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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서부로 떠나는 딸 배웅

by 김지수

2020년, 1월 3일 금요일 겨울비


새벽 시간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오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가끔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갈 때 누가 새벽에 맨해튼에서 플러싱에 온 거야 했는데. 딸도 배웅하고 처음으로 맨해튼 플라워 마켓에 방문했다.


해프닝이 무척 많은 금요일 새벽 아침. 평생 잊기 어렵겠다. 지난 18일 새벽 1시에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딸은 3일 뉴저지 뉴왁공항(Newark Libert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아침 일찍 서부 캘리포니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플러싱에서 뉴저지 공항까지 교통이 편리하지 않고 평소 자주 이용하지 않는 공항이라 뭐가 가장 좋은 방법인지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


공항에는 탑승 시간 2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고,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도 교통 시간이 꽤 들고, 택시를 알아보니 플러싱에서 뉴저지 공항까지 130-160불 정도. 택시값이 너무 비싸니 미국은 차 없이 생활하기 힘든 곳이 참 많다.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 맨해튼 펜스테이션 역에 가서 뉴저지 공항에 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에어 트레인을 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새벽 3시가 막 지난 시각 하필 겨울비가 내려 우산을 썼다. 새벽 시간 우리 집 근처 시내버스는 운행하지 않아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우산을 쓰고 기차역까지 걸었다. 새벽 시간 맨해튼에 가는 기차는 자주 운행하지 않은데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기차역에 도착해 기다리는데 맨 뒤편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탑승하는데 우리가 기다리는 기차 칸 문은 열어주지 않아 놀라 당황했고 순간 비행기처럼 빠른 속도로 뒤로 달려가 겨우 탑승했다. 아찔한 순간이었어.


만약 그 시각 기차를 놓쳤다면 맨해튼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너무너무 비싼 택시비! 대중 교통비도 비싸.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30일 무제한 교통 카드가 127불. 31일이 아니다. 항상 30일 정액제! 1회 교통 카드 사용비용이 2.75불. 뉴욕 물가 비싸다. 그런데 기차는 더 편리하고 좋지만 더 비싸다. 플러싱에서 맨해튼 펜스테이션 역까지 7.75불.


창밖은 어둠 속인데 새벽 오랜만에 딸과 기차를 타고 맨해튼에 가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새벽이라 승객은 많지 않았다. 맨해튼 펜 스테이션에 도착했는데 평소 이용하지 않은 뉴저지 기차역이라 어디서 표를 사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도 몰라 헤맸다.


문제는 시간! 자주 이용하지 않으니 기차 간격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겨우 티켓 자동판매기를 발견해 티켓을 구입했는데(약 20불/ 비싸) 어디서 기차를 타야 할지 모르니 답답. 어렵게 기차 타는 곳에 도착하니 딸이 타려고 하는 기차는 이미 출발한 뒤. 다행스럽게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새벽시간이라 식사도 못하고 나오고 뉴저지 공항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소동을 부리고 딸이 배가 고프다고 하니 어제 플라자 호텔 푸드 홀에서 산 스콘 한 개를 주었다. 만약을 몰라 가방에 담아가지고 갔다.


뉴저지 기차역을 찾다 아주 멋진 펜스테이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니 영화 같은데 기차역 계단과 구석 모퉁이에 누워서 잠든 홈리스들이 무척 많아 무섭기도 하고 슬펐다. 스타벅스 카페라도 문을 열었으면 잠시 쉬면 좋을 텐데 문 연 곳이 없어서 기차역 밖으로 나왔다. 뉴욕 지하철이 24시간 운행한다고 하지만 새벽 시간 노선이 자주 변경되고 그때그때마다 찾아야 하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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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145.jpg?type=w966 맨해튼 Flower District


기차역 밖으로 나와 우산을 쓰고 비 오는 거리를 걷다 FIT Museum 근처 7번가 28 스트리트 Flower District에 찾아갔다. 맨해튼 꽃 도매 시장인데 언젠가 방문하려다 새벽 시간이라 자꾸 미뤘는데 딸 배웅하러 새벽에 맨해튼에 갔으니 마침 적당할 거 같았다. 비 오는 겨울 새벽 손님은 없고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젊은 남자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맨해튼 예쁜 화원처럼 멋진 분위기는 아니고 도매시장 느낌이 강하고 손님도 없는데 꽃도 구입하지 않을 거라 가격이 얼마냐 묻기도 어려워 그냥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쓰레기통에 약간 시든 꽃을 버리고 있어 내가 가져가도 되냐고 묻고 작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지하철을 탔다. 겨울비 내리지 않았다면 덜 불편할 텐데 우산을 써야 하니 꽃다발이 무척 불편한 상태.


타임 스퀘어 역에서 7호선에 환승. 그런데 잠시 후 악취 나는 홈리스가 탑승하니 꽃향기를 맡으며 버텼다. 아, 슬픈 뉴욕! 추운 겨울 거리에서 방황하는 홈리스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플러싱에 도착하니 시내버스가 바로 오지 않아 우산을 쓰고 오래오래 기다렸다. 딸도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 마치고 서부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고 마침 나도 집에 도착한 시각이었다. 저렴한 항공편을 이용하기 위해 유타 주 Salt Lake City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환승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곳에 뉴욕에 돌아가는 비행기 편이 있으니 뉴욕에 오고 싶다는 메시지를 딸이 보냈다. 뉴욕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미국 생활이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좋은 직장 구하기는 얼마나 어렵고 집 구하기 역시 얼마나 어려워. 딸이 동부 보스턴 캠브리지 연구소에서 작년 여름 서부 캘리포니아로 옮겼는데 지난 12월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하니 대소동이 벌어졌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는 렌트비가 뉴욕보다 훨씬 더 비싸고 구하기 너무너무 어렵고 폭포 같은 눈물이 흐른 곳이다. 미국 최고 부자들이 모여 사는 실리콘 밸리. 거기에도 홈리스들이 많다고 하니 어디나 마찬가지나 봐.


지난겨울 링컨 센터에서 <나 홀로 집에 2> 무료 영화를 보다 마지막까지 영화를 보지 못하고 극장을 나온 것이 딸 이사 문제였다. 갑자기 새로운 방을 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연락이 왔다. 미리 보스턴과 뉴욕 일정이 정해졌는데 시간은 없고 렌트비는 비싸고. 몇 주 동안 대소동을 벌이며 어렵게 작은 방을 구했다. 오늘 서부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남은 짐을 옮길 예정이라고. 혼자서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차마 글로 적을 수도 없다. 이민자 삶이 다 그렇다. 딸이 뉴욕에 오기 전 날도 일부 짐을 옮기고 비행기를 타고 왔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다른 복잡한 일도 모두 처리하면서 딸이 홀로 이사를 했다. 엄마가 도움이 안 되니 너무나 힘들게 지내는 딸.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렵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버티는 우리 가족. 미국에 아무도 없으니 고아 같아.


참 복잡하고 복잡한 가운데 딸이 뉴욕에 와서 보스턴 여행도 함께 다녀오고 뉴욕에서 영화도 두 편이나 보고 맨해튼 5번가 성당에 가서 자주 기도를 드리고, 메트 뮤지엄과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과 휘트니 미술관에도 가고, 너무 추웠지만 브루클린 코니 아일랜드와 소호에 다녀오고, 5번가를 자주 거닐며 할러데이 쇼윈도 장식도 보고, 센트럴파크에서 산책도 하고, 플라자 호텔 푸드 홀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카네기 홀에서 수차례 공연도 보았다. 하필 보스턴 여행 시 너무 추워 눈사람으로 변할 거 같아서 고생도 많이 했으니 특별한 추억으로 남겠다.


딸을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1시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받고 깨어났다. 복잡하고 슬픈 내용이라 마음 무거운 통화 내용. 잠이 달아나 버렸다. 점심은 떡만둣국을 끓여 먹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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