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수요일 크리스마스 데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데이라면 훨씬 더 좋았을까. 하얀 눈 펑펑 내리는 맨해튼 거리를 거닐었으면 신이 났을 텐데 하얀 눈이 내리지 않았어. 크리스마스 데이 떡만둣국을 끓여 먹고 아우슈비츠 같은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하고 두 자녀랑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영화처럼 멋진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역에 내리니 중국인 거리 음악가가 징글벨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니 웃었어.
멋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영화처럼 예쁜 그랜드 센트럴 역을 빠져나와 성 패트릭 성당에 가려고 무지무지 복잡한 5번가를 걷다 너무 피곤해 메디슨 애비뉴로 방향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사람에 치일뻔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아찔한 순간이었지.
오르간 소리 울려 퍼지는 성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지난번 딸과 방문했을 때 사라진 아기 예수님이 돌아와 웃었다.
저녁 무렵 맨해튼에서 Little Women (작은 아씨들) 영화를 보려고 예약하려는데 이미 매진이라고 나오니 포기하고 미드타운에서 할랄을 구입해 먹고 스타벅스 카페에 들려 커피 주문해 손에 들고 맨해튼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틈에 끼여 숨쉬기도 곤란할 정도.
할러데이 장식이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예쁜 5번가와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타임 스퀘어는 피하고 브라이언트 파크에 갔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진 공원에 할러데이 마켓이 열리고, 하얀 빙상에서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는 사람들과 브라이언트 파크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초록빛 붉은빛으로 빛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색도 보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어제 그제 맨해튼 루이뷔통 매장에서는 80만 불 이상어치 물건이 팔렸다고 하는데 직원에게는 0.01%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고. 아들 친구 엄마가 루이뷔통 매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들은 소식인데 할러데이 시즌 정말 많은 돈을 버니 놀랐어. 역시 맨해튼이야. 추운 겨울날 맨해튼 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들도 많은데.
맨해튼에서 천 개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았나. 빌딩마다 예쁜 크리스마스트리가 빛나고 있었다. 미드타운 UBS 빌딩에서는 오랜만에 장난감 병정 인형을 만나 인사를 나눴어. 매년 할러데이 시즌 아주 커다란 장난감 병정들이 빌딩을 지키고 있다. UBS 빌딩에 가져갈 게 많은가. 병정들이 지키고 있는 거 보면 빌딩 안에 보물이 많은가 봐. 내 마음은 어떻게 지킬까. 이 험한 세상에서 마음 무너지는 슬픔 가득한데도 맨해튼에서 하루하루 보물찾기 놀이를 하면서 행복을 찾는 돈키호테 뉴요커가 바로 나 자신. 삶이 지구보다 더 무거워도 참고 견디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숨 쉬고 있다. 뉴욕에서 삶은 서커스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 같다. 모두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