커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행사가 열렸다. 매년 겨울 할러데이 시즌이 되면 가장 기다리는 축제 가운데 하나가 아닐지. 유명한 가수들도 노래를 부르고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행사가 인기가 많아서 미리 도착해 기다려야 하는데 수년 전 시도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평생에 한 번 행사를 보려는 여행객들이 얼마나 많아. 예쁜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은 1월 17일까지 빛난다고. 예년에 비해 점등식 행사가 늦게 시작하고 트리도 늦게까지 불을 비춘다.


새해 이브 타임 스퀘어에서 열리는 행사와 더불어 인기 많은 록펠러 센터 점등식 행사는 뉴욕에서 오래오래 사는데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추운 겨울날 군중과 힘겨루기 해야 하는데 얼마나 힘든지 몰라.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한 장 찍기도 너무너무 힘들어. 얼마나 힘든지 찍어보면 안다. 뭐든 경험해야 무슨 말인지 알아.


뭐든 주인은 따로 있다. 특별한 공연 티켓을 미리 구해서 컬럼비아 대학 교수님에게 공연 볼 거냐 물었는데 아주 바쁜 눈치. 늘 학문 연구와 논문과 수업 준비로 바쁘니 학자란 직업이 평생 수험생보다 더 바쁘게 지내니 특별한 길 같아 보인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 마치는 것도 신이 되는 길. 박사 받고 학문의 길에 들어서면 새로운 시작이니 인생이 끝이 없다. 그분이 시간이 안 되는 눈치라서 아들에게 물으니 역시 추운 날 공연 보러 맨해튼에 갈 눈치가 아니고 그래서 쉐릴 할머니에게 물으니 역시 안 본단다. 참 어렵게 구한 티켓인데 관심이 없다고 하니 나 혼자 카우프만 뮤직 센터에 갔다. 특별한 티켓 주인은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성악 전공하는 청년이었다.


수요일 저녁 8시 공연. 박스 오피스에 티켓을 찾으러 갔는데 새치기도 안 했는데 내게 새치기했다고 불평하는 중년 여자를 만나 기분이 다운되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뒤로 갔다. 나로서는 참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낯선 청년이 내 뒤에서 티켓을 사러 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내가 티켓을 준다고 했다. 그가 얼마냐고 물어서 공짜라고 하니 감사하다고 말하니 기분이 좋았어. 원래 공연 티켓은 꽤 비쌌다. 그래서 나랑 함께 공연을 본 청년. 뉴욕에 사냐고 물으니 물가 비싼 뉴욕에 어떻게 살아요?라고 하니 웃었다. 뉴욕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이니. 그럼 어디서 살아요?라고 물으니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성악 공부한다고. 그래서 특별 공연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남아메리카 콜럼비아에서 유학 온 학생이었다.


미국에 온 지 3년이 지났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고 말해서 놀랐다. 처음 만난 내게 묻지도 않은 말을 하니 솔직함에 놀랐어. 콜럼비아 하면 커피밖에 모른다고 하니 그가 웃으며 건강에 안 좋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내게 콜럼비아 커피 좋아하냐고 물어서 자주 마신다고 했지.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가 누군지 묻자 페루 출신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를 좋아한다고. 나도 카네기 홀에서 본 그의 공연이 최고로 좋았다고 말했다. 목소리에서 장미꽃이 나온 줄 알았어. 감동적인 무대였다. 낯선 청년과 이야기하며 즐겁기만 하는데 그가 내게 악기 배운 적 있느냐고 물어서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등을 취미로 배웠다고 하니 웃었다. 취미가 비슷하면 처음 만나도 즐겁다. 가난한 유학생인데 비싼 티켓을 사러 왔는데 내게 무료 티켓 받아서 고맙다고 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공연이라서 더욱더 좋았다.


신시내티 하면 전 메트 오페라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생각난다고 했다. 신시내티 음악가 집안 출신인데 어릴 적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하니 아버지가 선물로 무얼 받고 싶은가 물으니 뉴욕에 가서 매일 오페라 공연 보고 싶다고. 어린데 인형이나 장난감 선물을 원하지 않고 뉴욕에 와서 매일 메트에 가서 오페라 감상하다 훗날 메트 오페라 지휘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워.





수요일 밤 공연은 정말 특별했다. 카네기 홀에서 들은 조이스 디도나토 공연보다 훨씬 더 좋았다. 메트, 파리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 극장 등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나딘 시에라 목소리 들으며 황홀했다. 붉은색 드레스도 얼마나 섹시하던지. 아름다운 몸매에 예쁘고 섹시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으니 가슴이 철렁거린 사람들 많았겠다. 미국의 스타 테너 마이클 파비아노 목소리도 훌륭했어. 공연이 안 좋으면 일찍 집에 돌아가려다 끝까지 다 보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훌륭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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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카우프만 뮤직 센터 소프라노 나딘 시에라(사진 외쪽), 테너 마이클 파비아노(사진 오른쪽)



Piano Performance Forum

Wednesday, Dec 04, 2019, 4:00 PM


Sonatenabend

Wednesday, Dec 04, 2019, 6:00 PM

Paul Hall


줄리아드 학교에서 오후 4시와 6시에도 공연이 열렸다. 6시 공연은 인기 많아서 미리 티켓을 받아야 했고 음악팬들이 찾아와 함께 공연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소리가 좋았다. 요즘 베토벤 음악이 더 좋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가 감동적이었다.



쉐릴 할머니랑 함께 공연을 보고 저녁 8시 공연을 보러 가기 전 학교 카페에 가서 휴식을 했다. 카우프만 뮤직 센터 공연 볼 거냐 물으니 안 본다고. 할머니는 줄리아드 학교에서 할러데이 금관악기 공연 본다고. 할머니 노트에는 매일 공연 스케줄로 꽉 채워져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새해 이브에는 콜럼비아 대학 옆에 있는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에 간다고. 그래서 할머니는 줄리아드 학교에 남고 난 떠나고 만약 공연이 안 좋으면 줄리아드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너무너무 좋았어.


오후 4시 피아노 공연은 평생 잊기 어려울 거야. 아름다운 쇼팽 멜로디 듣고 슈만의 환상 소나타 듣고 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했는데 계속 종소리가 들려왔다. 자꾸 종소리가 울리니 얼마나 이상해. 알고 보니 화재 대비 훈련이었다.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방학 전 매일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수요일 오후 1시에도 링컨 센터에서 보컬 공연이 열렸다. 늦게 맨해튼에 가니 난 볼 수 없어서 아쉽다. 하늘의 별처럼 쏟아지는 공연들. 뉴욕이 특별한 이유다.


IMG_1743.jpg?type=w966 메트(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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