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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토요 음악회, 94세 루실 할머니 이야기

by 김지수

2020년 1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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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422.jpg?type=w966 맨해튼 카우프만 뮤직 센터에서 열린 특별 무료 공연



봄날 같은 토요일 맨해튼에서 멋진 음악회를 감상했다. 저녁 6시 카우프만 뮤직 센터(어퍼 웨스트사이드 애플 스토어 부근)에서 열리는 특별 무료 공연이었고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쉐릴 할머니가 준 무료 티켓이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 무료 공연이 열리는 곳이니 평소 난 자주 가지 않고 언제 무료 공연이 열리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방문객들은 토요일 저녁 맨해튼에 사는 로컬 사람들로 짐작되었다. 가브리엘 포레의 '꿈을 꾼 후'에는 얼마 만에 듣게 되는지. 대학 시절 자주 듣던 곡이었다. 모리스 라벨 곡도 듣기 좋았다.




지난 12월 쉐릴 할머니가 준 티켓을 가방에 분명 넣었는데 공연을 보러 가려고 가방을 찾는데 보이지 않아서 잠시 놀랐다. 분명 넣었는데 안 보여 너무나 당황스러운 순간 낯선 분에게 새로운 여분의 티켓을 받고 공연장에 입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다시 가방 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티켓이 보여 웃었다. 내 티켓이 마법을 부렸어. 세상에 좀 전에는 안 보였는데 왜 이제야 보인 거니. 실은 가방 안 다른 프로그램 사이에 끼여서 안 보였던 것이었다. 곱고 예쁘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첼리스트 연주를 감상하면서 멋진 토요일 밤을 보내니 귀족이나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귀족도 아닌데. 밤에 듣는 플루트 소리도 얼마나 아름답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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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어퍼웨스트 사이드 99가 교회에서 열린 특별 무료 공연, 교회 빌딩 내부가 너무 아름다워 영화 같은 순간.



토요일 오후 3시에도 특별 공연이 열렸다.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99가에 있는 교회에서. 전에도 가끔 특별 공연이 열리는 것으로 아나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등 다른 스케줄과 겹쳐 방문을 미루다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교회 빌딩 내부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마치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메조소프라노 특별 공연을 보러 갔는데 빌딩 내부를 보고 황홀한 순간이었지.



이 공연은 카네기 홀 웹사이트에서 찾았다. 아주 가끔 무료 공연이 열린다. 자주 카네기 홀 웹사이트에서 접속해 언제 무슨 공연이 열리나 본다. 티켓은 얼마인지 확인하다 무료 공연이 열려서 방문했다.



전날 맨해튼 음대에서 만난 쉐릴 할머니에게 교회에서 열리는 공연도 괜찮을 거 같아서 로버트 만 마스터 클래스 대신 메조소프라노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니 할머니도 오신다고 했는데 난 오후 3시경 맞춰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할머니는 나 보다 더 늦게 오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깜박 잊어버려 집에서 늦게 출발했다고. 메조소프라노가 부른 곡도 좋았다. 보컬을 무척 사랑하는 할머니가 오길 잘했다고 말씀했다. 우리 앞에서는 개구쟁이 소년 두 명이 앉아서 더 재밌는 풍경이었다. 언제 그런 풍경을 보겠어. 음악도 감상하고 개구쟁이들 소란도 보고. 축구복을 입은 곱슬머리 소년들 피부가 정말 고와 부럽더라.


그러니까 쉐릴 할머니랑 토요일 두 번이나 공연을 보았다. 교회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고 저녁 6시 공연이 열리기까지 약간 시간이 남아 어디서 무얼 할지 고민하다 근처에 있는 파리 바게트에 갔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서 나오고 말았다. 잠시 걷다 맥도널드에 갔는데 할머니가 냄새가 나니 안 들어가고 싶다고 하셔 약간 머뭇거리다 안에 들어갔는데 냄새는 나지 않아 빈 테이블에 앉았다.


한국 영화 <기생충>에도 냄새가 강조된다고 하는데 공포 영화라 심장이 무척 약한 난 아직도 보지 못한 영화인데 가난한 사람들 삶을 숨길 수 없나. 맥도널드에 홈리스들도 찾아오니 냄새가 나기도 하고 평소 나도 자주 이용하지는 않으나 맨해튼 커피값도 너무 비싸니 1불+세금 하는 커피가 상당히 매력적이라 방문했다. 맨해튼 맥도널드가 아주 깨끗하고 좋은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홈리스 많은 뉴욕은 홈리스가 다닌 곳은 다들 싫어한다. 악취 때문에.


내가 커피를 주문하러 간 사이 사교성 좋은 쉐릴 할머니가 옆 테이블에 앉은 루실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커피를 받아 테이블로 돌아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가 공연을 봤던 바로 그 교회에 수 십 년 동안 루실 할머니. 부모 세대가 이민을 왔고 루실 할머니는 맨해튼에서 탄생한 분. 루실 할머니는 소셜 워커로 수 십 년 동안 일하다 은퇴해 센트럴파크 웨스트 아파트에 산다고. 정말 부러운 곳이야. 따님은 듀크 대학을 졸업 손자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세상에 놀랍게도 루실 할머니 나이가 94세! 쉐릴 할머니 나이는 74세. 두 할머니들이 나보고 "넌 병아리야."라고 하니 웃었다. 주름살 가득한 내가 갑자기 병아리 신세가 되니 얼마나 재밌어. 얼마 전 여권 사진 촬영하면서 내 얼굴 사진 보고 실망했는데 10년 뒤를 상상하면 웃어야지 했는데 나보고 병아리라고 하니 웃을 수밖에. 루실 할머니 크리스마스 디너를 두 번이나 무료로 드셨다고 얼굴에 웃음 가득하며 말씀을 했다. 맨해튼 음대 바로 옆에 있는 리버사이드 교회(The Riverside Church)와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The Cathedral Church of St. John the Divine)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디너가 만찬이라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맨해튼 시니어 센터에서 식사도 하고 가끔 무료 공연 티켓을 받아 뮤지컬도 감상한다고. 맨해튼에 사는 할머니들 삶이 특별하다. 94세 할머니라고 믿지 않을 만큼 건강하셔 놀랐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생수를 자주 마시고 친구를 만나러 시니어 센터에 간다고. 현재 살고 있는 루실 할머니 아파트 주인이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맨해튼에 있는 빌딩 주인이 유대인이 많다는 말씀을 했다. 롱아일랜드에 살 때 양로원 주인이 유대인이 많다고 들었는데 맨해튼 빌딩 주인이 유대인이라고는 처음 들었다. 돈을 사랑하는 유대인을 조심하라고 대학 동창이 말했는데 역시 유대인이구나. 지금 미국 빈부차는 역사 이래로 가장 높은 거 같다고. 정말이지 이민 1세가 이민 와서 살기는 너무너무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렌트비가 공포다.


지난 목요일 뉴 뮤지엄 전시회에서 본 1971년 맨해튼 아파트값이 3만 불-7만 불 정도. 약 50년이 흐른 뒤 지금 맨해튼 아파트 값은 얼마나 비싸. 최저 임금 변화는 아파트 값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끔 카네기 홀에서 만나는 할머니들 이야기에 의하면 오래전 맨해튼에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맨해튼 렌트비 감당하지 못하니 살 수 없을 거 같다고. 처음으로 맨해튼 나들이할 때인가 들었던 말. 70년대 뉴욕에 이민 온 한인 가운데 은행 융자받아 값싼 소호 빌딩 구매해 돈방석에 앉았다는 말! 좋은 직장 구해 돈 벌기는 하늘처럼 어려운데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번 운 좋은 사람도 있는 듯 짐작된다. 암튼 요즘 뉴욕시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빈부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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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408.jpg?type=w966 한겨울에 핀 노란 민들레꽃, 봄소식을 가져오면 좋겠다.



토요일 날씨는 봄날 같았다.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버스가 안 와서 구글링 하니 30분이라 기다리라고 하니 포기하고 터벅터벅 걷다 한겨울 노란 민들레꽃을 발견했다. 세상에~ 겨울에 핀 노란 민들레꽃이라니. 봄소식을 가져오면 좋겠어. 기다리는 봄소식! 맨해튼에 오후 3시까지 도착해야 하니 마음이 약간 바쁜데 버스가 안 오니 기분이 다운되다 민들레꽃 보며 기분이 좋아졌어. 토요일 오전 글쓰기 하고 아들과 호수에 산책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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