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일 일요일
미국인이 사랑하는 슈퍼볼 행사가 저녁 6시 반에 시작하는데 그 시각 난 맨해튼 메네스 음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고 집에 돌아가려고 지하철역에 가고 있었다. F 지하철을 타고 달리다 74가 브로드웨이 역에서 7호선에 환승하고 111가 역에서 다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플러싱 지하철역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탔다. 2월 내내 주말 7호선이 정상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기관사의 말이 반갑지는 않았다. 종점역에서 7호선을 타는 것이 더 편리하고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에.
슈퍼볼 행사가 열려서 그랬을까.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공연 스케줄이 없어서 오랜만에 다운타운 그리니치 빌리지 매네스 음대에 갔다.
바흐, 베토벤, 리스트, 쇼팽 등의 프로그램이 좋아서 찾아갔는데 웹사이트에 올려진 4층 홀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수위에게 말하니 어디론가 전화를 해서 알아보나 그도 모른다고 하니 난감한 순간 포기하고 집에 갈까 하는데 수위가 다시 한번 올라가 보라고 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참 허탈한 순간 1층으로 내려와 떠나려는 순간 수위가 날 보고 공연이 열리는 장소가 변경되었다고. 그때 마침 두 명의 아가씨가 수위랑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올라갔고 리사이틀하는 학생 지도교수님을 포함해 5명이 앉아서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중국 여학생 연주였는데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하니 준비를 많이 했구나를 느꼈다. 점점 악보를 외우는 추세지만 악보 암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맨해튼은 특별한 도시라서 가능하지만 하루 적어도 한 개의 공연을 보려는 나의 계획을 달성했다. 바흐의 선율에 모차르트의 선율에 쇼팽의 선율을 들으며 내 머릿속을 조율한다. 복잡한 세상을 잊고 잠시 천국에서 산책하는 순간. 음악이 없다면 난 슬픔의 나락에 떨어졌을지도 몰라. 평생 음악은 날 위로하니까 좋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슈퍼볼 행사는 2월 첫 번째 일요일 열린다. 한국에서 슈퍼볼을 들어본 적도 없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미식축구. 오래전 딸이 보스턴 캠브리지 연구소에서 일할 때 딸이 구입한 티켓으로 하버드대학에서 하버드 대학과 코넬대학 미식축구팀 경기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다.
연구소 직원이라 특별 할인 혜택을 받아 더 저렴하게 구입했다고. 명문 대학 입학도 졸업도 어려운 하버드대 학생들이 우리 앞에서 경기를 하니 믿어지지 않은데 특별한 천재 학생들 숫자도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란 순간. 어릴 적부터 운동과 공부를 동시 하니 얼마나 바쁘고 특별한 삶을 살지 생각조차 어려운데. 하버드 대학 로고를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온 어린 남자아이들도 귀엽고 그들은 열심히 하버드생들을 위해 응원을 했다. 하버드 대학 로고가 있는 모자를 쓰고 온 부자도 만났다. 두 분 모두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눈치였다. 보스턴 억양 강한데 우리에게 두 분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셔 아들이 셔터를 눌렀다. 딸 덕분에 보스턴 여행도 늘 즐거웠지만 미식축구 경기는 특별한 경기라서 평생 보물 같은 추억이 되어 날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잤다. 전날 맨해튼에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편도 5회 환승했는데 플러싱 시내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겨울비를 맞고 오래오래 기다려 밤늦게 도착한 덕분에 늦게 잠들었다. 밀린 세탁을 해야 하는데 아침 8시부터 세탁을 할 수 있는데 아파트 주민이 사용하는 공동 세탁기라서 늘 마음이 무거운 세탁. 4개의 커다란 세탁 가방에 이불과 옷을 담아 아파트 지하에 갔는데 다행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서 내가 4개의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공동 세탁기는 단 6대뿐이다. 그러니까 누가 사용하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입에서 1000번이나 감사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이라면 집에서 세탁기를 사용할 텐데 뉴욕 상황이 다르니 참 불편하고 무사히 세탁을 하면 감사하다. 아무렇지 않은 일도 뉴욕에서는 감사하게 느껴진다.
뉴욕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이 차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롱아일랜드 딕스 힐(Dix Hills)에 살 때 한 여름 무거운 세탁 가방을 들고 땡볕 아래서 걸어서 빨래방을 찾아가던 추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무도 없는 땅에 와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은 눈물과 고통의 시작이다. 참 오래도록 눈물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보다 천배 이상 열악한 환경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나 나의 과거가 현재를 데리고 왔고 나의 현재가 미래로 이끌어 줄 거라 믿는다. 평생 장님처럼 산다. 내가 모른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평생 성공에 집착해본 적도 없다. 교직에 종사하다 두 자녀 교육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에서 지냈다. 나의 의무가 많기만 했다. 나의 마음을 다해서 두 자녀 아빠와 두 자녀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오십 대 중반이 되어갔다. 무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일구는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어렵다. 하이든 베토벤 시절에도 귀족은 역시 편하게 살고 서민들은 죽도록 고생을 했다고. 지금도 그러하다. 대학 시절 만난 남자 뒷바라지를 수 십 년 하니 세상이 부러워한 위치에 도달했지만 인연이 다 했는지 멀리 떠나오고 말았다. 사업 자금 마련 위해 수 십 명의 은행장을 매일 만나러 다녔다.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은행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정말 어렵게 거액의 자금을 마련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IMF가 찾아오니 한 달 은행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은행 이자는 태산처럼 높아만 가고 집에는 단 한 푼도 가져오지 않은 상황에 딸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데 개인 레슨으로 옮기라 하니 난 한마디로 "아니오"라고 했는데 선생님도 굴복하지 않으셔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물론 매달 은행 이자는 내야 하는 상황. 물론 먹고살아야 하니 기본 생활비가 필요한 상황. 그 모든 상황을 버티고 버텼다. 내가 어려울 때 날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평생 단 한 가지도 쉬운 게 없더라. 내가 침묵을 지키면 모두 내가 신선처럼 산다고 부러워했다. 내가 입을 열면 모두 깜짝 놀란다. 어찌 그 많은 일을 했냐고. 개인마다 평생 짊어 저야 할 십자가의 무게가 다르더라. 난 평생 하나의 십자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십자가를 지고 걷는 듯. 신의 특별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슈퍼볼이 열린 날이라 열광하며 경기를 봤을 텐데 아들도 나도 모두 경기를 보지 않으니 조용하게 하루가 지나갔다. 슈퍼볼 경기 도중 광고가 하늘보다 더 비싸다고 하던데 무슨 광고가 나왔을까. 오래전 집에서 슈퍼볼 경기 볼 때 밥 딜런이 사랑하던 우드 거스리가 부른 This Land Is Your Land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은 딸이 사는 캘리포니아로 달려간다. 무명의 가수 밥 딜런이 추운 겨울날 기타 하나 들고 뉴욕에 와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명성 높은 가수가 되고 노벨상까지 받았으니 누가 생을 알겠는가.