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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맨해튼에서 딸과 데이트

by 김지수

12월 30일 월요일


IMG_2999.jpg?type=w966 맨해튼 5번가 할러데이 장식이 참 예쁘다.



겨울비 내리던 날 대학 시절 사랑하던 조동진의 노래 <겨울비>가 떠올랐다. 노래를 들으면 마음은 그 시절로 돌아가 꿈 많은 대학 시절도 생각난다. 그때도 참 바쁘기만 했다. 동아리반 활동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친구들 만나니 늘 시간에 쫓겨 살았다. 매주 2회 레슨 받으러 가고 매일 아르바이트하고 매일 학교에 가서 수업 들으니 말할 것도 없이 바쁘기만 했다. 봄과 가을 정기 연주회가 열리면 몇 달은 자정 무렵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물론 매주 제출해야 하는 전공과목 숙제에 힘겹기도 했지. 알 수 없는 삶처럼 교수님이 학생에게 내준 숙제는 얼마나 어려웠는지. 바쁜 가운데 가끔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노래도 듣곤 했고 가끔씩 조동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인이 되지 않았다면 한 번 만나고 싶은 조동진 가수. 하늘나라에서 무얼 하고 지낼까. 대학 동창들도 무얼 하고 지내는지 안부가 그리운데 그만 소식이 끊어진 채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언젠가 만나 가슴속에 품은 이야기보따리를 풀 날이 올까. 대학 졸업 후 뿔뿔이 흩어져 다른 길을 걷는 우리들. 대학 시절은 우리네 삶이 얼마나 달라질지 아무도 몰랐어.



서부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뉴욕에 온 딸과 추운 겨울날 겨울비 내림에도 불구하고 맨해튼에 갔다.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역에 내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고 역 밖으로 나와 도로를 걷는데 비 오는 날이라 얼마나 미끄럽던지. 미드타운 호텔 앞에는 트렁크를 들고 공항 가는 셔틀을 기다리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보고 지나쳤다. 조심조심 걸으며 우리의 목적지 성 패트릭 성당에 도착해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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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5번가 성 패트릭 성당



겨울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소호와 그리니치 빌리지에 가려고 했는데 날씨는 춥고 겨울비 내려 성당에서 가까운 플라자 호텔 푸드 홀에 들어가 향긋한 커피와 맛있는 빵을 먹으며 딸과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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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호텔 푸드 홀 겨울비 오는 날에도 복잡해 빈 자리 구하기 어려웠다.



이제 며칠 지나면 서부로 떠나야 하는 딸과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몰라. 보스턴이라면 그래도 괜찮은데 서부 캘리포니아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복잡한 형편에 그림의 떡이 된다. 형편이 된다면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에도 방문할 텐데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맛집 많은 플라자 호텔 푸드 홀에서 빈자리 구하기는 무척 어렵고 몇 바퀴 돌고 돌다 어렵게 빈자리를 구해 앉았다. 멀리서 혼자 지내는 딸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를 하니 너무 바쁘기만 하고 복잡한 일도 끝도 없이 많고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더욱 답답하고 이야기만 들어준다. 플라자 호텔에서 나오면 센트럴파크인데도 추운 겨울날이고 해는 일찍 져서 공원에 가지 않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비 오는 날 지하철 운행은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지하철에 탑승하는 시각 익스프레스 지하철은 운행하지 않는다고 방송이 울려 퍼지고 지하철은 지옥철이고 어렵게 지하철 안에 들어가 빈자리를 발견했지만 백인 할머니 가방을 치우면 앉아도 되겠는데 치워 달라고 하니 거절을 하며 인상을 쓰는 인상파 할머니를 만나 섭섭했다. 또 그랜드 센트럴 역과 플러싱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으니 월요일 천 개의 계단을 올라갔나. 하늘이 요즘 내가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아버렸지.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 기부금 내라고 요청하는 메일이 매일매일 쏟아진다. 더도 말고 뉴욕에서 기부금 낼 정도 형편만 되면 좋겠어. 링컨 센터와 카네기 홀에 기부금 낼 형편이라면 얼마나 좋아. 맨해튼에 외출하면 빌딩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어서 천 개의 크리스마스트리 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맨해튼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켰다.


벌써 내일이 새해 이브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만난 점성술사가 내게 당신의 운명이 바뀌고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내 운명의 시곗바늘은 얼마큼 가고 있을까. 끝없는 어둠과 슬픔 속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잃어버린 꿈을 찾고 지내고 있다. 꿈과 운명의 날개를 타고 날아온 뉴욕. 새해 내 운명의 문은 어디서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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