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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아름다운 겨울 호수_뉴욕 지하철 대소동!

by 김지수


2020년 1월 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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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 겨울 호수 풍경



겨울 아침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을 하러 다녀왔다. 기러기떼와 거북이 떼와 청둥오리 떼와 백조 한 마리 사는 호수에 자주 산책하곤 하는데 춥다는 이유로 한동안 가지 않았는데 새해 다시 산책하자고 결심을 했다. 어제 보다 훨씬 더 쌀쌀한 겨울날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이민자들이 사는 플러싱 주택가에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져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어제는 안개비 내려서 그랬는지 호수에서 산책하는 사람이 우리 말고 단 한 명 만났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지난 몇 달 사이 호수에 동물 가족 숫자가 꽤 많이 늘어 이유가 뭔지도 궁금했다. 아들과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기러기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내게로 달려왔다. 아마도 먹이를 주라는 눈치였지만 내 손에 기러기 줄 먹이가 있어야지. 기러기 님 나도 생존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기러기랑 소통할 수도 없고 내 마음을 모르는 기러기를 보고 웃으며 피했다. 잠시 후 어린아이 동반한 엄마가 기러기떼에게 빵 조각을 던져주자 모든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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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219.jpg?type=w966 뉴욕 퀸즈 플러싱 겨울 호수



겨울 호수 풍경을 아이폰에 담으면서 오래전 두 자녀와 함께 방문했던 첼시 갤러리 작품을 떠올렸다. 아들이 무척 사랑한 작품인데 오늘 내가 담은 사진과 비슷해 놀랐다. 좀 더 예술적인 작품인 것은 사진 색채가 달랐다. 아마도 작가가 포토숍의 흔적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보면 마음도 넉넉해진다. 주택가 근처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서 주민들에게 많은 행복을 주는 듯. 평화로운 호수 풍경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니. 주민들은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도 하고 연인들은 의자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털모자와 목도리를 둘러맨 어린아이가 킥 보드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아들이 어릴 적 킥보드 타다 다친 기억이 나서 지난 과거를 잠시 돌아보기도 했지만 아주 신난 어린아이 표정을 보니 우리도 즐겁기도 했다. 행복 바이러스일까. 다른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 덩달아 나도 행복해지는 거 같아. 아들도 나도 슬픈 소식보다는 행복한 소식을 더 좋아한다.


호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에 산책할 때 자주 만난 거동이 몹시 불편한 중국인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돌보는 중년 여인을 만나 "행복한 새해 보내세요."라고 신년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건강한 할아버지 표정 보니 내 마음도 기뻤다. 한동안 산책을 가지 않았지만 가끔 할아버지 안부가 궁금했다. 할아버지를 돌보는 분은 아마도 따님인가 짐작을 한다. 아주 평범한 옷을 입은 서민들이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책하는 모습은 퍽이나 감동적이고 가슴 흐뭇한 풍경이다. 마치 밀레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고 할까. 환자를 돌보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데 옆에서 보기에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를 기억하는 그분들의 얼굴 표정도 우릴 만나면 반가운 눈치다. 젊을 적 무얼 하는 분이었는지 묻지도 않고 호수에 산책하러 갈 때 우연히 가끔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다. 하늘로 떠난 친정아버지의 마지막을 돌보지 못해 늘 가슴이 아프다. 머나먼 나라에 사는 서러움 아닌가. 마지막 몇 달 아버지를 돌봐드렸다면 가슴이 덜 아플 텐데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가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읽고 계실 거야.


맨해튼에 외출도 하지 않고 정말이지 조용한 일요일을 보냈다. 맨해튼에 가면 오르간 연주도 감상할 수 있고 뮤지엄 방문도 할 수 있고 북 카페에서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어제 난 전쟁터의 패잔병이 된 느낌이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난 줄 알았다. 맨해튼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회가 어제 마지막 날이라 플러싱에서 지하철을 타고 달려가는데 오후 5시가 되면 뮤지엄이 문을 닫는데 예상치 않게 지하철이 가다가 멈췄다. 주말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까지 운행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환승하면 되니 별 상관이 없어서 방송을 자세히 듣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다. 74 브로드웨이 지하철역에서 한 정거장인가 갔는데 기관사가 방송을 하고 지하철이 신호 작동 문제로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30분 정도를 그 자리에서 멈춰버려 속이 상했다. 뮤지엄 닫을 시간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순간 이동이라도 가능하면 좋으련만. 마음은 맨해튼에 난 7호선 지하철 안에 붙잡혔다.


눈치를 보고 안 되겠다 싶어 플러싱으로 가는 반대편 지하철에 탑승해 74 브로드웨이 지하철역에 내려 천 개의 계단을 내려가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에 환승했다. 물론 빈자리는 없고 너무너무 복잡하고 오후 5시는 점점 가까워오고. 마치 영화 같은 순간.


꼭 전시회를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열리니 보고 싶었는데 그만 잊어버렸다. 서부에서 온 딸과 보스턴 여행도 다녀오고 뉴욕에서 매일매일 시간을 보내다 잊어버렸어.


아, 그런데 달리던 지하철이 다시 멈춰버린 게 아닌가. 속이 답답한데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다시 그대로 멈춰버린 지하철 안에서 갇혔다. 얼마 후 지하철이 운행하기 시작 타임 스퀘어에 도착하니 난 지하철 밖으로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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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뮤지엄 특별전/ 항상 무료 전시회/ 가끔 특별전이 열린다.



보스턴에서 뉴욕에 오는 메가 버스가 도착하는 정류장이 있는 곳. 바로 FIT뮤지엄 특별전을 보려고 달려갔다. 오후 5시 문을 닫는데 오후 5시 5분 전! 세상에 내게 딱 5분 주어졌다. 5분 동안만 전시회를 관람했다. 파리 패션 특별전이었는데 좀 더 자세히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 가득했다. 일본 모자 디자이너가 공부하고 졸업했던 바로 그 학교. 우연히 그녀가 그 학교를 지나다 무슨 학교인지 궁금해 안으로 들어갔는데 직원이 당시 힐러리 클린턴 영부인이 쓸 모자를 스케치해보라고 하니 디자이너가 재주를 발휘해 멋진 스케치를 하니 바로 당신은 여기서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어드미션 과정 없이 뉴욕 FIT 패션 학교에서 공부를 마쳤다. 안나 수이에게 인턴십 받을 때 9.11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던가.


특별전을 보고 맨해튼 구겐하임 뮤지엄이나 브루클린 뮤지엄 등에 방문할 수도 있고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데 두 가지 마음이 갈등을 하다 그냥 일찍 집에 가자고 마음먹고 미드타운에서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다시 지하철 운행이 멈춰버려 당황했다. 자메이카로 달리는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기관사가 모두 내려 달라고 방송을 하니 다시 맨해튼 방향 지하철을 타고 모마 근처 역에 내렸다.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맨해튼에서 더 놀다 갈까 하다 이상하게 다시 퀸즈 방향 지하철을 기다렸다. 그러다 옆에 있던 낯선 분과 이야기를 했다. 프랑스 남부 지방 근처에 사는 부부가 뉴욕 여행을 오셔 숙박비 저렴한 퀸즈 자메이카에서 머문다고 하셨다. 뉴욕에서 10일 동안 머물 예정이라고.


잠시 후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밖에서 보니 빈자리가 보여 다행이다 싶었는데 지하철 안에 들어가니 홈리스가 누워서 잠을 잔 게 아닌가. 아, 당황스러운 순간! 그런데 다시 지하철이 멈춰버렸다. 숨이 멈춰버릴 거 같은 순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하철이 이상해 혹시 늦어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지하철 승객 가운데는 시카고에서 온 여행객도 있었고 뉴욕에서 지내다 시카고로 돌아갈 예정이라 라과디아 공항에 갈 예정이라는데 지하철이 멈춰 버려 난리를 피웠다.


뉴욕에 살면서 가끔 지하철로 고생을 하지만 어제처럼 대소동을 피운 것은 처음이다. 전쟁터 같은 피난민 행렬 속에 끼여 무료 셔틀버스 타고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 도착. 그 후로도 얼마나 복잡했는지 몰라. 밤늦게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어제 구글맵에는 롱아일랜드 기차를 타라고 나와 이상했다. 기차표가 저렴하면 기차를 이용해도 될 텐데 30일 무한 정액제 교통 카드 사용하고 기차 티켓은 너무 비싸니 평소 이용을 하지 않는다. 딸이 서부로 돌아간 날은 시간이 촉박하니 어쩔 수 없이 이용했다. 어쩌면 구글은 알고 있었나 봐. 평소 구글맵에 7호선 이용하라고 하지 기차 이용하라고 하지 않는데 이상하다 생각했다.


엄마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1주일 이상 맨해튼에 가고 싶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대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적도 지하철 소동이 일어나 지각을 했는데 교수님이 빵점 처리를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대학교 성적이 얼마나 중요해. 그런데 조금 지각했다고 0점 처리를 하면 어떡해. 당시 집에 있는 프린터 기기가 고장이 나서 학교 프린터기 사용하니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서 출발했지만 지하철이 느리게 느리게 14세기 속도로 달려 지각했는데. 정말 슬픈 일인데 교수님은 잊어버렸겠지. 아마도 그 교수님은 우리 집처럼 멀리 통학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닐까 짐작을 하는데 자세히는 모른다. 지하철이 정상 운행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질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려. 지난 금요일 딸 배웅하느라 상당히 힘든 하루였고 어제 토요일 지하철 소동으로 너무너무 피곤해 일요일은 조용히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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