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일요일
매년 12월 할러데이 시즌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을 보러 아들과 함께 갔다. 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공연에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노인 두 분이 우리 자리에 앉고 계셔 자리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난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는데 왜 하필 우리 좌석에 앉으셨는지 몰라. 무대도 잘 안 보이고 좌석이 좁고 불편하지만 비싼 티켓 사서 공연을 볼 형편이 아니니 만족해야지.
2시가 약간 지나 빈 소년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1부 공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2부는 좀 더 좋았다. 명성 높은 합창단 공연인데도 곡 선정이 잘못되거나 너무 어려우면 준비하기 어렵단 생각이 든다. Leonard Bernstein (레너드 번스타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Somewhere>와 George Gershwin (조지 거슈윈) <I Got Rhythm> 곡이 무척 예쁜데 어린 소년들이 부르기 어렵나 봐.
이 공연을 보면서 우리가 평소 결정하는 순간에도 너무 어려운 것을 도전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이 예쁘다고 그냥 좋은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옷이 예뻐도 내가 소화를 시켜야 예쁜 것처럼. 남에게 예쁘다고 내게도 예쁜 것은 아니니까.
고등학교 시절 빈 소년 합창단과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 공연을 좋아했다. 친구랑 함께 들었는데 세월은 가고 친구랑 연락은 끊어지고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왜 세월은 달려가나 몰라.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어. 친구는 무얼 하고 지낼까. 고등학교 시절 좋아한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을 카네기 홀에서 보니 꿈만 같기도 하지. 거의 매일 맨해튼에서 공연을 보다 보니 내 귀는 점점 더 예민해져 가고 갈수록 기대치가 높아가는지도 몰라. 명성 높은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을 감사함으로 봐야 하는데. 2020년 1월 서울에서도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이 열리나 뉴욕에 비해 티켓이 하늘처럼 비싸더라. 그래서 뉴욕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원 시절 뉴욕에 와서 학교에서 특별 할인 티켓을 구입해 봤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뮤지컬 정말 멋지다. 20불 주고 구입해 학교 버스로 맨해튼에 가서 뮤지컬 보고 한 밤중 집에 돌아오니 무척 피곤했는데 얼마나 감명 깊었던지 몰라. 워낙 명성 높은 뮤지컬이라 DVD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영화를 봤는데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뮤지컬 티켓을 20불에 판다고 하니 상당히 매력적인 가격이라 뮤지컬을 보러 갔다. 뮤지컬과 오페라 공연은 극장에서 본 것과 라이브 무대와 아주 큰 차이가 있고 난 라이브 무대를 좋아한다.
빈 소년 합창단 2부 공연은 잘 아는 <고요한 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 등을 불렀고 할러데이 시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와 달리 카네기 홀에서 검은색 제복을 입은 수녀님들을 보았다. 빈 소년 합창단 특별 공연을 보러 단체로 오셨어. 공연 시작하기 전 자리 소동도 있었지만 더 불편한 것은 내 옆에 앉은 여자분이었다. Fernando Botero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보다 더 큰 몸집이라 내 자리가 더 비좁아져 몹시 불편했다. 저렴한 발코니 석은 안 그래도 좁은데 옆 사람 몸집이 아주 거대하니 당연 내게 피해가 온다. 더 불편한 것은 그분의 몸에서 나는 냄새. 아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가 생각난다고.
아들과 함께 맨해튼에 나들이 가서 빈 소년 합창단 공연만 보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는데 시내버스를 기다려야 해서 근처 중국인 마트에 가서 단감과 아보카도를 샀다. 아주 작고 못생긴 단감 3개 1불, 크고 예쁘게 생긴 단감 1개 1.25불. 고민하다 작은 단감 2불어치와 큰 단감 1개를 구입했는데 먹어보니 작고 못생긴 단감 맛이 더 좋았다. 겉으로 보인 게 전부가 아냐. 화려한 겉보다는 안이 훨씬 더 중요함을 늦게 깨닫고 있다.
겨울이라 추운데 왜 아파트 슈퍼는 평소보다 난방을 잘 안 해 줄까. 기온이 평소보다 뚝 떨어져 춥다. 두터운 이불 두 개를 덮고 잘 정도로. 추운 겨울 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를 보면 가슴 아프다. 집도 이리 추운데 얼마나 추울까. 추운 겨울 마음은 따뜻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