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월요일
새해 첫 번째 월요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여권도 만들고 한국에 보낼 서류를 만들기 위해서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파크 애비뉴에 있는 뉴욕 한국총영사관에 찾아갔다. 맨해튼 렉싱턴 애비뉴 59 스트리트 지하철역에 내려 블루밍데일즈 백화점 쇼윈도를 늦게라도 볼까 했는데 검은색 천으로 가려져 볼 수 없었다. 할러데이 시즌 분명 멋진 장식을 했을 텐데 올해는 보지 못했다. 렉싱턴 애비뉴에서 파크 애비뉴 쪽으로 향해 걷다 예쁜 꽃집도 발견했지만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어려워 밖에서만 쳐다보았다. 마음은 달려가서 사진을 담고 싶은데 참았어.
태극기가 펄럭이는 뉴욕 한국총영사관 빌딩에 들어가 직원에게 영사관에 간다고 말을 했다. 이 빌딩은 엘리베이터를 직원이 통제를 하니 약간 불편하다. 하늘처럼 비싼 전기세를 아끼려는 속셈인지도 몰라. 직원이 타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올라가니 방문객들이 무진장 많았다. 방문하기 전 약간 망설였다. 월요일 아침은 늘 복잡하고 새해 처음으로 맞는 월요일이니 더욱 복잡할 거 같은 생각. 짐작은 맞았다. 낯선 아가씨들이 나이 든 한국 사람들이 서류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재정 형편이 더 좋아졌는지 직원 숫자가 더 많고 예년보다 훨씬 더 친절해 좋은 영사관. 기다리는 동안 직원이 준 서류에 필요한 사항을 기록하고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
10년짜리 여권 만기일이 다음 달이라 새로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영사관에서 무료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어서 비싼 사진값 들지 않으니 좋아서 처음으로 무료 여권 사진 촬영하는데 생년월일에서 에러가 나와 여직원에게 말하니 태어난 해 숫자가 4자리였다. 그걸 모르고 두 자리 숫자만 기록하니 자꾸 에러가 나왔다. 세 번의 촬영 기회가 주어졌는데 세 번 사진을 찍어도 내 얼굴 사진은 한결같았다. 공포 영화 같은 순간! 아, 이게 내 모습이란 말인가! 10년 사이 이렇게 늙어버렸어.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물론 화장기 없는 얼굴이고 미장원에 간 적도 없고 평범한 옷을 입고 갔다. 사진에 조명도 아주 큰 역할을 하는데 근사한 조명도 없으니 사진이 더 초라하고 형편없었어. 근사한 몸매를 갖는 최고 모델들이 근사한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서 최고로 멋진 화장을 하고 최고로 멋진 의상을 입고 최고로 멋진 헤어 스타일을 하고 최고의 사진가가 사진을 촬영한다고. 당연 모델과 나랑은 비교할 대상도 아니겠다.
믿어지지 않은 여권 사진을 보며 다시 생각을 했다. 아직 하얀 머리카락은 아니야,라고 마음속으로 위로를 했다. 주름살 많은 얼굴이지만 10년 뒤 여권 사진은 더 늙은 노인의 모습이겠지. 거기에 비교하면 감사해야지. 자본주의 꽃을 피우는 미국 뉴욕에서 존재감이 먼지만큼도 되지 않은 이 도시에서 아직 숨 쉬고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살아야지.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아도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민 가방 들고 온 내게 뉴욕은 얼마나 특별한 도시인가.
10년 사이 늙어버린 내 얼굴 표정은 뉴욕에서의 어렵고 힘든 삶을 말해주는 것. 힘든 삶을 어찌 숨길 수 있을까. 비싼 헤어 비용 때문에 미장원에 언제 갔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뉴욕 문화가 특별하니까 어릴 적부터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난 자주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하지만 모두 내 형편에 맞는 선에서 적정한 선택을 하고 산다. 세계 최고 부자들이 사는 뉴욕에서 위를 보면 끝이 없으니 눈을 감아야지. 물론 아래를 봐도 끝이 없는 도시가 바로 뉴욕 아닌가!
뉴욕 총영사관에서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려 일을 처리하고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뉴욕 한국 문화원 갤러리도 잠시 관람했다. 한국 백남준 예술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내가 백남준을 만난 것도 아니고 그를 어찌 알겠어. 어쩌다 뉴욕 뮤지엄에 가서 그의 작품을 보곤 하지만 그를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예술은 사기다."란 말은 실감이 되기도 한다. 뉴욕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보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의문표를 던질 때가 아주 많다. 뉴욕 한국 문화원 백남준 전시회를 보면서 그가 샤머니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한국에서 가끔 들어본 굿을 하는 백남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 특별전도 보았다. 오래 전시 공간에 머물 수도 없었다. 왜냐면 한국에 편지를 보내러 가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을 찾아가다가 근처에 있는 갤러리도 잠깐 들어가 관람을 했다. 파크 애비뉴에 있는 갤러리는 나 말고 아무도 없으니 조용하고 좋았다. 초인종을 눌러야 문을 열어주니 약간 불편했지만. 요즘 작품이 약간 변화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갤러리에서 나와 우체국에 갔다. 월요일! 역시 손님들이 아주 많아. 기다려야지. 특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 미국 우편 비용이 무척 비싸다. 한국에 3일 이내 도착하는 익스프레스는 약 70불인가. 너무너무 비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1주일 정도 걸린 것도 약 40불. 난 일반우편으로 보냈다. 자본주의 세상 미국은 돈이 편리함을 말해준다. 받아들여야 하지만 씁쓸할 때가 있어도 할 수 없다.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보내고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아들이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아들은 괜히 탕수육 만들기를 배웠나. 전에는 삼원각에 가서 먹곤 했는데 요즘은 아들이 만든 탕수육을 먹는다. 감사함으로 먹었다.
월요일 아침 추운 날씨라 맨해튼에 다녀오니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는데 혹시나 하고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 예약이 되나 보나 확인했는데 마침 예약할 시기. 정말 복잡하고 어렵지만 눈 감고 몇 곳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일단 예약도 어려우니 해 두고 다시 취소할 수도 있고. 오래오래 살다 보니 어렵고 힘든 일이 많고 돈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처럼 사라질 때가 많더라. 그러니 가끔 맨해튼 최고 셰프가 만들어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게 사치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서부에 사는 딸도 함께 식사를 하면 좋을 텐데 서부라서 불가능하고 함께 사는 아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
맨해튼 우체국에서 기다리는 동안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에서 무료 커뮤니티 댄스 공연 안내를 받았지만 기운이 없어서 예약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예약하려는데 이미 매진! 뉴욕의 특별한 문화. 공연을 사랑하는 뉴요커들이 아주 많다. 지난번에는 예약을 했는데도 너무 피곤해 다른 스케줄과 겹쳐 방문도 못했던 추억도 있다. 뉴욕 시립 발레단에서도 자주 공연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는데 저렴한 티켓을 팔지 않으니 요즘 자주 안 보게 된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발레 공연도 보면 좋을 텐데. 뉴욕 시립 발레단 공연도 환상적이다! 환상도 돈이 필요해.
월요일 오후 우리의 간식은 맛있는 고구마. 냉장고에 든 고구마를 씻어 냄비에 넣고 삶았다. 단 고구마가 참 맛이 좋다. 고구마를 먹고 저녁 식사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다시 맨해튼에 외출을 했다. 플러싱에서 맨해튼 외출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마음먹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익스프레스를 타고 96 스트리트에서 내려걸었다. 저녁 7시 반 열리는 특별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를 들은 날이었어.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뉴욕 필하모닉과 메트(오페라)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악장을 맡았던 클라리넷 연주가 Anthony McGill.
약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는 Music Mondays/ Parker Quartet & Anthony McGill(1월 6일 연주 팀) 특별 공연. 공연 팀은 항상 같지는 않다. 파커 쿼텟 연주도 꽤 좋았는데 클라리넷 연주가 너무 좋아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 느낌이 날 정도로 큰 차이가 느껴졌다. 처음으로 알게 된 음악가들 연주에 감동을 받은 새해. 월요일 아침부터 맨해튼에서 일 보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다시 맨해튼에 나오니 특별한 공연도 보게 되고 역시 맨해튼에 살고 싶어. 우연히 지난 늦가을 아들과 날 이스트 빌리지 교회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초대를 했던 분을 만나 인사를 했다. 그분은 쿼텟 멤버를 개인적으로 안다고 하셨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진가는 카네기 홀에서 자주 뵙는다. 두리번거리며 누가 공연을 보러 왔냐 확인하는 눈치였다.
저녁 7시 반에 열리는 특별 공연을 보러 온 청중 가운데 백발노인들이 약 80% 이상을 차지하게 느껴졌다. 뉴욕 노인들 문화가 참 특별하다. 내가 안 사람은 나랑 인사를 한 사진가 딱 한 명. 청중 가운데 대개 백인들이 많고 아시아인은 아주 드물다.
무료 공연이었지만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했고 공연 시작 전에 도착했지만 빈자리는 없어서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무료지만 기부금을 내면 좌석을 배정한다. 기부금 액수에 따라 좌석도 다르다. 200불을 내면 두 번의 공연 동안 두 좌석을 주고, 900불을 내면 9회 공연 동안 두 좌석을 준다. 뉴욕은 정말 돈이 많은 일을 한다. 돈이 있고 없고 차이를 하늘과 땅 보다 더 큰 차이를 느끼는 곳이 뉴욕이 아닐까.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새해 하루하루도 비바체 속도로 달린다. 조용하게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삶이 어디 뜻대로 돼야지. 특별 공연은 볼지 말지 망설였지만 가길 잘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를 들었으니까. 비록 서서 음악회를 보느라 더 피곤했지만. No Pain No Gl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