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월요일
월요일 겨울비가 내렸어. 겨울나무도 비를 맞고 작은 새도 비를 맞고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어. 창가에 흐르는 빗방울 소리도 들었지. 비가 내리면 마음이 차분해지니 좋고 슬픔이 뚝뚝 떨어져 버릴 거 같아서 좋아. 월요일 아침 주말 이틀 연속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느라 피곤해 밀린 일기를 서둘러 쓰고 식사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나의 1차 목적지는 링컨 스퀘어 부근 애플 스토어.
방문 목적은 배터리 교환. 미리 애플 Genius Bar에 예약하고 방문해 직원을 만나 예약을 확인하고 다시 기다렸다. 빨간색 상의를 입은 여자 직원이 약속 시간에 친절히 나타나 나의 방문 목적과 애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인했다. 새로운 배터리로 교환하고 싶다고 하니 직원이 내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난 배터리 교환이야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원이 내 휴대폰 모델 배터리가 매장에 없어서 주문을 해야 하는데 최소 5일 정도 걸리는데 내 휴대폰을 보니 아직 사용해도 괜찮겠다고. 난 자주 휴대폰을 충전해야 하니 몹시 불편하다고 하니 혹시 업데이트 안 해서 그런지 모른다고 하면서 새로운 배터리 가격이 50불이니 꼭 구입해야 할지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업데이트하고 안 되면 그때 배터리 사자고 마음먹고 매장을 떠났다. 겨울비 내리는 날이면 맨해튼 빌딩에 들어서면 우산을 넣을 비닐을 앞에 두는데 돈 많은 애플 매장 우산 넣는 비닐은 화려하고 예쁜 스타일이 아니다. 접은 우산을 넣으면 되는 실용성에 맞는 비닐. 돈 많은 회사인데 필요 없는 곳에는 한 푼도 쓰지 않는 것을 느낀다.
애플 스토어에서 배터리 일을 처리하면서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저 하늘로 떠나기 전 서울 연세대 대학 병원에서 한국 최고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았지만 퇴원 후 얼마 가지 않아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멀리 지낸 내 입장에서는 수술하기보다는 안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족에게 내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당장 수술만 하면 건강이 회복될 거라 기대를 했지만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린 기대였지. 차라리 마지막 순간에 맛있는 음식 드시고 편하게 지내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니 수술을 받았다. 만약 병원에서 수술 후 결과가 별 차도가 없을지 모른다고 미리 말을 했더라면 어쩌면 수술을 받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술받으며 고생하고 필요 없는 수술 비용만 들고 그 외도 번거로운 일이 많았지. 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겨울비 내리는 모습이 참 예쁜데 우산을 들고 걷게 되는 입장이면 마음의 빛이 다르다. 애플 스토어에서 나와 가방 메고 우산을 드니 약간 불편한데 처음으로 애플 매장 앞 거리에서 작은 사이즈 커피 한 잔을 구입했다. 가격은 1.25불. 상당히 저렴하니 매력적인데 우산 들고 커피도 들어야 하고 더구나 커피는 아주 뜨거운데 스타벅스 매장 커피와 달리 홀더가 없어서 더 뜨거웠다. 아차 실수를 했나. 비 안 오는 날이면 더 좋았을 텐데.
나의 2차 목적지는 줄리아드 학교.
오후 4시 공연인데 공연 시작까지 약간 여유가 남아 빌딩 나무 계단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 맛은 괜찮았다. 비싼 커피야 취향대로 마시지만 가격 대비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내 옆에 앉은 두 명의 줄리아드 학생들은 맞은편 링컨 필름 센터에 가서 두 잔의 커피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줄리아드 학교 카페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사 먹을 수 있지만 레귤러 작은 사이즈 커피가 2불 정도. 그래도 일반 스타벅스 매장보다는 약간 더 저렴하다. 맥도널드 커피를 제외하고 맨해튼 거리에서 사 먹는 커피가 가장 저렴한 편이다. 스타벅스 커피를 안 좋아하는 뉴요커들이 많다. 링컨 센터에서 파는 커피는 뉴요커가 좋아하고 가격이 줄리어드 카페 커피보다 더 비싸다. 고급 커피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만 취향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두 자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는 스타벅스 매장에 가서 커피 한잔 사 먹을 수도 없었다. 1불이 아니라 1센트도 아끼며 살았다. 꼭 써야 할 돈 아닌 돈을 구분하고 살았는데 그래도 생각하지 못한 돈이 억수로 지출되었다.
커피를 마시고 수위에게 가방 검사를 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모세 홀로 내려갔다. 정말로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로버트 화이트 교수님 제자들 발표회였는데 겨울비 오는 날이라 방문객도 많지 않아 조용하고 더 좋았다. 토요일 예비학교 수업이 있는 날은 상당히 복잡하고 소란스럽기도 하는데. 슈만 곡을 부른 바리톤도 정말 좋았고, 귀에 익은 비제의 카르멘 하바네라 아리아도 좋았고 레디 가가의 노래도 좋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붉은색 넥타이를 맨 지도교수님 얼굴도 장밋빛으로 변했다. 비가 오면 외출하기 약간 망설이지만 멋진 선택이었다. 월요일 나의 오후는 불타오르는 석양처럼 황홀했어.
Robert White's Recitalist Practicum Class Concert
Monday, Dec 09, 2019, 4:00 PM
Morse Hall
나의 3차 목적지는 맨해튼 음대.
저녁 6시 반 맨해튼 음대에서 재즈축제가 7시 반에 컨템퍼러리 음악 공연이 열렸는데 얼마나 좋던지. 크리스마스 방학 전이라 많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색소폰 소리, 트럼펫 소리, 드럼 소리, 더블 베이스 소리와 재즈 피아노 연주에 행복했던 저녁 시간.
맨해튼 음대 컨템퍼러리 챔버 공연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알고도 방문하지 않고 월요일 처음으로 감상했는데 Tactus 공연은 정말 훌륭했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음악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 줄리아드 학교에서는 가끔 컨템퍼러리 음악 공연을 감상했지만 맨해튼 음대에서는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낯선데 가끔씩 듣게 되니 나의 귀와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듯 하나 보다. 이렇게 조금씩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내가 문을 두드려야 새로운 세상이 열려.
Jazz ComboFest
Performance
Monday, December 9, 2019
6:30 PM - 10:00 PM
Ades Performance Space
Tactus: Contemporary Chamber Music
Performance
Monday, December 9, 2019
7:30 PM - 9:30 PM
Greenfield Hall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헌터 컬리지에서 헨델의 메시아 공연이 열렸고 미드타운에서 특별한 무료 이벤트가 열렸는데 몸이 하나라 방문하지 못했다. 비 오는 날이라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기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겨울비 맞고 여기저기 움직이며 공연 봤는데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공연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훌륭했다. 음악 전공한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난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휴대폰 업데이트를 했는데 배터리 상태가 좋아 기분이 좋았어. 애플 스토어 직원 말이 맞았다. 괜히 새로운 배터리를 살 뻔했다. 직원이 새로운 배터리로 교환해도 20% 차이가 나니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맨해튼에 가서 1.25불 커피 한 잔 마시고 천재들 공연을 감상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장르도 다양해. 오페라, 뮤지컬, 재즈, 컨템퍼러리 음악 모두 들었어. 그래서 맨해튼이 마법의 성이야. 돈 없이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뉴욕 문화는 매력적이다. 할러데이 시즌이라 맨해튼 거리는 황금빛 은빛으로 반짝반짝거린다. 모두 모두 마음 따뜻한 연말 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