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0일 금요일
오후 2시 반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로버트 만 챔버 음악 마스터 클래스 보려고 갔는데 우연히 쉐릴 할머니를 만났다. 맨 뒤에 앉으려는데 날 보자 붙잡으며 옆에 앉으라는 할머니 새해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했다. 음악을 무척 사랑하니 맨해튼 음대와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나곤 한다. 함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한 현악 4중주 팀 공연을 감상했다. 전날과 다르게 로버트 만 교수님 아드님 니콜라스 만 교수님이 지도를 하셨다. 전날 니콜라스 만 교수님이 앉은자리에 바로 내가 앉게 되니 웃음이 나왔다. 작은 규모의 홀이고 음악 사랑하는 분들이 가득 메운 홀. 니콜라스 만 교수님은 줄리아드 학교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맨해튼 음대와 줄리아드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 맨해튼 음대 공연 보러 가면 자주 만나는 분.
무료 공연인데 미국 최고 현악 4중주 팀 연주라서 말할 것도 없이 좋다. 할머니랑 함께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맨해튼 음대 수위 태도가 변해 기분이 언짢다고 말씀했다. 수위가 파워를 행사한다고. 파워에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수위 태도가 작년과 다르게 변했다고 말하고 아마도 학교 규정이 변했나 짐작한다고 했다. 70대 중반인데 스마트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이 지낸 할머니는 새해 링컨 센터 브로슈어가 사라져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셨다. 컬럼비아 대학과 맨해튼 음대 등 공연 브로슈어를 보면서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해서 자주 공연을 보러 다니는데.
쉐릴 할머니 친구 앤 할머니가 이탈리아에 여행 갔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스웨덴인가에서 사는 앤 할머니랑 어떻게 연락이 되냐고 물으니 놀랍게 편지를 받았다고. 세상에!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으니 당연 난 몹시 궁금했다. 앤 할머니 소식을 어찌 받았는지. 나 어릴 적에는 종이 편지를 쓰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이메일을 사용하니 세상 참 많이도 변했는데 아직도 아날로그 세상에 사는 할머니. 토요일 저녁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애플 스토어 근처에 있는 카우프만 센터에서 열리는 공연 티켓을 작년 12월엔가 줄리아드 학교 카페에게 내게 주어 토요일 저녁 공연 보러 올 거냐 물으니 할머니는 깜박 잊으신 눈치.
새해를 맞아 더 늙어버린 거 같다고 말씀하는 쉐릴 할머니. 기운이 없다고 하니 내 마음도 쓸쓸해졌다. 플러싱 지하철역 근처에서 시내버스에 붙여진 광고를 보았다. 뉴욕에도 고독한 노인이 참 많이 산다. 고독과 외로움의 문제는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저녁 8시 다운타운 브룩필드 플레이스에서 열리는 특별 첼로 공연을 볼지 말지 역시 망설이다 나의 아지트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하다 카네기 홀 근처에 있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 2층에 가서 학생들이 그린 작품전을 감상했다. 언제나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색채의 향연이 마법을 부린 시간. 내 영혼은 무슨 색으로 물들까.
지하철을 타고 첼로 공연을 보러 갔는데 청중들이 얼마나 많던지 깜짝 놀랐다.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난 잠시 공연을 보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많아 무대가 잘 안 보이는데 맨 뒤편에서 서서 기다리는데 내 앞에 키가 아주 큰 사람이 말없이 들어와 서 있어 불편했는데 잠시 후 패션지에나 나올 듯한 멋진 의상을 입은 멋진 스타일의 여자가 그분에게 인사를 하니 자리를 떠나 무대가 보였다. 맨해튼에도 새치기하는 사람도 많고 별별 사람들이 많다.
럭셔리 쇼핑 매장과 맛집도 가득한 브룩필드 플레이스(Brookfield Place). 전에는 특별 이벤트 보려고 온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맨해튼에서 가장 호화로운 럭셔리 지하철역 오큘러스를 지났다. 뉴욕 여행객은 꼭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은 오큘러스! 할러데이 시즌 영화 같은 할러데이 마켓도 열고 오래전 미켈란젤로 작품전도 열렸다. 건축물도 아름답고 맛집과 쇼핑 매장 가득해 여행객들에게 좋을 거 같다. 난 주로 R/W 지하철역 Cortlandt Street Station을 이용하고 다른 지하철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편리하고 좋다. 멋진 오큘러스를 지나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도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들어간다. 몇 년 전 보수 공사를 해서 럭셔리 매장 가득한 브룩필드 플레이스에서 가끔 특별 이벤트가 열린다.
금요일 아침 일찍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마쳤다. 세탁을 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 내 아픔과 고통도 세탁기에 넣고 하얗게 되도록 씻어버리면 좋겠다. 끝도 없는 삶의 문제들과 힘겨운 투쟁을 하는 뉴욕 생활. 막이 내릴 때까지 투쟁을 하자. 삶이 투쟁 아닌가. 축복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세상 문제가 다 풀린다고 하니 역시 다르다. 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난 평범한 사람. 세상의 고통이 내게로 오는 거 같다. 무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일구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아무것도 모르고 자본주의 나라 미국 뉴욕에 왔다. 새로운 세상 개척은 세상에서 태어나 한 일 가운데 가장 힘들더라. 삶은 아직 진행 중!
세탁을 하고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을 다녀왔다. 벤치에 앉아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청년을 다시 만났다. 먹이를 던져 주니 기러기떼, 하얀 갈매기떼와 하얀 백조가 청년에게 다가갔다. 하얀 백조는 내가 안 본 사이 더 통통해져 귀여웠고 맨 뒤에서 여유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먹이를 주든가 말든가 하는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